1997.7 | [문화비평]
‘호남차별’이라는 집단 정신병
글/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2 11:37:16)
“고참이 경상도 출신인 경우에는 그래도 타 지역 사람들이 견딜만하다고 한다. 우선 경상도 사람들이 쩨쩨하고게 굴지 않고, 조그만 일에도 섣불리 밑의 부하들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전라도 출신이 고참인 경우에는 밤마다 불러내서 기합을 주는 통에 군대 생활이 괴롭다고 토로한다.”
“친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간이라도 빼내 줄 것처럼 갖은 친밀감을 나타내다가도 이익이 없다 싶으면 곧 마음을 돌려버리는 것이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그러한 것도 오랜 시간을 두고 흘러 내려오면서 자연히 터득되어진 경험의 일종일 것이다.···이 말은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서 전라도 사람들을 매도하기 위해 이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라도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을 평하기를, 처음엔 살살거리며 달라붙었다가 이익이 없으면 쉽게 배반을 해 버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업에 같이 동업을 해도 경상도 사람들은 우직해서 거덜이 날 때 까지 동고동락을 같이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약간 기우뚱하기만 하면 먼저 발을 빼버리면서 같이 동업을 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예로 들자면 수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 지역 사람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면 고개를 젖는 것이고, 어떠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선은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온 웃어른들의 말에 그럴듯한 이치가 닿기 때문에(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이기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기피하게 된다. 그런다고 그것을 핍박이라고 몰아 부치다면 억지소리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행동이 그랬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오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강짜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경상도 남자들은 사람을 일단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우직함이 있는가 하면, 전라도 사람들은 이용가치에 따라 쉽게 변하■ㅡㄴ 기질이 있다. 강원도나 충청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욕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전라도 사람이라면 그들은 슬슬 피하면서 섣불리 속마음을 털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왜 그럴까? 다른지역 사람들은 어느정도 상대방에 대해서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뒤통수를 치듯, 어려운 때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치졸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하는 성질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까지 욕을 먹는다.”
최근에 나온 어느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재활용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같은 책에 실린 미치광이같은 수작들이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호남인이 없는 자리에서 곧잘 발성되는 그런 발언들을 감히 책으로 펴낸 저자와 출판사의 광기는 이 나라에서 자행되는 ‘호남 차별’이 발악의 극에 이르렀다는 걸 실감케 한다.
지난 2월<시사저널>은 이른바 ‘호남 기피율’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 한 적이 있다. ‘사귀기 싫은 출신지역 사람’, ‘자녀와 결혼시키고 싶지 않는 출신지역 사람’, ‘동업 상대로 꺼리는 출신 지역 사람’, ‘차기 대통령 기피 출신지역’등 기피지역을 묻는 문항에 응답자 30.9%가 한 번 이상 호남을 지적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여론주도층의 호남 기피율이 40.1%로 전체평균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요컨대 배우고 가진 자가 호남차별을 더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ㅡㄴ 그런 조사 결과가 놀랍게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자칭 ‘지역 감정 전문가’로서 호남차별의 실상에 대해선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 독자들로부터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정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수시로 받으면서 이나라는 적어도 20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국가중의 하나라는 점을 재확인 하곤한다.
위에 인용한 발언들도 그간 수없이 들어왔으며, 그것보다 더 한 소리들을 나는 나의 저서『전라도 죽이기』에 소개하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호남차별은 영원한 순환 논리를 갖고 있다. 우는 아이를 때린다. 아니는 더 운다. 울기 때무에 더 때린다. 때리는 놈은 당당하다. 저렇게 지긋지긋하게 우는 놈은 처음봤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했던 쓰레기 같은 책도 바로 그 논리를 끊임없이 반복해대고 있었다.
최근 미국 하바드 대학의 역사학자 다니엘 도나 골드하겐은 『히들러의 자발적 사형집행인들』이라는 저서를 통해 “유태인 학살은 당시 독일 사회에 만연해 있던 반유태주의의 결과였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반 국민들은 히틀러의 살육행위에 열광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증거를 수반한 이 주장에 대해 많은 독일인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한다.
당시 독일인들은 ‘유태인 증오’라는 집단 정신병을 앓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일단 어떤 편견에 감염된 사람은 사회과학적으로 중학교 1학년 학생 정도면 뻔히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제에 관한 한 갑자기 무자리 수의 지능지수를 갖게 된다.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집단 정신병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 일부국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 정신병은 웬만해선 논리와 이성으로 치유될 수 없다. 그들을 욕하자고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다. 그 정신병을 치료하는 해결의 열쇠를 호남인들이 갖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호남인들이여, 대자대비한 관용으로 그들을 인내하고 사랑하자. 관용과 사랑 이외에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언젠간 달라질 것이다.
강준만 /전남 목포에서 56년에 태어나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 신문학과의 위스턴신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론 비평문화를 뿌리내리는 작업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는 그는 저서로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위기」「권력은 TV에서 나온다」「김대중 죽이기」외 다수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