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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3 | [문화비평]
환경보호운동의 위선
강준만의 문화비평 (2004-02-12 14:43:48)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환경보호를 소리 높여 떠들지 않는 언론매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환경은 잘 보호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은데 왜 환경보호가 잘 안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텔레비전의 환경보호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 할 때마다 깨닫곤 한다. 그런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어느 유명 인사가 자기 고향을 찾아간다. 그 유명 인사는 고향의 옛 모습이 사라지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정말 큰 일이라고 개탄까지 한다. 유명 인사다 등장하지 않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사람이 출연해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비판하다. 개발은 탐욕스럽고 근시안적인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우리 후손에게 잘 보호된 환경을 물러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활자매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문들은 수시로 서설과 칼럼을 통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심지어 지방자치제가 지역 이기주의를 부추겨 환경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등장한다. 정말 아름다운 말씀들이다. 그러나 개똥같은 말씀들이다. 그렇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다. 지방에서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환경보호를 떠들어댄다. 농어민이나 산간 마을에 사는 사람이 환경보호를 외치는 건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환경이 중요하다면 환경이 좋은 지역에서 살 일이지 왜 환경이 가장 오염돼 있는 서울에만 몰려 사는 걸까? 내가 사는 지역은 환경이 개판이라도 관계없지만 지방은 나의 휴식을 위해 개발을 하지 말고 환경만 보호하고 있어라? 보아하니 그런 심보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장담하지만, 그런 식으로 환경보호는 절대 안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문제는 외면하면서 왜 남의 지역의 환경에 그렇게 큰 관심을 쏟는가? 언제부터 그렇게 이타적이었나? 뭐? 국가와 민족과 우리 후손을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웃기지 마라. 정치·경제적 권력과 부가 몰려 있는 지역의 환경은 외면하면서 생존에 급급해 하는 지역의 환경에 관심을 쏟는 건 위선이요 기만이다. 지금 우리의 환경보호운동은 환경을 보호할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를 외면하고 피상적인 현상에만 집착하고 있다. 환경 파괴의 주범은 우리의 기형적인 ‘서울공화국’ 체제라는 걸 알아야 한다. 서울의 환경부터 보호하라, 그러면 전국의 환경이 보호된다. 서울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보기엔 인구를 반으로 줄여야 한다. 인구를 반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경제적 권력과 부를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물어보자. 그간 어느 환경보호단체가 그런 주장을 했는가?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쏟아 붓는 돈의 반의반이면 나머지 국토의 환경보호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도 남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간 어느 환경보호단체가 그런 문제 제기를 했는가? 환경보호는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서 환경보호가 잘 되는 게 아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개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개발의 방식과 예산이 문제인 것이다. 지방의 환경이 파괴되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발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그건 지방경제의 열악함 때문이다. 환경보호는 상당 부분 ‘계급’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어느 지역의 환경보호에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사람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사람들을 탐욕스럽다고 욕해선 안된다. 남들이 누리는 만큼의 경제적 혜택을 박탈하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면 그 사람들은 환경으로 밥먹고 사나?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아니 기본 조건은 국토의 균형 발전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출세하기 위해 살아야 할 지역, 놀기 위해 찾아가는 지역을 구분하는 건 말이 안된다. 지역간 불균등발전은 환경보호의 마인드 자체를 파괴한다. 지방이 수도권 사람들의 배설장이 되고 농어촌 지역이 도시인들의 배설장이 되는 지금과 같은 체제하에선 환경보호는 영원히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텔레비전이 환경보호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때 앞으론 도시인들이 농어촌을 찾아가는 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고 농어촌에 사는 사람이 서울을 방문해 서울의 환경을 개탄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를 바란다. 아니 지방의 환경보호 운동가들까지 서울로 몰려가서 격렬하게 투쟁하기를 바란다.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서울 인구를 반으로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도를 옮기는 것이다. 차선책으로는 정부가 서울에 있는 대학엔 돈을 단 한푼도 주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모든 문화 시설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만 만들게 강제화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말이 안 된다면 환경보호는 절대 안되게 돼 있다. 환경보호운동은 기껏해야 개발반대운동 밖엔 안될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 없이 환경보호는 불가능하다. 그 지역에 살지도 않는 외지인들이 찾아와서 그 지역의 환경을 걱정해주는 기존의 운동방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박살내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서울공화국’ 체제라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서울은 정상적인 인간이 살 곳이 아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정상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 한보사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다 미쳤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환경파괴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일종의 역설이니 오해하거나 흥분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특히 환경보호운동가들 가운데 말이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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