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7.8 | [문화저널]
1996년 8월 과월호
문화저널(2004-02-12 11:53:20)
문화가 ‘96 평화 통일 민족대회 겨레에 생명을, 이 땅에 평화를 분단된 지 50년을 맞이했던 지난 해, 전북지역에서 치러진 8.15 50주년 민족공동행사는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64개 단체가 모여 통일의 열망을 드높였던 대회였다. 준비위원만 1천 3백여 명이 참여했던 이 대회는 시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결코 소원하지 않음을 시사해 주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를 중심으로 올해초부터 통일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거듭한 끝에 전국적으로 '96 평화·통일 민족대회를 제안하게 되었다. 전북지역에서는 전북연합의 제안으로 지난 해 녹두통일한마당을 계승하고 통일운동을 확대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96 전북지역 평화 통일 민족대회가 8월 3일부터 15일까지 전라북도 내 일원에서 열린다. 「겨레에 생명을, 이 땅에 평화를」이라는 주제 아래 개최되는 제2회 통일녹두한마당 ‘96 전북지역 평화통일 민족대회는 각계각층의 통일의지를 한데 모아 전북도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각 부문·단체·지역별로 진행하여 ’통일‘의 길에 다함께 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열린음악회가 8월 10일 오후 6시부터 전주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다. 1부는 8.15 51주년 기념식, 2부는 열린음악회로 시민들이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명나는 무대가 기획된다. 해방 51주년을 기념하고 가로막힌 51년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분단을 극복, 통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사람과 사람이 띠로 이어 확인하는 자리인 인간띠 잇기 대회가 8월 11일 5시부터 7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전주풍남문에서 코아백화점 구간의 양쪽 도로변에서 진행된다. 한겨레 생명나누기 운동(이북동포 돕기운동)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는 북한동포를 돕고 당국간에 막혀 있는 불신과 대립의 벽을 민간이 허무는 역할을 하여 남북간에 화해와 평화의 기운을 높이고자 하는 바램이 실린 행사이다. 이천여 개의 저금통을 제작하여 돼지저금통 나누기 운동을 진행하고 가두에서 모금운동을 전개한다. 북한 수해 사진전과 VTR 상영 등의 행사를 같이 병행한다. 특히 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단체들은 단체의 위상과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업들을 한 가지씩 전개한다. 8월 9월 경기전에서 열리는 ‘96 통일맞이 글쓰기/ 그리기 대회는 초중고생들도 통일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고 올바른 통일교육의 장 역할을 해나갈 것을 관심으로 모은다. 시·산문·수채화·한국화·크레파스화 등 글쓰기/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8월 10일에 전주코아백화점 광장에서 수상작품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이밖에도 민주노총에서는 노동자 통일한마당을, 농민들은 북한동포돕기 쌀 모으기를 각각 전개한다. 이같은 다채로운 행사들을 기획하여 더 많은 시민들과 통일의 대열에서 함께 하고자 하는 ‘참여형 통일운동’은 그 동안 통일운동이 ‘보여주기식’ 통일운동에 치우쳐 왔다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이번 행사는 시민들의 의식에서 통일문제에 관한 관심이 멀어지지 않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제4회 여름시인학교 「삶의 바다, 문학의 바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민족문학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화와 경쟁력개념이 오늘의 대표적인 담론으로 자리잡은 요즈음 느닷없이 ‘민족문학’을 들고 일어선 소중한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거의 가사상태에 빠져든 듯이 보이는 민족문학을 놓고 이루어질 진지한 고민과 토론은 국적없는 문학과 난해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문학판도 속에서 한결 생동감 넘치는 한 여름의 주제가 될 것이다. 8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삶의 바다, 문학의 바다」라는 주제로 변산 고사포해수욕장 내 원광대학교 임해수련원에서 열리는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회장 이병천)의 제4회 여름시인학교가 그것이다. 대외 참가인들보다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기회로 준비되고 있는 이번 여름 시인학교는 현재 한국 문단에서 사그라들고 있는 ‘민족문학’에 관한 진지한 진단과 논의가 기대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사인씨의 「90년대 문학의 진로와 창작자의 임무」, 소설가 방현석씨의 「민족의 정체성, 문학의 정체성」, 시인이며 ‘문학동네’ 대표인 강태형 씨의「문학과 출판」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며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등 50여 명의 문인들이 초청된다. 이번 시인학교에서는 광주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최현태 씨가 초대되어 회원들의 작품을 노래에 담는「작은음악회」를 함께 연다. ●문의전화 (0652) 86-6811 국립전주박물관 여름 강좌 더위도 잊고 건강한 문화도 아는 피서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서 바다와 계곡을 찾는 무더운 여름. 국립전주박물관의 여름강좌가 열리는 자리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계획으로 여름을 잊은 적지않은 ‘몰입파’들이 모인다. 국립전주박물관은 박물관 문화학교를 통해 지난 7월 청소년강좌를 연데 이어 8월중에는 일반인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제5회 성인강좌를 연다.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제7회 청소년강좌」는 “전북지방의 역사·문화재 길라잡이-박물관과 청소년과의 열린 대화”라는 주제로 펼쳐져 시청각 교육과 유적지 답사를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폭을 넓혔다. 닷새 동안 열린 청소년강좌는 매일 두 가지 강좌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 각 강좌별로 101분 내지 120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형식이었다. 강좌 내용은 22일 입교식에 이어 ‘박물관의 역할과 기능’, ‘전북지방의 고인돌’, ‘바다와 제사’, ‘전북지방의 도자기’, ‘전북지방의 역사민속’, ‘조선시대 후기의 우리 그림’, ‘조선시대의 장신구’, 익산 미륵사지 발굴현장과 김제 금산사 ‘답사’ 등으로 꾸며졌다. 국립전주박물관 학예 연구실 7명의 연구원과 송화섭(원광대 강사)·김선태(전남대 강사)씨가 강사로 참여했다. 한편 이번 청소년 강좌에는 첫날 300여명에 이르는 도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해 ‘반짝’열기를 보였으나 이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학생은 평균 150여 명 정도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생들의 흥미와 동기를 보다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교육과정 개발과 강사들의 교수학습방법의 연구가 요구되었다.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엿새 동안 펼쳐지는「제5회 성인강좌」는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와 미술”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교육과정으로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이태진 서울대 교수), ‘고려말 조선초의 대외관계사’(나종우 원광대 교수), ‘고려말 조선초의 회화’(김정희 원광대 교수), ‘고려말 조선초의 도자기(김영원 국립전주박물관 학예관), ‘고려말 조선초의 금속공예’(최경천 국립광주박물관 학예관), ‘고려말 조선초의 조각’(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고려말 조선초의 건축’(류응교 전북대 교수), ‘고려말 조선초의 장식문양(잉영주 문화재 전문위원) 등과 유적지 답사가 펼쳐진다. 