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비평]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문열’
글·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2 13:18:26)
“우리 혁명이 성공했다면 나도 이문열만은 처형 못하게 했을 거야.”
황석영 씨의 말이다. 지난 1993년 황석영씨와 이문열씨는 미국 뉴욕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이문열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던가.
“이데올로기 혹은 문학 노선은 다르지만, 우리 문단이 황 선배같은 작가를 다시 얻으려면 최소한 한 세대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황 선배가 글을 못쓰게 되는 상황은 꼭 막을 것이다.
그랬더니 황석영씨가 씩 웃으면서 농담삼아 한 말이 바로 위에 인용한 ‘이문열 처형 불가론’ 이었다는 것이다. 농담으로 한 말이니 황석영씨가 말하는 혁명이 무얼 의미하는지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문열씨가「월간조선」(1996년 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이문열씨가 이념적으로 그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걸 말하고 싶어소개한 것인데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이문열씨의 정치적 성향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엔 감튼을 금치 못하는 사람이다. 그를 ‘국보급 문인’이라 불러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회 비평가로 나설 때엔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아니 이씨가 국보급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의 사회 비평은 더욱 엄격한 취급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월간조선」인터뷰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 기사에서 ‘우리의 일그러진 이문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는 “인터뷰 이문열의 세상 읽기- ‘위정자여 대중의 천박한 복수욕에 야합하지 마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토로된 이 씨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 이 씨의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역사관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국보급 문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이 씨 발언을 인용해 가면서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훗날 사람들은 전두환의 5공 정권에 대해 어떤 식의 평가를 내리게 될까요. ” 라고 기자가 묻자 이렇게 답한다.
“세조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세조를 어린 단종이나 신하들을 살육한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선 왕조의 절대 왕권의 확립이나 사회적 안정의 확보란 측면에서 볼 수도 있겠지요.”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시대를 그렇게 단순 비교해도 되는 걸까? 좋다 넘어가자. 그게 이 글의 본론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씨는 1987년 대선에서 자신이 노태우 후보를 지지했다는 걸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들어보자.
“그 때 노태우씨를 찍은 이유는, 20년의 철권 정치, 또 유혈까지 보면서 성립한 군사 정권 8년에서 갑자기 그림 같은 문민으로 건너 간다는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한 번 은 걸러 보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과연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고, 현실에서 그렇게 진행됐어요. 역시 내가 맞구나. ‘내가 역사의 흐름을 바로 보았구나’ 라고 상당히 흐뭇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