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11 | [문화저널]
옹기장이 이현배의 이야기
이로움은 흔한 가운데 있다.
문화저널(2004-02-12 13:11:39)
사람들이 옹그막에 와서는 열에 아홉이 흙은 어디서 가져오느냐고 묻는다. 사람한테 ‘흙’이 갖는 의미는 신발 바닥에 밟히는 것 이상으로 그 무엇이 있나 보다. 그렇지 않다면 더찌 그리 한결같이 흙에 대하여 물어 볼까.
흙은 어디에나 있다. 하도 흙을 멀게 생각하기에 하는 소리다. 흙이라면 다 옹기를 만들 수 있다. 당장 손안에 잡혀 있는 걸로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다른 손으로 다른 흙을 섞어 쓰면 된다. 그런 저런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쓸 수 있는 흙마저도 한반도에서는 흔하다. 어디 가서든 깃발을 꽂고서 3-4km 반경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옹기 찰흙이다. 우리가 소나 돼지를 잡으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먹듯이 옹기는 흙의 어느 성분, 어느 부분만을 쓰는게 아니다. 전부를 쓴다.
옹기 그릇에서 흙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는 제품의 질 때문이 아니라, 생산 과정의 편이를 위한 얘기일 뿐이다. 옹기 찰흙은 흔하다. 초등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찰흙이 바로 옹기 찰흙이요, 옛날에 구석기 시대나 신석기 시대 하는 상고 시대 원시인들이 나뭇가지나 길쭉한 돌멩이로 흙을 파서 쓴 게, 바로 옹기 찰흙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얘기해 줄 수 있는데, 학교 앞 문방구에 있다는 얘기는, 갖고 놀기 가장 좋은 흙이라는 말도 되고 가장 싼 흙이라는 말도 되는데 상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파서 쓰고도 또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흔한 흙이라는 얘기다.
옹기장이 말로는 잿물이고, 요즘말로는 유약이라고 하는 것도 재와 매흙을 섞어 만든 것이다. 재는 그냥 풀이나 나무를 태운 재면 되고, 매흙이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거친 흙이면 된다. 부엽토 밑의 흙이 찰진흙으로 부엽토의 영양기가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다.
옹기는 이렇게 몸을 이루는 흙이나 그 위에 바르는 잿물이나 흔한 것이다. 그래서 좋은 그릇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진리는 보편타당성 속에 있고, 이로움은 흔한 가운데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옹기도 좋은 물건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희한해야 대단하게 여긴다. 그러다가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