성인들의 자아실현의 욕구와 더불어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있는 박물관물화학교의 성인강좌는 일선 학교 교직자 및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접수를 받는다. 수강료는 실비를 제외한 기타 교육비는 무료이며 신청 순서대로 250명의 제한을 두고 있다. 신청기간은 8월 7일까지다. ● 문의전화 (0652) 223-5652 전라한국화제전 문화적 전통의 자긍심을 확인한 자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일에 게으르다. 이미 수많은 문화유산은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선인들의 삶의 훈적 또한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세월 뒤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예부터 뿌리 깊은 전북서화의 전통과 명예를 새롭게 이어내기 위한 「전라한국화제전」이 7월 3일부터 9일까지 전주시내의 8개 민간화랑에서 동시에 열렸다. 뿌리 깊은 예술의 전통 위에 주어진 이름, 예향에 걸맞는 축제로 전북 한국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전라한국화 제전은 오늘을 보여주고 내일을 조망해 보는 대규모 전시였다. 근대 작고작가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30대 이상의 원로·중견·청년작가 등 현역작가에 이르기까지 61명이 초대된 이번 전시는 작가들에게는 창작의욕을, 문화계에는 새로운 활기를, 지역 주민에게는 신선한 문화적 체험과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내용적으로도 근대 고작가들의 문인화부터 현역작가들의 전통 산수와 현대 수묵색채화의 다양한 형식과 내용이 담겨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오늘의 한국화단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기간 중에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들은 전통산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한국화의 변화와 새로운 실험의식, 소재들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북 한국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번 전시회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잚은 작가일수록 전통산수를 추구하는 작가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 반면 80년대 초반에 일었던 수묵운동으로부터 발전해 온 현대 수묵화와 채색화가 강세를 보였다. 젊은 층의 전통산수 기근현상은 전통 한국화의 형식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연구작업에 아쉬움을 갖게 했으며 상대적으로 젊은 층의 한국적 정서의 창출을 내세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소재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일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화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바탕을 마련해주기에 족했다. 현대라는 환경이 한국화의 독창적인 바탕과 특징을 변질시키는 방법만으로 역할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있었는가 하면 시대적 변화에 맞는 한국화 창출을 위한 과도기적 분출일 뿐 한국화의 전통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라는 긍정적 반응도 교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북의 한국화가 보수적인 풍토에서 고여있지 않고 새로운 흐름과 의식을 걸러내는 변화와 창출의 모색기에 이르렀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첫 번째 자리였던 만큼 운영상의 아쉬움도 제기되었다. 근대작고작가들을 제대로 조명하기에는 우선 자료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는가 하면 전시활동 뿐 아니라 이론적인 작업도 병행, 제전의 규모를 확대시키는 일이 요구된다는 과제가 제기되었다. 전국농민총연맹 전북도연맹 농민회관 건립 그들은 농민의 희망을 세운다 끝간 데 없이 추락하는 한국농업의 위기 속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의장 김영근)이 농민회관 건립을 위해 새로운 결의를 다지고 나섰다. ‘통일농업, 민족농업, 전북농업을 일구는 농민회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농업의 위기를 깨트리고 21세기 전북농업을 선도할 농민들의 센터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발전의 뒤안에서 마지막까지 희생을 강요당했던 한국농촌의 현실 속에서도 농민운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는 전북의 농민운동은 농민회관 건립을 통해 21세기 대비하고 보다 선진적이며 대중적인 사업들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들이 세우는 농민회관은 사무적이고 관료적인 공간이 아니라, 농민들의 모임방과 사랑방으로서, 농업에 관한 각종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농업정보의 산실로, 농민들을 위한 사무행정과 회의의 공간으로, 농민교육장으로 그리고 농산물 직매장과 창고로 활용될 것이다. 도연맹은 지난달 9일 전북대학교 녹지원에서 ‘농민회관건립으르 위한 작은자리’를 마련하여 하루주점과 문화행사를 열어 농민회관 건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각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는 유종근 지사를 비롯하여 각 단체장들과 사회운동단체들이 참여하여 뜻을 같이 했다. 또한 이날 문화공연에는 서울에서 달려온 노래패 꽂다지의 가수 류금신 씨와 전북여성농민 노개단의 노래공연이 펼쳐져 많은 박수를 받았다. 농민회관이 그들이 말하는대로 “내일의 농업을 준비하는 공간, 농민의 사랑방”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짓고자 하는 것은 농민회관이지만 그 자리에 세워지는 것은 농민의 희망이다. 문화칼럼 경쟁 없는 게임에 대한 거부감, 그 진실을 읽으라 글/이중호 전북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지난 7·19 전주시장 보궐선거는 튜표율 17.7%라는 선거사상 최저의 튜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세 후보 중 유일하게 정당공천을 받은 국민회의 양성렬 휴보가 무소속의 두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이 저조한 투표율에 대해 정치권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각장의 성명과 태도를 보면서 우리 정치사회의 후진성과 유권자인 전주시민들의 진심이 당리당략에 따라 여전히 왜곡되고 외면되고 있다는 아타까움을 금하기 어렵다. 이번 보궐선거에 국민회의를 제외한 어느 정당도 후보자를 내지 않음으로써 선거가 사실상의 경쟁없는 게임이 되었고, 역대 선거에서 DJ가 이끄는 국민회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이 지역 유권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굳이 투표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시장 당선자인 양성렬씨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당선소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억측과 견강부회, 그리고 사실상의 부전승을 거둔 승자독식의 선거주의자의 오만이 배어있을 뿐, 상처받은 전주시민의 자존심을 도대체 헤아리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애틀란타 올림픽 여자 100M 결선 골인방면은 매우 시사적이다. 미국의 비버스와 자마이카의 오띠가 10초 94의 똑같은 기록을 내고서도 고개숙인 디버스가 머리칼로 앞서 사진판독을 거쳐 그야말로 가반의 차이로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 6·27 당시의 국민회의 경선에서의 패자가 전임자의 비리에 의한 사임으로 마침내 오늘의 승자가 되어 ‘투표율과 나에 대한 지지와는 무고나하다’고 한다. 불운의 오띠가 보인 의연한 자태, 전주시민의 고개숙이지 않은 자존심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이번 보궐선거에 국민회의를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 후보자를 공천하지 못한 것은 당선가능성(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이 괜찮은 후보자를 공천해서 정당간의 경쟁구도를 만들었다고 해도 보궐선거가 사실상의 경쟁 있는 게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역대선거, 특히 작년의 6·27 지방선거와 금년의 15대 총선결과만으로도 여야를 막론하고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 지역에서 국민회의가 향유하는 지역패권주의하에서 후보자 요인은 애초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보궐선거도 바로 이 지역패권주의의 바람직하지 못한 부산물에 다름아니다. 