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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3 | [세대횡단 문화읽기]
백제의 불탑 / 미륵사지 서(西)탑 2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 전이해가는 과도기의 전형
글·천득염 전남대 교수·건축학과 (2004-02-12 14:51:53)
미륵사지석탑의 기단구조의 특징은 2중 기단이며 4면에 석조계단이 있는 점과 2중 초석 그리고 동탑에서 확인된 바로는 지대석과 갑석에 부록이 없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동탑지에서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하층기단이 설치된 점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1. 미륵사지 서탑의 축조양식 기단부 기단은 현재 지하에 매몰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동탑지의 발굴에 의하여 동탑과 같은 모습으로 된 전형적인 이중기단보다 약화된 초기적 이중기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상하가 2층으로 구성된 기단형식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地臺石)의 구별이 없는 큰외대석(畏大石:길이 5척, 높이 0.5척)을 제일 밑에 깔고 그 위에 상층기단의 지대석과 사이에 넓은 판석(혹은 포석이라고도 함)을 깔아 하층기단의 갑석(甲石)으로 하였다. 이 갑석은 지대석보다 4~5cm앞으로 튀어나왔으며 이 갑석의 안쪽 단부에는 다시 상층기단의 지대석이 이어져 있다. 상층기단은 지대석, 우주, 면석 및 갑석이 갖추어져 있는 모습을 충분히 짐작케하나 상대갑석(上臺甲石)은 하나도 남아있는 것이 없고 바로 흙이 채워진 상태로 되어 있어서 1층 탑신부의 초석이 그 밑부리까지도 노출되어 있다. 또한 기단 각면의 중앙에 돌계단을 설치하였는데 이 기단의 형식은 기단의 동·서 측면의 돌계단만을 제외하면 동원(東院), 금당(金堂)이나 중·서부의 금당 기단과 같은 형식이며 따라서 이 시기의 목조탑의 기단과 꼭 같은 형식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면 상면에는 주좌(柱座)없는 방대형(方臺形)의 초석을 배치하고 초석 밑에도 일반적인 적심석(積心石)이 아닌 방대형의 초석과 비슷한 거석(巨石)을 받쳐서 기초를 굳히고 있다. 이것은 상부구조가 목조가 아닌 석조건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적심석의 일종일 것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 부근에는 고졸한 석인상(石人像)으로 보이는 조각이 놓여있으나 동탑지에서 확인된 기단의 형식으로 보아 이것이 당초부터 놓여있던 것이 아니라 석탑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며 후대에 어떤 이유로 그 곳에 놓인 것이라 생각된다. 기단 내부의 구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탑의 기단에 의하면 우선 기단의 흙은 거의 황갈색 점토질로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석괴(石塊)가 무질서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미륵사지 서탑의 기단구조의 특징은 2중 기단이며 4면에 석조계단이 있는 점과 2중 초석 그리고 동탑에서 확인된 바로는 지대석과 갑석에 부록이 없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동탑지에서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하층기단이 설치된 점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물론 포석과 그 밑의 지대석만으로 하층기단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견해도 있으나 포석만을 깔 목적이었다면 구태여 그 밑을 잘 다듬어지고 규격화된 받침돌로, 그것도 일정한 간격의 안쪽에 고였을 리가 없다. 탑신부 탑신부는 동쪽면만 1층의 층계까지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고, 2층에서 5층 옥개까지는 남단부가 소실된 상태이며, 6층은 탑신과 옥개의 동북쪽 모서리 부분만 남아있다. 북쪽면은 1층부터 6층 옥개까지 그 동쪽의 절반 부분이 남았고, 남쪽면은 1층 탑신의 동쪽 절반 부분과 옥개 동쪽 모서리 부분까지 남았으며, 서쪽면은 6층 옥개의 파손된 부분만을 보이고, 그 밖은 보강을 위한 축대와 콘크리트 피복면이 보인다. 동쪽면 1층의 3칸 중에서 가운데 칸에는 통로가 설치되었고 양쪽 협간(夾間)은 판벽으로 처리되었다. 기둥은 밑이 굵고 위가 약간 좁은 6면체이고 윗면은 주좌없이 평탄하며 갑석과 맞닿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초석 옆면은 흑떼기 정도를 하였다. 기둥 밑둥에는 기둥 사이에 초석이 약간 엇물려서 하방석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이 하방석밑에는 고막이돌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 부재들은 목조건축에서처럼 벽면과 추어지지 않고 하방석은 면석보다 약간 튀어나오고 기둥보다는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게 설치하였다. 탑신 중앙칸에는 좌주에 높은 벽석을 끼우고 그 끝에 문설주같은 석재를 세웠으며 하방석 상면에는 문짝의 회전축 돌기를 끼우는 구멍이 있으나 그 깊이가 너무 얕고 상하의 위치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불분명하다. 이 문시설 1층 탑신 4면의 중앙칸에 모두 설치되었고, 그 내부에 십자로 된 통로적 공간이 형성되었다. 그 중앙 교차부에는 평면이 장방형인 목탑의 심주(心柱)를 나타내는 듯하나 방형대석을 여러개 중첩시켜 만든 돌기둥이 있다. 