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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 | [특집]
특집/음식문화 입맛이 변했나 음식이 변했나
글■김태호 문화저널 기자 (2004-02-12 12:51:27)
사회생활의 중심 영역이 이미 집안에서 집 밖으로 옮겨간 오늘날의 사회 구조 속에서도 음식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고있는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식탁에서는 흔히 ‘음식이 변했는지, 입맛이 변했는지’ 하는 말이 나오기 예사다. 월등히 풍성한 식탁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그 맛깔지게 개운했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조미료를 더하고 보기좋은 덕을 놓고 도 막상 입맛에 썩 당기는음식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꼭 꼬집어 ‘이건 이렇다’말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학조미료를 탓하기도 하고, 대량생산과 모양새를 따지는 농산물의 개량된 종자 탓을 하기도 한다. 생산과 소비의 차원에서 본다면, 가장 기초적 소비활동인 식생활이 생산활동 못지 않게 중요시되고있음을 나타낸다. 그만큼 맛을 찾게 되고 입맛도 까탈스러워졌다는 얘기다. 우리의 맛을 잃어가고있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종속시키는 식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맛에 대한 정체성 또한 희석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소비 활동의 질적 증가와 편중된 영양섭취 그리고 각종 스트레스 등이 가져온 지나친 다이어트나 음식거부 또는 병적인 과식 등 식습관에서 오는 비정상적인 현상들, 수입농산물이 재래시장에서까지 대량유통되면서 비롯된 보이지 않는 위기의식, 서구식 패스트푸드의 급속한 확대에 이어 서구식품 유통업체의 직접진출 등이 두드러지면서부터이다. 건가오가 직결된 음식문화가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고 잇는 중요성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 영역으로 인식되어왔던 먹을 것에 관한 문화가 우리 고유의 맛과 정체성의 문제로 대두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먼저, 범람하는 서구식 식문화에 대한 부적합성이 지적된다. 서구화된 식습관이 우리 몸 속에서 감지할 수 없는 전통적 미감까지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햄버거와 프라이드 치킨, 피자 등을 일상적으로 먹고 거리에는 웬디스, 맥도널드, 아메리카나. 피자 인, 피자 헛 등 국적을 잃어가는 낮선 식문화가 성황중이다. 아이들은 김치나 된장보다도 피자를 좋아하고 햄버거를 선호한다. 이런 패스트푸드가 정작 본고장인 미국에서 괄시받고 있는 것은 웃지 못할 일이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시작된 서구식 식생활은 1945년 해방부터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해방기엔 낮은 생활 수준으로 식문화 자체가 발달하지 못했다. 질적인 변화의 시작은 전쟁중에 미국의 원조물자가 이땅에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일부 상류층의 기호품에 불과했던 분유가 일반에게도 원조물자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빵, 과자가 보편화 되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 옥수수와 함께 초컬릿, 젤리, 비스킷, 킨디, 껌 등을 쉽게 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60년대에 들어서면 쌀부족 현상으로 분식과 보리혼식이 장려된다. 이와함께 식생활 개선이라는 명목아래 전통식단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서구식 식생활습관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또한 주부의 가사 노동 시간을 절약시키는 이로하능로 가공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보리, 콩, 밀 등 곡물 소비가 감소하고 과일류와 서구식 가공식품의 소비가 증가하고 종류가 다양해 진다. 이런 서구 식문화의 일반화는 80년대에 오면서 서구식 패스트푸드의 급속한 확대를 가져온다. 또 9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로바다야끼, 투다리 등의 이본식 식문화와 서구 식품유통업체의 직접 진출은 전통 식문화를 점검 궁지로 몰았다. 서구식 외식산업의 발달은 음식문화가 주로 집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득증대와 생활 수준의 향상, 소비성향의 간편■다양성, 여성의 적극적 사회참여, 주부의 여가 활용도 상승, 레저문화의 발달, 식품 및 식생활 관련 산업의 기술발달, 도시화, 국제화, 세계화의 추세, 주거양식 구조의 단순화, 생산과 유통 및 소비의 분명한 구분 등의 생활 전반의 변화에서 전통 식생활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인들은 찾아 볼 수 없게 된것이다. 실제로 한 통계에 다르면 86~90년 도시가계의 연평균 외식비 증가율은 39.1%로 같은 기간 일본의 3.5%보다 11배나 높았다. 또 92년 가계의 식료품비 지출중 외식비는 21.5%로 주식비가 차지하는 16.9%를 큰 폭으로 앞지르고 잇다. 식생활 문화의 서구화에 따른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와 옥수수를 먹게 되면서부터 서구화되기 시작한 우리의 음식문화가 건강하고 풍부한 음식문화의 토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화를 내세우고 잇는 요즘 무분별한 외국 음식 문화를 선호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르과이 라운드의 장벽, 수입 농수산물의 대량유통, 주식용 쌀 수입 등은 고유상품 개발, 신토불이, 식량안보 등으로 이어지는 자구적 외침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외국식품 및 식문화의 유입이라느 전반적인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패스트푸드로 대표되는 서구식 식생활은 김치, 밥 등에 많은 섬유소가 부족하여 우리 체질에 맞지도 않지만 편의주의 식생활을 요구하는 사회나 가정구조의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면 일방적으로 막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양념이나 재료를 예전보다 더 잘 쓰는 데도 사람들이 옛날 맛이 안난다고들 한다. 