국민회의는 이를 외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신한국당의 비교적 근접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처방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기초단체장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6·27 이전에도 있었던 얘기고 6·27 지방선거에서의 대패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사후에 정치적 패배를 술수로 만회해보려는 의도가 공천배제의 주장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보궐선거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 후보를 못내면서도 기초단체장의 정당공천배제를 위해 당론으로 안낸다는 식의 주장은 약자의 콤플렉스에 의한 거짓위장이고 명분과 실질이 다른 당리당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대선거에서의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으로 인한 최대의 희생자인 DJ와 국민회의가 텃밭인 이 지역에서나마 향유하는 패권을 과연 누가 시기할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정적들의 시기가 아니라 그들이 향유하는 패권 그 자체이다. 이번 보궐선거의 저조한 투표율의 1차적 책임은 마땅히 국민회의에 돌아간다. 6·27선거에서 민주적 방식이라고 자화자찬하며 대의원들 경선을 통해 공천한 후보가 도덕성 시비와 비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결국 사임하였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오히려 대의원들에 의한 선출방식에 전가하며 위원장들이 위임을 받아 후보자를 추대하기로 한 국민회의의 5인 추천위원회의 대안도 유효한 결정이 되지 못한채 DJ의 낙점을 기다려야만 했다면, 패권적 정치세력들의 능력과 민주성을 우려할 만하다. 국민회의가 굳이 시민들에게 사과나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고 경쟁력을 갖지 못해 후보를 내지 못한 신한국당이나 민주당에 대해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공당의 책임을 ane는 것은 자칫 ‘사자의 눈물’로 오해되기 쉽다. 시민들의 정서를 외면한 결과 선거과정에서도 ‘도지사급의 청렴하고 능력 있는’ 상품을 내놓고 중앙의 인기있는 세일즈맨들까지 동원해 벌인 국민회의만의 대할인 판매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모여들지 않았다. 잦은 선거에 동원된 관중들이 갖는 경쟁 없는 게임에 대한 거부감은 곧 지역 정치사회에서의 국민회의 의 패권에 대해서조차도 이제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 아닐까? 한편 이번 국민회의의 시장후보자 공천신청에는 전현직 고위공무원을 비롯하여 교수,변호사,의사 등이 대거 몰려들어 바야흐로 이 지역 정치사회의 활성화가 도모되는 것이 아니냐는 착각마저 갖게 했었다. 물론 한국정치 사회의 수동성과 파행성은 단지 이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소위 문민시대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론의 분화와 이데올로기적 지배하에서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 3김시대, 혹은 3국시대로 회자되는 작금의 국내정치현실에서는 이념의 상실이 당연시되는가 하면, 정권 교체기를 맞아 정치엘리트들은 권력 장악에만 매몰되어 정치사회의 자율성을 포기하거나 희생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사회의 대표성조차도 지역감정의 표출이나 이미지 조작이 가능한 선거방식에 의해 왜곡, 굴절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사회의 민주화와 활성화를 위하여서는 지역공동체의 성원들의 참여가 불가결하다. 3년마다 혹은 4년마다 한 번씩의 선거에 투표참여의 형태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정치현장에의 관심과 지지의 동원, 정치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당선 직후 ‘투표율과 나에 대한 지지는 별개’의 문제라던 양상렬 전주시장이 취임사에서는 시민의 여론에 귀기울이겠다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당부했다고 전한다. 이 말들이 구래의 임명직 시장들의 상투적인 담화와 차별성을 갖고 시민들에게 공감을 가져올 수 있으려면, 나아가 중앙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과 시민적 대표성을 갖추고 지역 정치사회를 활성화시켜 시정의 민주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정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구하려면 패권주의와 선거주의에 대한 경로로서의 이번 시장보궐선거에서의 시민 대다수의 투표불참의 진의를 여론조사를 통해서라도 깊이 헤아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자치의 시대에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국제화니 지역개발이니 하는 정치적 구호나 공약들은 자칫 이데올로기적 담론 혹은 공염불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중호 / 전북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정치학을 전공했고 전북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남사회연구회, 민교협, 시민운동연합 의정지기단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은 전북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집 농촌의 위기, 문제는 경쟁력이 아니다 농촌과 농업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정부의 자만과 방심으로 마침내 쌀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문제의 심각성을 안식한 정부는 서둘러「쌀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농민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커다랗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국민소득 만불시대에 농촌은 버려진 땅인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신농정이 엘리트 농업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펼쳐지고 있을 때 농민들과 농업학자들은 조만간 쌀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애견하고 있었다. 거기에 농민들은 통일 이후에 대비하는 쌀농사의 조건들을 따지면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쌀은 여전히 안전한가. 문제는 한국의 농업을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선진국형 신농정은 벌써부터 실패의 조짐을 보이고 있고, 농촌은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농민들은 “농촌에 대해 치밀하고 조직적인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농촌은 황폐화되어 마치 거대한 종합병원이 되어있다. 어느 한곳 성한 데가 없이 무너져 가는 농촌이 이번 호 특집으로 주제이다. 버려진 집들은 물론이고 벌써부터 버려진 땅들이 농촌 곳곳에 보이고 있다. 그 버려진 땅들을 보고 우리는 본능적인 아픔을 느낀다. 그 땅들은 성장의 모태였고, 우리들 존재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고, 또 잊고 싶어한다. 그들의 고통에 눈감고 있던 사이에 오늘의 농촌에는 사람이 남아나질 못했다. 사람이 없는 농촌은 그 존립의 기반을 위협받는다. 그리고 그 존립의 기반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무서운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그 조짐은 현실화되고 있다. 농가인구와 경지면적의 지속적인 감소, 경쟁력에서 월등하다던 외국쌀의 가파른 쌀값 상승은 그동안의 정부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묻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21세기의 미래형 선진농업이라는 장미빛 프로잭트가 아니라, 농민들의 희망이다. 