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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 | 특집
장미에도 가시는 있다
현대제철 사태를 돌아보며
최형재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2004-02-12 14:23:15)

정부의 현대 제철 불허시사로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아직도 휴화산으로 남아있는 현대제철 유치문제로 군산을 비롯한 전북이 20여일 동안 큰 홍역을 앓았다. 홍역의 결과는 허탈감과 아쉬움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왜 이런 홍역을 우리가 치러야 했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또 벌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현대 제철’ 갑자기 도민의 관심사가 된 이유
철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현대로서는 그 동안 포항제철의 독점공급에서 오는 불만이 점점 커지게 되자 경쟁을 통해 공급 부족을 타개하고 질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그룹사에서 사용하는 철강만 생산해도 수익이 있다는 실리가 맞아 떨어져 제철사업의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넓은 부지 마련을 위해 해안을 매립하려면 공유수면 매립법상의 허가가 필요하고, 제철소를 짓기 위한 지목변경, 또 제철소를 운영하기 위한 필수적인 항만, 도로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갖추기 위해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 사업이기 때문에 환경평가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지원해줘야 할 정부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고 강력한 제동을 걸게 되자, 제철소 후보지를 거론해 그 지역 주민들을 자극시켜 여론 몰이를 한 것이다. 현대 그룹의 외곽 때리기 전술로 인해 현대제철은 우리 도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전북도는 허가도 나지 않은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소리를 높인 셈이 되었다.

현대 제철의 경제적 효과
현대 그룹이 진출하고자 하는 제철 사업은 국가경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엄청난 규모이다. 부지만 해도 330만평, 제철소가 들어서면 당연히 뒤따르게 되는 슬래그 매립장과 혖력업체까지 합하게되면 500만평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 제철소에서 철강이 생산될 경우 연평균 1조 3천억 원의 매출이 예상되며 생산유발액은 2조 9천억 원, 부가 가치 유발액은 8천억원, 그에 따른 고용 유발 인원 3만여 명과 1천억원의 지방세 확충이 예상되는 대형사업이었다.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만금 사업의 진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정도이니 역대정권으로부터 소외받아 경제적으로 낙후된 전북으로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더군다나 국토균형 개발과 지역경제 육성의 균등 배분이라는 명분도 갖고 있다. 뚜렷한 명분과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있는 사업이었기에 군산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결의대회도 가졌고, 전북도의 경우 ‘현대제철 건설 지원단’ 방안까지 마련하였다.

경제적 효과 못지 않게 지불해야할 대가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먼저 제철 사업은 대기오염의 주범이다. 제철사업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심각한 정도인데 제철소 굴뚝을 통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진 유기염소(Cl2)는 대기오염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생식능력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역할을 하여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물질이다. 우기염소와 더불어 피해를 주는 것이 검댕(불연소 카본)인데 이는 특히,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게 된다.
전남 여천 묘도동 일대 32만여 평의 논, 밭에 광양제철소 등 주변공장에서 내뿜는 검댕들이 날아들어 벼이삭과 채소류의 잎 등이 검게 변하는 흑수현상이 발생했다. 흑수현상이 발생하면 벼가 여물지 않고 시커멓게 반점이 생기면서 말라죽는 현상으로 벼뿐만 아니라 콩과 참깨 등 밭작물과 과수에도 표피에 검은 반점이 생기게 된다. 이와 관련해 여천 농촌 지도소는 검게 변한 벼이삭을 분석한 결과, 일반 병해충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결론짓고 시료를 채취, 전남대 환경연구소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두 번째는 해양 오염이다. 현대 제철의 규모는 광양제철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광양제철은 매연외에도 공장폐수(7만㎥/일)로 인근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다. 광양제철이 들어서기 전인 80년 초까지의 광양만을 통해 어민들이 김양식 등으로 벌어들였던 수입은 연 1천억원대를 넘어섰다. 당시 열악한 수산 현실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수입이다. 그런데 광양제철과 여천공단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진다는 분석을 보면 우리 지역에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가를 최소화할 수는 없는가
어느 지역이든 대기, 수질, 토양 오염물질 등은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환경용량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오염 물질이 배출되는 공단의 경우 환경용량의 10∼20%를 넘어서면 완전히 자청능력을 잃게 된다.
이래서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 ‘총량 개념 환경영향평가제도’이다. 총량 개념 환경영향평가란 계획된 모든 공단이 들어설 경우의 오염 물질을 미리 산청, 환경용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오염물질 배출농도와 배출량으로 규제하는 제도이다.
앞으로 군장 공업단지, 새만금 공업단지가 들어설 우리 지역에는 반드시 이 제도를 도입해서 무분별하고도 경쟁적인 유치로 제 2의 은산, 제 2의 여천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 녹지 완충지대를 많이 만드는 방법도 있다. 대기오염 물질이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단주변에 폭 100m 이상의 녹지 완충지대를 조성하면 산소를 공급해서 대기오염도 막고, 날아 다니는 대기오염 물질 등을 차단하는 수막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지역 발전과 환경 보존의 조화는 가능한가
원칙적으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랜기간의 소외와 차별로 인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한을 갖고 있는 우리 지역이기에 작은 이익에 더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물며 이번 현대제철과 같은 덩치 큰 사업에 대해서는 팔짱끼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장미에도 가시가 있고, 아무리 맛좋은 생선이라 하더라도 가시는 발라내고 먹어야 하듯, 우리의 구미가 댕기는 사업이라도 따질 건 따져봐야 했던 것이다.
우리 지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을 강조하면서 흥분할 게 아니라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즉, 유치 조건이 좋다는 것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유치의 전제조건(위에서 거론한 총량 개념 환경 영향평가, 녹색완충지대 등) 등을 준비하는 이성적 태도일 때 개발과 보존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최형재 / 63년 출생. 전북대 재학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으며, 92년에는 민중당 덕진지구당 위원장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늘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왔으면서도 원만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금은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기독교 전북방송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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