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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 | [문화칼럼]
의욕이 넘치면 형식이 타락한다.
글/홍석영 소설가·원광대 국문과 교수 (2004-02-12 12:21:43)
지방마다 빠짐없이 해마다 향토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향토의 전통성을 고양하고 문화적 긍지를 선양하면서 주민들의 일체감을 조성한다는 데에 뜻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지방자치시대에 이런 행사를 자발적인 주민의 주도로 개발하고 추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남원의 춘향제나 전주의 풍남제 등을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관주도로 이뤄지거나 아니면 민간을 허울로 내세우고 실상은 관이 주관해 나가는 따위의 행사가 더 많다. 행사의 재정적 뒷받침을 지방 자치단체가 부담해야 되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런 행사일수록 무사 안일의 연례행사로서 전혀 독창성이 없는 그저 일과성 행사로 되풀이 되고 있을 뿐이다. 향토적 특성으로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이벤트로서 충분한 연구와 개발이 뒤따라야 되는데 도무지 그러한 적극적인 문화의식이 없다. 그러다 보니 매년 치르는 행사 종목이라는 게 그게 그것인 천편일률의 고정 메뉴가 되어 마냥 식상을 느끼게 한다. 관주도의 행사일수록 관료주의적 타성으로 이러한 폐해는 더 크다. 향토 문화제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생각한다면 기획단계부터 좀더 전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발굴 계승한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불만을 전제로 하면서 우성 생각되는게 문화제가 일시적인 볼거리로서 상업주의에 치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오락성만을 추구했지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계몽적 기능은 도무지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 중의 대표적인 예가 미인대회이다. 근래에 와서 유행병처럼 번진 경향으로 문화제치고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는 일이 없다. 마치 방송에서 시청률에 신경을 쓰듯 구경거리 중 으뜸이라는 얄팍한 판단으로 이를 선호하는 모양인데 여성의 미를 상품화한다는 논의를 제쳐 두고라도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치졸하고 퇴폐적인가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그 고장 특산물 홍보까지도 굳이 미인을 뽑는 대회를 곁들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은 이 풍속이 왜 생겨야 하는지 도시 이해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검토할 것은 주민들의 참여도다. 향토문화를 자랑하고 밖으로 크게 알리고 싶은 진정한 향토애를 유발하기 위한 문화제라면 당연히 문화의 주체인 주민들이 긍지를 지니고 이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주민들은 행사의 주체가 아닌 한갓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단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민속놀이 같은 경우 연희자는 대개 동원된 학생들이다. 물론 이에는 주민들의 동원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없지는 않겠으나 일시적으로 동원돼 훈련을 통해 연출하는 학생들의 경우, 우러나는 향토애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실상 체험의 한계로 행사 자체의 진가나 사랑을 모를 뿐 아니라 지속적인 보존과 계승에도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 생각할 일은 행사가 지닌 성격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연구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는 전문성을 지니 학술적인 검증이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문화의 진실을 왜곡하여 자칫 허상만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문화적 대상이 인물일 경우 사실과 허구의 관계에서 그 성격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판소리계 소설의 자랑스러운 고전 ‘춘향전’이나 ‘흥부전’이 어디까지나 허구로서 이루어졌음을 기본적인 인식으로 삼아야 된다. 그런즉 그러한 작품의 배경이 다름 아닌 우리 고장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길 일이지 그 작품에 나오는 작중인물을 그 고장 출신으로 비약해 생각한 나머지 그 실존성까지 추구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상(實像)과 허상(虛像)의 관계로 작가가 어느 특정한 모델을 썼느냐의 여부에 걸려 있는 문제로서 그걸 해명하기가 어려운 것인데도 굳이 인물에 실제 모델이 있는 양 상정하는 자제부터가 자칫 넌센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의욕이 과잉하면 형식이 타락한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욕심이 지나쳐 허구적 인물의 무덤을 설치한다든지, 작중인물의 성씨만을 가지고 서로 우리 마을이 그 배경입네 하고 우격 다툼을 벌이는 따위의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설적 인물이나 소설 속의 인물은 그 자체로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지 실존인물로서만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극히 기본적인 이 상식이 무시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다. 또한 실존일문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분의 위업이나 미담을 흠앙한 나머지 분별없이 과장 포장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된다. 본시 설화의 속성상 추앙의 대상이 곧 영웅화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위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문헌적인 자료의 뒷받침 위에서 추론되는 그런 인물의 설정만이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리어 거꾸로의 현상인데 마지막으로 한 에를 들겠다. 장수 출신인 논개(論介)의 경우다. 논개의 순절을 추앙하여 출생지인 장수와 순절의 현장인 진주에 ‘의암사(義岩祠)’가 있고 매년 장수에서 ‘논개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논개의 신분을 기생으로 하여 진주 촉석루 뒤에 있는 ‘의기사(義妓祠)’의 사액정문에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논개는 기생인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비국한 형편으로 장수현 관아에 관비로 들어갔다가 현감 최경회(崔慶會)의 애첩이 되었고, 최장군이 진주성 싸움에 나가자 뒤이서 그에게 갔다가 성이 함락되어 그가 투강자살 하자 복수하기 위해 왜장의 연회석에 기생으로 위장하여 마침내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절했던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논개의 신분은 일시적 위장책인 기생이었을 뿐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 아님에도 그렇게 쓰여져 있고, 그렇게 알고 있으니 이야말로 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일시적 위장술이 결코 그의 신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수군민은 추모행사와 더불어 이의 바로잡기를 서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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