그 희망에 기대지 않는 정책은 21세기 한국 농업을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이번 특집의 첫 번째 글은 한국 농촌의 문제와 쟁점을 개괄적으로 점검해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글은 최근 발표된 정부의 「쌀 종합대책」에 대한 평가로 전북대 양병우 교수가 점검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글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 농민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호응을 바란다. 농민이 무너지는 날, 우리의 삶과 터전도 무너진다. 글/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쌀농사를 버려라! 지난 7월 22일자 조선일보는 1억6천만원의 연소득을 올리는 군산의 한 농부의 이야기를 ‘농촌도 기회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실어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전북지역의 쌀 전업농 1천5백66명 가운데 77명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식용쌀의 수입결정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전업농 자격을 집단 반납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7월 23일자 한겨레 신문은 ‘쌀농사만 지으라더니 쌀 수입’이라는 제목을 붙여 94년 전업농으로 지정된 한 농부의 쌀포기 선언을 실어 본격적으로 쌀 논쟁의 불을 지폈다. 쌀논쟁의 제2라운드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어느쪽이 진실에 가까운가. 모든 열악한 조건을 딛고 쌀농사 하나로 일구어낸 인간승리인가, 아니면 ‘힘들여 농사 지어봤자 생산비도 못건질 판’이라는 전업농들의 극잔적인 저항인가. 과연 쌀농사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지니고 있는 걸까. 이틀을 사이에 두고 보도된 두 개의 엇갈린 사례는 한국 농업의 상반된 전망을 기묘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언론이 선호했던 인간승리의 드라마(성공하는 농민의 사례)들은 과감하게 ‘쌀을 포기’했다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지난해 전남도지사는 정부의 수매체 축소에 맞서 심지어 한국 농업의 살 길은 수출농업이며 따라서 쌀농사가 수지가 안맞으니 전남은 쌀농사를 포기하고 모두 특작으로 전환하겠다고 정부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수지가 안맞으니 쌀농사를 버리겠다는 발상이나, 농협과 정부기관들이 공들여 뽑아준 성공사례들은 모두 경쟁력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경쟁력 개념으로 본다면 한국의 농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농사짓는 농민들과 의식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오늘의 경쟁력 사회는 농민들에게 ‘쌀을 버려라!’고 힘차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경쟁력, 김영삼 정부 최대의 히트상품(?) “저의 경쟁상대는 덴마크 농민입니다.” 세계화 담론이 한동안 대히트를 치고 있을 때 TV와 시내버스 광고판을 장식했던 세계화 광고의 카피는 화려했다. 그 세계화 광고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견고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억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이 김제, 철원, 익산 등의 대평야 지대에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들의 특별한 삶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농민들이 땀흘려 일한다고 해서 성공을 거둘수 없다는 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가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의 농민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덴마크 농민이 아니라 정부정책과 정치였다. 한국 농촌의 위기야 근대화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문제이지만, 지금 한국 농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94년 정부가 발표한 6·14농어촌발전대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내놓은 농어촌발전대책의 정책목표는 바로 경쟁력 강화에 있었다. 농업에 있어서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구체적으로는 소수의 정예화된 농민들로 최대의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이른바 선진국형의 야심적인 농촌 프로잭트였다. 정부측의 입장이 경쟁력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었다면 농민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농민들이 내세웠던 것은 첫째는 농업이 국민들에게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농민 소득을 적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의 문제인식은 궁극적으로는 식량안보와 무너지는 쌀 농가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입장은 지금까지는 한국농업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대립점이 되어 있다. 농촌, 수탈과 배제의 역사 한국사회에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농촌은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왔다. 경제성장의 방향을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으로 설정한 이상 농촌은 끊임없이 산업인력의 저수지가 되어왔고, 수출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생산비 절감의 마지막 화살은 농민들의 희생을 담보한 저곡가 정책이었다. 수출한국의 빛나는 명예의 뒤안에서 농민들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번번히 밀려났다. 도시로 돈벌러 떠난 자식들 논팔고 소팔아 뒷돈 대주느라 바빴던 농민들의 한맺힌 스토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떠나는 농촌’은 산업화 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단적으로 1960년 1백70만이었던 전라북도의 농가인구는 80년대들어 1백만 이하로 줄어들었고 95년에는 48만 명으로 떨어졌다. 60년에 비해서 72.1%의 인구가 농촌을 떠난 것이다. 산업화 우선전략 속에서 정부는 농가인구의 감소를 정책적으로 유인 또는 방조했다. 정부는 공공연하게 1차산업의 농업인구를 전체의 10%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덕지덕지 붙어있는 논과 밭은 끝이 보이지않는 드넓은 대평야로 바꾸고, 최첨단 농기계로 무장한 소수정예의 농업인력들이 그림 같은 대저택을 짓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선진국형 농촌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꿈이었다. 90년대 들어 우르과이라운드로 농민들이 생사를 걸고 투쟁에 나서자 정부는 결과적으로 더욱 강력한 엘리트 농업정책으로 맞섰다. 농민들의 투쟁과 확산되는 농촌의 위기의식 속에 정부는 대통령직속의 ‘농어촌발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97년 6월 14일에는 ‘농어촌발전대책 및 농정개혁방안’을 확정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농업의 수출시장 확대를 목표로 하는 경쟁력 강화에 있었다. 