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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6 | 연재 [교사일기]
'순수함'이라는 무기
강희봉 정읍고등학교 교사(2003-03-26 16:10:07)

오늘도 '일어나야지'를 거듭 다짐하지만 나의 몸은 이부자리 속으로 더욱 가라앚는다. 작년 같으면 아직은 깨어있을 시간이 아닐텐데...
3월에 새로운 학교로 부임 받고 장거리를 출퇴근 하다보니 안이하고 편안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출퇴근시간 감사함을 느낀다.
차창으로 스치는 연초록의 향연에 온몸 구석구석까지 생기를 얻으며, 자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순수한 농부의 모습, 리어카에 고추 몇 포기를 싣고 밀고 당기는 노부부의 다정함, 어수선하며 질서 없이 피고
지는 들꽃들 속에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 나의 게으름과 바꾼 소중한 것들이다.
나에게 이런 시간들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오늘을 계획하며, 하루를 뒤돌아보는 여유로움을 갖게 하는 것은 출퇴근 시간이다. 도심 속을 지나며 아침부터 분주한 삶의 일터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느낀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에서 근무를 하게 된지 몇 개월 되지 않아 학교 체제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 학교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순수함'만은 확실히 느껴진다. 오늘도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한다.
서투른 말솜씨, 빨개지는 얼굴... 모두가 사랑스럽다. 매시간 단어와 문장 시험을 보면서 회초리를 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다음 시간에는 잘할께요" 하는 그들의 짓궂은 얼굴과 투박한 미소 속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다그칠 일에도 쉽게 약해지는 것을 보면 순수함이라는 무기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렇게 오히려 당한 자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앞서가는 말썽쟁이의 뒷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공부를 안 하는 녀석들,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당당한 모습들... 등등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많은 수업량만 가지고 부딪힘이 잦았다.
얼마전 작고하신 마더 테레사의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얼굴과, 눈과, 미소 속에서 친절을 나타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소지였고, 얼마나 친절했는가 하는 반성이 되었다.
시험 성적을 위해 다그쳐야만 하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대학에 가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냐를 평가하지 않고 고등학교 때가지 얼마나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느냐 평가하는 틀에 갇힌 이 사회에 회의를 느낀다.
1학년 학생에게 적용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 학교 교육의 본질 모든 선생님들이 아타까워하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회초리를 들고, 도끼 눈을 뜨고, 학력고사 시험의 적중률을 노리며 지식과의 투쟁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주어진 역량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헤어진 옷을 입고도 몇 백만원짜리 옷을 걸친 사람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과연 오늘날의 부모님의 바램은 무엇일까?
어제는 가족과 함께 <집으로>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할머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영화 배우인들 그런 표정을 지울 수 있을까? 땅과 자연을 벗삼으며 한 평생을 살아온 세월이기에 가능한 표정일 것이다. 지금 교무실 창밖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웃옷을 벗은 채 괴성을 지르며 축구를 하는 학생들을 본다. 언제나 현실화될 수 있을 저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함이 지식 위주의 학벌만큼 당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는 영영 올 수 없을까?
아직 그런 사회가 달성되지 못한 시점에서 나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중간고사 성적표를 본다. 형편없는 점수다. 도시처럼 학원이며 과외를 마껏 시킬 수는 부모님들의 처지이다.
난 얼마든지 악도해질 수 있다. 깜지 안 해오면 0대, 문장 안 외웠으면 0대, 수업시간에 딴짓하면 평소점수 1점 마이너스.....
하지만 나의 회초리에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들이 조금씩 금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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