음식이 풍성해지면서 고급화된 입맛 때문이다. 예전의 어려웠을 때, 먹을 것이 귀했을 때는 무엇을 먹어도 다 맛이 있었다.”완산구 고사동에서 50년 넘게 콩나물 국밥집을 하고 있는 삼백집 주인의 말이다. 20년 넘게 꽃게탕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곰집의 입담 걸쭉한 욕쟁이 아주머니는 서양식 식문화에 고급화된 우리의 입맛을 이렇게 얘기한다. “배가 고파야 맛있는 것이지. 배가 고팠던 때를 생각해봐. 소다를 잔뜩 넣어 만들었던 풀빵도 맛있었는데 캐찹이니, 마요네즈, 피자. 이런 것들에 입맛 들여온 입들이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없지 입맛이 변했어, 자식들 먹는 음식을 따라서 먹다보니 조금씩 입맛이 변한것이지.” 시장이 반찬이라는 시대는 지났고 달짝지근하고 먹기좋은 음식에 현대인들이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간편한 식생활을 따르면서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시간에 쫓겨 아침먹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회사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 햄버거 하나 손에 들고 먹으면서 출근해. 주식이 바뀐거야. 나이든 우리들에게는 맞지 않지만 요즘 애들은 그렇게 된거야, 밥을 지어서 먹고 밖에 나가서 빵이니 피자를 사먹던 것이 이제는 집에서 햄버거니 피자를 먹고 밥은 나가서 사먹게 되는 것이지. 거꾸로 됐어.” 시간을 다투며 편의 위주로 산업화 된 도시에서 간장이나 된장을 담아 먹는 집은 별로 없다. ‘깔끔떠는’도시인들 중에는 시골 부모님이 정성스레 담아온 간장이나 된장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자식들도 많다. 전통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구입해서 금방 조리할 수 있는 가공 간장이나 된장에 비해 까고 냄새가 나 보관이나 처리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편의점이나 백화점에 가면 소량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갖은 양념을 곁들인 김치나 나물도 정작 식탁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 한두 번 손이 가는 정도다. 아이들은 씻어 먹는게 고작이다. 풍성한 찬거리는 식탁에서 낭비를 낳기도 한다. 양념을 많이 하게 되고, 음식은 짜고 매워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담백한 음식에서 볼 수 있었던 단순 소박하고 검소한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의 땅에서 나오는 먹거리들이 예전과 같은 생산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도 맛의 변화나 입맛의 변화에 일조한다. 직접 먹을 먹거리를 얻기 위해 소량 생산하던 것에서 먹거리 아닌 재화를 얻기 위해 대량 생산되는 점이다. “똥거름을 줘서 키우던 채소거리들이 비료와 농약들을 사용하면서 채소거리 자체가 맛이 변하기도 했지. 더러 옛맛을 잃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화학 비료나 소독약들로 키워진 것들이 대부분 시장에 나오게 돼.” 남부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의 말이다. 조선 시대의 먹거리가 오늘날 그대로 전통 음식문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때 그때 우리의 몸과 입맛에 걸맞는 음식들은 개발하고 찾아왔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적을 잃어가는 음식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재조명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 맛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구 식생활에 익숙해져 온 그 동안의 식문화가 우리 고유의 맛을, 변화된 상황에 맞게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절감케한다. 일본이 우리 전통 음식인 김치를 ‘기무치’라는 그들의 이름으로 개발해서 세계 시장에 내놓은 것은 우리를 자성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맛과 향토음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90년대 후반기의 이미 서구화된 음식문화 속에서 우리 고유의 맛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감지할 수 있다. 전주 비빔밥, 목포 갈낙탕, 마산 아구찜, 제주도 옥돔구이 등 향토음식에 대한 각광은 그것이다. 이러한 향토음식들은 대체로 적은 돈으로 맛과 양을 즐길 수 잇는 서민의 음식문화에서부터 자리잡아 온 것들인데 지역을 대표하는음식이 되면서 관광객들과 지역의 상류층까지 소비자층으로 흡수하게 된 것이다. 편의 주의 식생활을 요구하는 사회나 가정구조의 변화는, 간편하고 효율적인 영양섭취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서구식 식문화를 우리에게 부적합하다고 해서 막무가내 몰아세울 수 없게 한다. 이런 점에서 가공된 빈대떡, 만두, 김치볶음밥 등 전통음식의 패스트푸드화도 요구되며, 최근 한 식품업체에서 개발한 냄새없는 된장과 같은 전통 먹거리의 개량도 필요한 일이다. 음식문화도 ‘소비미덕’이라는 시대착오적 성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절약과 검소정신 위에 우리식 식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식문화에 있어서의 주체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국적있는 음식문화 교육이 선행되고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우리의 맛을 찾아 직접 만들어 먹지 않는다면 우리의 음식들은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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