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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7 | [서평]
너무도 순결한, 떠난 자의 약속에 대해 『하늘에 돌을 던지며』(송보웅, 전북청년문학회, 1996)
글/정동철 청년문학회·회장 (2004-02-12 11:45:50)
송보웅 형의 유고를 들고 처음 내가 가졌던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하얀 백지에 컴퓨터 활자로 깔끔하게 인쇄된 그의 글을 들고 나는 꽤나 오랫동안 그 주변에서 망설였다. 글쎄 그것은 일종의 자기 점검이기도 하고 또는 당혹감에 대한 추스름이기도 했을 테지만 내가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전북청년문학회에서는 조심스럽게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고 출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돌려가며 읽고 그 느낌에 대해서 활발한 의견들이 교환됐다. 어쨌든 이 시집이 출판되는 동안 나는 늘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멀리서 그의 글들을 훔쳐보았다. 80년대의 한 복판을 관통해 이삼십대를 보낸 사람이면 그가 데모를 열심히 하던 운동권이였거나 또는 방관자처럼 그 주변을 맴돈 사람일 지라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일종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을 쓰는 자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정말 확 떼먹고 도망가 버리고 싶은, 누군가 당신이 갚아야 될 몫이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데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빚’에 대하여, 좀더 편하게 내 맘대로 살고 싶은 ‘유혹’에 대하여, 이제는 판단하기 앞서 유보하고 살아왔다. 그렇다.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그것은 일종의 소극적인 ‘반응’정도라고 해 두자. 그러나 이러한 당혹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무게한 것인가. 이 글을 쓰는 자의 감각과 판단 기준은 어찌 미련한 소처럼 무딘 것인가. 그는 겨우 1994년, 불과 2년도 채 되지 못한 초겨울에 우리 곁을 떠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 전에 해 두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기억을 잃어버린 자처럼 주변을 얼쩡거린단 말인가. 그가 외치고자 했던 ‘통일’이며, ‘민주’며, 모두가 하나 되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약속에 대해 마치 길모퉁이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들킨 잡종 똥개처럼 당황해 하는가. 아,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진자. 해방의 싸움터에서 이 한 목숨 사라진다 해도 그의 유작시 서른 일곱편 전체를 통과하고 있는 강력한 힘은 바로 이 ‘순수한, 순결한 영혼의 울림’이다. 초반부터 나를 기죽게 했던 ‘서시’로부터 ‘만경강가에서’, ‘주벽일기’, ‘종기’, ‘삼례장터’로 이어지는 그의 시에서 목소리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공통분모로 자리잡고 있는 순수했던 영혼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동지여 슬퍼하지 마라 그대를 또다시 총칼을 부여잡고 싸움터로 내달릴 때 내 영혼 거기 서서 동트는 햇새벽을 바라 보리니. 〈서시 전문〉 새벽을 본 적이 꽤 오래되었다. 찬물을 마시고 쓰린 속을 쓰다듬으며 바라본 새벽 거리를 본 적이 이제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마치 오래 전의 일처럼 나는 반응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주변을 얼쩡거렸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최소한 나의 약속이었고 우리들의 약속이었고 어쩌면 당신들의 약속이었는데 말이다. ..........................................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별들을 간직하며 살아왔는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아름다운 뭇 별들이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지 ................ ........................ 얼마나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 이 산하의 별로 떠올라야 햇새벽이 밝아오는 것인지 ........................〈별 헤는 밤 部分〉 평론가 성민엽 교수가 “의식적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인 이 ‘바로 됨’을 향한 그의 의지는 자기 고백과 스스로의 모순에 안달복달하는 내 귀를 의심케 한다.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그의 목소리로 그 목소리가 풀어내는 노래의 리얼리티는 순수하고도 단호하기 그지없다. 결국 나는 초반에 기선을 제압 당한 하룻강아지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진달래 피는 봄이 온단다. 남녘땅 순진한 농투성이와 북녘땅 어여쁜 노동자여 네가 하늘이면 나는 땅이고 네가 땅이면 나는 하늘이라 꽃댕기 휘날리며 하늘 높이 솟아 민족통일의 꽃가지를 물어라 ...........................〈그네 타기 部分〉 늘 ‘순수’라는 말에 집착하곤 했다. ‘순수’니 ‘참여’니 하는 유치한 논쟁에서부터 엉터리 ‘순수’까지, 순수하다 순결하다 함은 문학을 버팅겨주는 유일한 기둥이라고 나는 지금껏 믿어 왔고 아직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송보웅 형의 시도 그렇다. 