전문적인 농어가 10만호를 2004년까지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여 기업적 경영기법을 도입케하고, 농지소유 상한선의 폐지와 자격완화를 통해 농업의 규모화를 이루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98년까지 42조원을 투입하여 구조개선사업을 펼치고, 농어촌특별세를 신설 10년간 15조원을 농어업경쟁력 강화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농촌의 위기는 어쨌든 한국농업을 다시 변화시키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농정개혁인가 94년 농어촌발전대책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성과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정부에서는 “WTO출범 등 변화된 여건에 대응하기 위해 농지, 양정, 협동조합, 시장유통제도를 개혁하는 등 농정의 새로운 틀과 장치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농정의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과 농민들은 정부의 정책이 명백하게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부가 농업정책을 농촌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경쟁력 개념에서 접근함으로써 농민들의 현실적인 요구와 맞아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농정의 목표와 수단이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장원리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시행에서는 농민의 자율권을 묶는 규제가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쌀자급 실패와 식용쌀 수입결정은 정부의 전업농업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농어촌발전 대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문제가 먼저 짚어져야 한다. 농어촌발전대책의 핵심인 농지법의 제정은 농지취득조건을 완화시키고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하여 농지제도의 구조개선을 노린 것이었다. 이 정책은 결국 영세, 생계농 보호위주의 소유제도를 질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현재의 영농 주체인 다수의 가족농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가능성 있는 땅은 자본을 중심으로 모으되 짜투리 땅은 과감하게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전업농의 양성과 구조개선을 위해 42조원의 투융자를 98년 까지 앞당겨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문제의 이 42조 투융자는 실제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선 투융자사업이 정확한 현장검토와 장기적인 전망을 결여한 채 현장중심이 아닌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사업자 선정과정과 집행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여기에는 지방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마인드와 자율성 부족, 그리고 취약한 재정 기반도 실패에 한몫하고 있었다. 또한 농지에 대한 이런저런 제한들이 풀리면서 비농가소유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진 것도 불길한 조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예측되었던 쌀 부족의 문제였다. 마침내 쌀자급 실패로까지 농어촌발전대책이 발표되고 정부가 농지의 48%만을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할 깨부터 학계와 농민단체들은 쌀자급 실패를 예견했다. 또한 예견되는 쌀자급 실패 속에서 살의 민간유통 활성화를 통해 시장경제에의 적응력을 높인다는 정책도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정부정책의 핵심사항이었던 2004년 까지의 전업농 10만호 육성도 불발되어, 이제는 정부 스스로가 6만 호로 수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쌀자급에 관한 한 정부는 상당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80년대 풍작이 계속되었고 90년에는 쌀재고가 1천 4백만 석이나 될 정도였다. 그러나 93년 수해를 거치고 지난해 가뭄과 냉해를 만나면서 올해 재고가 2박 78만 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여기에 가을 이후 가파른 쌀값 오름세는 ‘쌀 과잉’을 염려하던 정부를 다급하게 만들었고,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현실화되면서 철썩같이 약속했던 식용쌀 수입불가를 스스로 철회했다. 마침내 정부는 지난 6월 14일 ‘쌀 종합대책’을 확정 발표하고 일련의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로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고 농민들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정책변화였다. 버릴 수 없는 쌀, 개념을 바꿔라. 전북대 농경제학과 소순열 교수는 정부가 시행해 온 일련의 농업정책으로 부분적인 생산기반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소수의 전업농민을 위한 것이며, 결국은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발전대책은 결국 농민들의 탈농을 권장하고 있지만, 사람이 없는 농촌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책이 계속되는 한 쌀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쌀자급 실패와 함께 ‘식량안보’라는 개념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직접적인 소득이 전혀 없음에도 국방을 지키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듯이 농업과 식량을 지키는 데도 같은 개념이 적용되어야한다. 무작위적인 경쟁력 개념은 농촌의 피해뿐만 아니라 민족의 자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가격경쟁력이란 국가가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지원하느냐에 달려있다. 농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하는 한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농민들은 고단하다 중앙정부의 농정에 대한 치밀한 검토와 함께 지방정부의 역할도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앙 정부가 농업 관련부서를 축소했고, 전북도는 유종근 지사 취임 이후 농정국의 규모를 대폭 감축했다. 그것이 농업에 대한 경시 때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지자체 역시 중앙정부와 똑같이 농업을 경쟁력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수출농업의 기치 아래 지방정부는 농업을 지역사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 역시 농업문제를 지역주민의 이해와 관련시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적 규모에 맞는 적정한 단위의 규모화와 생간의 조직화를 위해 지방정부는 농업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고민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팔도를 먹여살렸다는 농도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는 전북도의 경우에 더욱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전북의 농산물을 듣고 말도 안되는 곳에 팔러 다니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해결의 열쇠는 농민과 지역주민들 공동의 몫이다. 올해 초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올해의 전략사업으로 의료보험통합실현과 쌀 자급을 위한 정책 마련을 내세웠다. 전농은 농민들의 삶에 전례 없이 강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위기 속에서 ‘이제는 경쟁력을 가지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 어떤 희망도 바라보이지 않지만 농민들은 굳세게 버티고 있다. 그들이 무너지는 날, 우리의 삶과 민족의 터전도 같이 무너진다. ‘말짱 도루묵이’와 ‘기우’의 농업경제학 쌀, 왜 또다시 문제인가? 글/양병우 전북대 교수·농경제학과 조물주는 참 비상한 재주도 가졌다.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또한 꼭 필요한 것은 기억하게 하시고 필요없는 것은 잊게하여 편안히 살 수 있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되는 생각들을 지울 수 없다면, 우린 자꾸 되살아나는 그 고통에 파묻혀 헤어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 속에 사는 ‘기우’같은 사람 밖에 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쓰라린 잘못된 행동들을 너무도 쉽게 기억 속에서 의미 없이 없애버린다면, 우리 모두는 생각 없이 사는 ‘말짱 도루묵이’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기우’와 ‘말짱 도루묵이’들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정부의 식용 쌀 수입 결정으로 다시금 농민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배신감만 늘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 ‘말짱 도루묵이’들의 착상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자는 만약 당선된다면, 대통령직을 걸고 어떠한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쌀 수입은 막겠다고 공언을 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93년에는 버젓이 쌀과 모든 농산물류의 수입을 승인하고 UR협상 타결안에 조인하였다. 