순결한 감정은 때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니까. 순수한 것은 결코 얄팍한 야료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니까. 그의 유작시 서른 일곱편 전체를 통과하고 있는 강력한 힘은 바로 이 ‘순수한, 순결한 영혼의 울림’이다. 초반부터 나를 기죽게 했던 ‘서시’로부터 ‘만경강가에서’, ‘주벽일기’, ‘종기’, ‘삼례장터’로 이어지는 그의 시에서 목소리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공통분모로 자리잡고 있는 순수했던 영혼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리움으로 치닫는 만경강 이렇듯 물풀로 휘날리고 있는 밤이지만, 그놈의 자주달개비꽃은 항상 가난처럼 누워있었다. 어둠에 취한 골목대장의 손짓 뒤로, 아이들은 전신주에 매달려 끈질기게 만세를 불러댔지만 떠밀리고 밀려온 이 곳 절망처럼 깍여버린 산비탈, 경사를 오르는 산동네 아이들 또, 밀려나가는 풀내음 ...............................〈만경강가에서 部分〉 술에 몽땅 취한 다음 날은 주눅들어 사는 이 세상이 잠시 시들해 보이더라도 막걸리 한 사발에 헛심이 솟더라도 술기운에 다시는 속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아무리 분통이 터지고 억울한 일이 생각이 나더라도 궁극적으로 세상에 대하여 사람되었다는 소리 좀 들어봐야겠다고 좀더 대범하고 묵직해야겠다고, 술 안 먹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가져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한다. .............................................. 〈주벽일기 部分〉 대학 졸업을 앞두고 며칠을 술에 취했다. 그대로 졸업해 다행이라는 축하주와 너는 졸업하는구나하는 驚異酒에, 졸업장은 칼이 도지 못한다는 비겁주와 같이 놀게 되어 반갑다는 실업주에 취해 부끄러움과 막막함이 술독과 섞여 종기가 난 줄도 모른 채 이 악물지 못한 아픔들과 살아가야할 끝없는 고통들을 시래기국 한 수저로 가라앉히며 찬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어느 새 토실하게 부어오른 종기 탓인지 팔이 쑤시고 열이 올랐다. .............................................. 〈종기 部分〉 전편을 통해서 관통하는 순결함과 순수의 궤적은 때론 끓어 올라 치솟는 분노의 노래가 되고 흐르다 고여 사랑의 노래, 존재의 노래로 완성되기도 한다. 결국 문학은 자기 자신의 반성과 성찰을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는 몇 안 남은 이십세기의 예술 양식일 테니까. 대저 시인이라는 자들을 추방하고자 했던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시인은 시대의 성감대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잠수함에 실린 토끼와 같은 존재라고 떠들지 않아도 굳이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대에 발 붙이고 사는 자들에게 발 딛고 버티기에 황량했던 현실은 그를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이는 송보웅 형에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일면식도 없었던 그에게 당혹스러움 새새로 느끼는 친근한 감정은 못생긴 놈이 시중에 못생긴 놈만 봐도 즐거워하는 일종의 동류의식일 것이다. 책을 펼치면 헤프게 웃을 것 같은 인상이며 키들키들 웃으며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해도 전혀 부담없을 것 같은 용모까지.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친근함과 함께 그와 세상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가슴아픈 현실을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 고약스럽게도 내가 그와 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窓口)는 그의 시집 『하늘에 돌을 던지며』라는 한 묶음의 안타까움뿐이다. 기껏 살아 있는 자들이 한 일이란, 한 시인을 이승과 저승 이쪽저쪽으로 갈라놓고 한쪽에는 서른일곱편의 안타까운 순결함이 자리한 시집을 다른 한족에는 故 송보웅‘이라는, 이름자 앞에 어색한 접두어 한 자를 달아놨을뿐. 그러나 이렇게 주절주절 읊었어도 나는 아직도 당혹스럽다. ‘유고’라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더 보탤 수도 없고 더 보여줄 수도 없는 마지막이라는 이 수식어에 대하여 분통이 터지고 할 말이 없다. 남들이 안달복달 칠십여 년을 보내는 길지도 않은 세월을 그는 왜 그렇게 서둘러 접어 두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더란 말인가. 다시 듬성듬성 남아 있는 가슴의 멍처럼 푸른 그의 시집을 펼쳐 든다. 서른 일곱 편의 시는 결국 나의 약속이었으니까, 나는 이 작품들을 통하여 나의 약속을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자들의 약속을 확인하는 셈이다. 한 사람이 살면서 세상에 끼치고 가는 많은 흔적 중에 그는 너무 순결한, 그러나 그렇게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한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공은 결국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다시 넘어온 셈이고 우리들은 우리들 양팔에 안긴 공을 누군가에게 전해주어야만 한다는 변치 않는 사실을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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