이 공언 불이행에 대해 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용서와 국민의 이해를 구했던 기억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결국 국민과 농민을 속인 기만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불감증이라는 심한 중병을 앓고 있는 탓에 이런 기만에 너무도 관대하게 쉽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의 이러한 관대함이 또다시 ‘말짱 도루묵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부는 95년 가을, 앞으로 10년 동안 최소시장 접근의 이행에 의해 수입되는 쌀 전체물량을 가공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수입된 쌀은 생산농가에 영향이 없도록 국내 쌀 시장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농민들의 증산 의욕을 높이고 국내산 쌀 가격은 보장될 것이라고 대국민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러던 정부가 이제는 올해 수입쌀을 가공용이 아닌 주식용으로 대처하기로결정하고 조달청을 통해 국제입찰에 들어갔다. 문자 그대로 국민과 농민에 대한 기만을 밥먹듯이 계속 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30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정치인과 행정관료의 무책임적이고 태만적인 정책 관행이 문민 정부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는 한 우리 농정의 정책적 신뢰 회복은 요원한 말짱 도루묵이다. 더욱이 쌀 자급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는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쌀,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올해 쌀 소비를 충족할 수 있는 재고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올 10월 양곡연도말 주식용 쌀의 예상 재고량은 약 2백 78만 섬으로 세계농업기구(FAO)의 재고권장량 5백 50만 섬(국내 일년 총소비량의 17%)의 절반에 해당된다. 이의 원활화를 도모하는데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4월 말 현재 정부보유 가공용 통일쌀의 재고량은 67만 2천 섬에 불과하다. 한해 동안 사용되는 가공용 쌀량이 약 1백 60만 섬인 점을 감안하면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약 5개월 후인 10월 초에는 가공용 쌀의 재고는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즉 우리의 먹거리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쌀농사에 대한 영농의욕이 자꾸 떨어져 휴경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식량안보가 위기에 처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학계와 농민단체가 오늘의 상황을 우려하여 90년부터 줄곧 쌀 생산과 식량안보 대책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을 ‘기우’로 치부해버린 ‘말짱 도루묵이’ 웃어른들(?) 덕분이다. 정부는 지난 93년에 ‘누적된 과도한 양곡특별적자는 정부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고 88년 말부터 시작된 쌀의 과잉생산과 과잉 재고누적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이중곡가제 폐지와 쌀 수매가 동결의 당위성을 들었다. 실제로 그 후 이중곡가제는 점차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고 수매가 역시 거의 동결되었다. 이와 동시에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줄기차게 ‘쌀과잉 이대다!’, ‘쌀을 포함한 식량 수급관리에 절대 문제없다!’라고 소리높여 대응해 왔다. 이 높은 목소리가 농정불신으로 이어져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꺾고 오늘의 쌀 문제를 다시 만들었다. 쌀 생산 감소와 재배면적 감소의 원인은 결국 쌀 생산농가의 소득 감소와 이에 따른 농가인구 감소 및 절대적 노동력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소득 저하와 노동력 문제는 높은 쌀 가격 보장과 기계화 추진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또다시 상처입은 농심과 꺾긴 영농의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식용쌀 수입결정의 배경에 대한 소문이 북한에 대한 쌀 지원 대비를 위해서다. 혹은, 쌀 수출국인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한 굴복 때문이다, 또 일부에서는 최근에 전국 순회토론을 거쳐 발표된 「쌀 산업발전 종합대책」(이하 「쌀 대책」으로 칭함)은 식용쌀 수입을 위한 정치적 무마용이었다는 등 무성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미 UR 타결시 식용쌀 수입을 결정했으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발표할 수 없었고, 이를 발표할 기회만 노리다가 「쌀 대책」발표를 기화로 터트렸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무성한 루머들이 곧 현재의 농정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 말해주고 있고 정부는 이에 대한 깊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여기서 정부가 지난 6월 14일 발표한 「쌀 대책」을 잠시 짚어보자. 「쌀 대책」의 주요 골자는 하한가격보장, 약정수매제 도입, 노령농가 은퇴보조금제 일부 실시, 그리고 농지보존 강화시책 등이다. 이 시책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은 역시 수곡추매제도 개편에관한 사항이다. 개편된 추곡수매제도에 따라 정부는 약정가격을 쌀 파종기에 제시하여 농가와 수매 약정을 맺고 약정금액의 일정 수준을 선도금으로 지급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약정 농가는 살 수확기에 약정가격대로 정부 수매에 응하거나 혹은 수매에 응하지 않고 시장에 출하해도 된다. 달리 말하면 앞으로 쌀 수급은 되도록 정부통제보다는 자유시장 원리에 맡기겠다는 의지이다. 「쌀 대책」이 쌀 자급능력을 높이고 식량 수급 안정화를 위해 상당히 긍적적인 측면을 담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남겨놓고 있다. 즉 약정가격의 수준 및 설정방법, 그리고 선도금 지급정도의 결정 문제는 또 다시 물가안정논리에 근거한 정치적인 볼모가 되어 농민에게 불리한 수준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 이제까지의 정책경험을 살기해 볼 때, 「쌀 대책」의 효율성은 이 제도와 정책을 운영하는 정책 의사결정자들 그리고 고매한 윤리의식(?)에 의해 판가름될 수밖에 없다. 이 윤리의식을 믿고 식량안보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법적으로 그 시행방법을 명시하는 편이 농민을 위해서나 국가적으로나 훨씬 신뢰도를 높이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약정가격은 매년의 물가인상율을 반영하고 선도금도 약정가격의 50% 수준이 되도록 그 구체적인 수치를 제도적으로 명시해야만 한다. 쌀 문제의 재발을 장기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쌀농업자의 소득을 보장하고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높이는 방안 이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이를 위해서는 ‘손실 소득보상’, ‘휴경보상’, ‘경작불리지역 개발지원’ 그리고 ‘환경보전 지원’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직접지불제를 시행해야만 한다. 이보다도 더 시급한 일은 책임 농정의 현실이다. 식용쌀 수입으로 야기된 혼란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또 다시 믿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있다. 만약 쌀 수급이 원활할 경우 일정기간 비축후 가공용으로 공급할 계획이란다. 우리의 정치, 행정관행으로 볼 때 극히 비현실적인 또 다른 기만성 발언이다. 장관과 중앙부처의 의사결정자인 국장이 식은 죽 먹기로 바뀌는 정치상황에서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책 의사결정자들과 실무 책임자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 벗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 결정의 책임성을 유지할 방도가 없다. 이들이 신분상으로 인사상으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해바라기성 정책결정 체제에서는 책임 농정 구현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독립성이 우선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야 비로서 직책별 책임 행정체제를 실현할 수 있고 전직 후라도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쌀 문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해결될 수 없고 결국 최고 통수권자의 정치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양병우 / 57년 남원 출생, 81년 전북대를 졸업하고 덴마크 왕립대 자원경제학과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난해 전북대에서 교수로 임용되었다. 농업정책을 전공했으며 한국의 농업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씨앗을 뿌려야 한다 농업 위기와 극복 방향 글/황만길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정책실장 남들 다하는 결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요즘은 농업·농촌문제에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애써 외면하거나 침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골치아픈 문제에 신경쓰지 않겠다는 무관심의 표현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이것저것 따지고 들어야 골머리만 아프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느냐는 것일 게다. 정부 당국이나 언론도 농업·농민문제의 본질이나 주원인은 애써 접어두려 하고 현상적이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다루려 한다는 인상이 짙다. 예를 들어 불과 4~5년 전만 해도농촌 총각 문제를 농업·농촌의 문제 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더니 이제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떼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결책이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연변 교포와 결혼을 많이 했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인지 선뜻 단언하기가 어려워 곤혹스러운게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자 농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필자가 아는 형님 가운데 한 분은 나이가 서른 다섯이 다 되도록 결혼을 못해 연변 교포 처녀와 맞선을 본 후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교포 처녀와의 결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 형님 부부는 별 탈 없이 부지런히 농사 지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또 한 형님은 나이 사십이 되도록 아직 결혼을 못하셨는데 농촌에 사니까 여자 만날 기회가 적어 더욱 장가가기가 힘들어 진다며 객지 생활을 하나 결국 견디지 못하고 베필도 못 구하고 귀향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업·농촌 위기의 실체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 만하다거나, 앞으로 농촌도 비전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어떤 농민은 자신의 연간 소득이 몇 천만원입네 하고 자랑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 여기저기에 모습을 내밀면서 성공 사례를 전하기고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우리 농업과 농촌은 위기가 아니고, 못 사는 농민이 있다면 본인이 게으르거나 아니면 재수가 오지게 없거나 농사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필자는 그러한 견해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한국의 농업·농촌 현실은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는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 농업은 몇 사람이 기술을 축적해 성공해서연간 수 천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해도 휠씬 더 많은 농민은 저소득과 저농산물가격에 시달리는 악순환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성공한 일부 농민 또한 그를 에워싼 농업·농촌이라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공한 농민보다 실패한 농민이 더 많고 성공한 농민도 농업·농촌의 위상을 제대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 당당한 이 땅의 주인으로 사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민으로 평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원하는 환경에서 최소한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제 권리를 누리며 도시민과 같은 생활을 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농업·농촌은 위기라고 진단해야 할 것이다. 농업·농촌은 과연 위기인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현재 우리 농업과 농촌이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농업이 위기인가 아닌가는 현재의 조건과 향후의 전개 방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가운데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선 정치적으로 농업·농촌·농민은 왜소화되고 희생당해 왔다. 잘 알다시피 지속적인 공업화 정책과 독재 정권아래서 우리 농민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거나 지켜 줄 통로를 찾지 못했고, 정치적 결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한 주장도 할 수 없는 엄흑한 시절을 살아야 했다. 일방적으로 주는대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현실에서 농민의 자주성은 옹호되지 못했고 정치적으로 홀대받았으며 어느 계층이나 부문보다 낙후되는 문제를 야기했다. 지방자치 실시이후 우리 농민이 지방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권한이 제도적·법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할 일은 많은데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만 봐도 여전히 우리 농업·농촌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음을 증명해 준다. 정치권이 농업은 그 어느산업 못지 않게 중요한 분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농업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농을 비롯한 자주적 농민단체의 결성을 비롯해 농업·농촌의 정치적 위상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정부의 정책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농업·농촌은 경제적으로도 낙후되어 위기에 직면해있다, 소득은 도시가계 평균소득의 90%에 못 미치고 있고 생활 수준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장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는 계층이고,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 특히 쌀값은 지난 수십년 동안 모든 생필품 가운데 가격 인상률이 가장 낮은 품목 중에 하나이다. 우리 농업·농촌이 발전하고 성장해왔다면 이는 산술급수적인 것을 의미할 것이다. 모든분야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정당한 자리매김을 받았는데 우리 농업·농촌은 더디 가도 한참을 더디 갔다는 것이다. 현재 1정보(3천 평) 미만의 농가가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농민들 경제수준이 어떠한가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또한 우리 농업·농촌은 사회 교육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농민 가운데 한 분의 의식도 건강하고 그럴 만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초등학생인 자녀를 도시학교에 편법을 동원해 보내고 게신 분이 있다. 그 분의 말씀인 즉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봐 도무지 농촌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농촌교육 현실을 질타했다. 비단 이분 뿐 아니라 농민들 대부분이 자녀교육 때문에 농촌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고 이미 이농·탈농의 주요한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농민은 어느 곳에 가도 무시당하고 홀대 받는게 현실이다. 사회적 소외감과 위화감은 그 뿌리가 깊어 농민들의 불신은 깊어만 가고 있다. 필자는 농민운동을 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 외에도 이곳저곳의 많은 농민들을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농업이 사회적 천대를 받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농촌 총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수백 군데 마을을 다녀보지만 장가 못 하고 혼자 늙어 가는 농촌 총각 없는 마을을 필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십을 넘긴 농촌 총각도 수두룩하고 한 마을에 2~3명의 노총각은 보통이었다. 젊은 여성이 농촌에 사는 것을 기피하는 현실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위기의 농업·농촌을 만든 책임은 정책 책임자들이 져야 할 것이지만 직접적 피해는 농촌에 사는 농민들 특히 총각으로 늙어가는 젊은 농민들이 받는다는 데 그 심각성과 모순이 있다. 문화 복지 면에서도 우리의 농업·농촌은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문화시설의 도시 집중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 농촌은 저급한 4류 문화 상품과 청소년 유해 상품은 있을지언정 문화라는 말 자체가 어색하게 들릴 만큼 현실은 심각하다.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해 각종 의료시설, 경로당, 요양시설 등이 그 규모나 시설면에서, 그리고 숫자에서 사회복지 시설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빈약한 실정이다. 여성농민들을 위한 제도나 시설은 전무하고 기껏해야 시·군 단위에 여성회관 하나 지어 놓고 활용조차 하지 않거나 활용한다 해도 관변 여성단체의 소모임 장소로 전락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농민들의 소원이 돼 버린 의료보험 통합 하나 마무리 짓지 못하는 현실은 오늘 우리 농업·농촌의 문화·복지 수준을 가늠케 한다. 이처럼 우리 농업·농촌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과연 농촌은 살 만한 곳인가. 현재 사는 농민이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살펴봐도 자신있게 그렇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농지가 대량 전용되어 잠식되고, 농산물 특히 쌀값의 생산비는 보장되지 않고, 농가인구는 해마다 급속히 감소해 농촌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어느 누가 농업·농촌이 위기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농업·농촌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벼랑에 몰린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가. 물론 결론은 농업·농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맛나는 곳으로 회생시켜야 한다. 농업 농촌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많은 난관도 있을 수 있고 막대한 예산도 투자돼야 할 것이지만 농업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와 직결된 분야이므로 확고한 정책 의지를 가지고 반드시 국가의 기초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전농은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WTO(세계무역기구) 이행 특별법 시행령을 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WTO이행특별법은 WTO체제가 출범할때 우리 농업이 입게 될 막내한 타격을 예방하고 국내 농업을 보호 육성할 최소한의 장치를 해 놓은 것이다. 당시 우리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서 U.R협상이 타결될 때 이 법을 얻어냈지만 현재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아 사문화되고 있다. WTO이행 특별법은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인 우리나라의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고 협정의 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보장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고, 우리 나라의 정당한 경제권 이익이 침해될 때 이를 용인해서는 안 되도록 정해져 있으며 남북거래는 민족 내부의 거래로 인정하도록 되어있다. 농림수산부의 수입에 의해 피해를 볼 때 특별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국민건강의 보호 및 관세와수입 이익금의 농어촌 투자를 명문화했다. 협상에 이어 권익 확보를 의해 권리와 의무를 행함은 물론 특정 품목의 국내 피해가 클 때 수정하기 위한 재협상을 추진해야 하며 U.R 협정이 허용하지 않는 보조금을 지급하면 적절한 조치를 위하도록 하는 한편 환경의 보호, 수입 기관의 지정, 직접지불제와 같은 국내 지원정책의 시행 등을 담고 있는 매우 의미 있는 특별법이다. 여기에 생산자 단체의 농림수산물 수급조절사업에 대한 지원과 농림수산업의 구조조정 사업의 실시를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조항이 시행령으로 대통령령에 의해 정하도록 되어 있다. 시행령이 제정돼 집행되면 우리 농업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매우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시행령을 제정하지 않아 사문화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루속히 시행령 제정을 통해 농업발전을 앞당겨야 한다. 여기에 사회복지의 실현을 위해 의료보험을 통합하고 농촌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쌀은 반드시 자급할 수 있도록 가격, 유통, 생산, 수매, 소득, 비축 및 물가정책의 전면적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 가격 정책은 적정가격이 보장되도록 생산비 보장과 함께 계절 진폭을 25%이상 허용하고 물가정책에 있어 지나치게 높게 반영되는 물가지수는 개편되어야 한다. 비축은 식량안보적 차원에서 적정량을 비축해야 하고 수매정책은 농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수매가와 수매량이 결정되어야 한다. 유통정책은 양곡시장개혁과 미곡종합처리장의 중간평가 및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득 정책은 직접지불제를 폭넓게 도입해야 하고 생산정책은 쌀 재배변적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함께 소비자는 건강한 우리 농산물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야 하고 농민은 적정가격을 받는 가운데 우수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해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 이외에도 수입농산물에 대해 통관심사를 강화하고 전통 문화의 보존과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예산을 투자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면밀히 원인을 분석해 농촌에 대한 재투자를 해야 한다. 희망의 땅은 가능하다 지면 관계상 대안을 폭넓게 세부적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WTO이행 특별법 시행령 제정을 통해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가 제시하는 일련의 주장이 농업정책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