또한 석탑의 동면 양 협간의 기둥사이에 끼워진 면석 중앙에는 창방석과 하방석 사이에 샛기둥이 있으나 남면과 북면에는 이것을 세웠던 흔적조차 없고, 창방석의 하면이나 하방석의 상면에도 샛기둥이 닿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간석(柱間石)은 후대에 보충한 석재임이 분명하다. 기둥머리 위에는 확실히 목조의 경우 평방이라고 볼 수 있는 돌이 올려져 있는데, 긴 네모꼴 부재를 눕힌 모양이며 기둥보다 앞으로 튀어나왔다. 한편 기둥머리 사이에는 평방석 아래에 창방석을 끼워놓고 있는데 이것은 하방석과 마찬가지로 면선(벽석)보다는 앞으로 내밀었다. 양 협간의 기둥사이에는 2매로 된 면석이 끼워져 있으며 동측면에는 샛기둥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평방석 위에는 포벽(包壁)이 놓여져 있는데 이것은 평방석은 물론이고 기둥의 바깥선보다도 오히려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포석은 탑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긴 네모를 뉘어놓은 모양이며 평방석, 옥개받침과 더불어 수평적인 의장을 보인다. 포벽 위에는 3단의 옥개 받침이 놓여져 있는데 그 중 상부 2단이 한 부재이고 그 아래 1단이 한 부재로 되어 있다. 이 단들은 높이보다 내밀기가 길어서 옥개석을 깊숙히 받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 단의 아래면을 수평이 아니라 약간 위로 치켜세웠는데 이는 추녀를 약간 반전시킨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옥개받침의 단수는 1층부터 4층까지는 3단, 5층과 6층은 4단으로 위로 갈수록 단수가 증가한다. 옥개석 위의 탑신괴임은 2,3층이 1단, 4,5,6층이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층 포벽보다도 안으로 들어가서 놓여 있다. 이 탑의 축조방식은 가구방식을 보아서 목탑의 번안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별로 이론이 없다. 옥개석의 반전, 우주의 귀솟음, 탑신의 오금법 등에서 목조가구적인 경쾌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층의 낮은 기단, 계단, 초석, 고막이돌, 하방석, 벽석, 문설주, 분비(門扉), 기둥의 민흘림, 창방, 평방, 포벽 등에서 더욱 목조건축을 모방하였음을 실감케한다. 그러나 목조가구기법으로 거대한 석조건축을 유지하다 보니 대부분이 수평부재들이 상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파괴된 상태이다. 물론 7세기 초반에 이처럼 엄청난 석탑조영이 이루어진 것을 대단한 역사였음이 분명하나 석탑으로 완성된 양식과 완벽한 가구법이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우며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 전이해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의 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석탑의 기단은 낮고 1층의 축부 즉 탑신이 거대하나 상대적으로 중량이 많은 석재들을 지탱하기에는 1층 옥개석 윗부분의 상부구조가 허약하다. 1층의 십자형 통로에서 보여주는 심주형 방형대석과 벽면의 짜임은 외부구조가 다하지 못한 구조적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생각되나 2층 탑신에서부터의 내부구조가 허약하다. 2층의 벽선 즉 우주(遇柱)와 탱주(撐柱) 및 면석(面石)이 지지되는 그 아랫부분의 수직하중을 목조에서처럼 기둥이 처리해야할 터인데 이 탑에서는 아래층의 옥개석이 지탱하기에는 구조적으로 무리가 생긴다. 또한 다수의 석재로 목조가구수법을 따르는 결구를 하였기 때문에 별석 상호간에 이완되고, 부재의 맞춤에 있어서도 장부맞춤이나 쪽매 등의 방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다소 허약하여 붕괴되기 쉬운 결함을 갖고 있다. 한편 십자로통로에서 나타나는 구조기법은 대단히 우수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중앙의 심주에는 1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몇 개의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으며 맞대이음면의 정교한 정도는 대단하다. 이처럼 석재를 크게 쓰지 않고 작게 나누어 쓴 것은 이 탑에서 보이는 가공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추는 면이 서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약간 거칠면서도 일매진 돌을 엮어서 끄덕거리거나 비틀어지지 않고 똑바로 올라가게 하는 기술이 뛰어난 것이다. 또한 통로의 천장은 양벽면에서 둘다 내쌓기를 한 위에 판석을 얹어서 마감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 방법은 고구려 고탑에서 널리 이용되었던 것으로 이 탑의 옥개받침 수법과도 일치한다. 이 옥개받침은 역계단식(逆階段式)으로 이러한 방법은 분황사탑처럼 전탑의 적출식 기법(積出式技法)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설과 고구려의 고분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양설이 있어왔다. 그러나 미륵사지석탑의 옥개받침 형식이 넓은 단층적출형식(單層積出形式)의 범주에 있다고 하나 전탑이나 신라석탑의 수법과는 서로 다르다. 즉 적출의 폭이 다르고 옥개받침수의 변화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이 탑의 옥개받침은 오히려 목탑의 긴 처마의 하중을 보다 넓은 부분으로 안정되게 받치기 위한 초엽(Corbel)식 기법이나 목탑을 석탑으로 번안하는 과정에서 포를 간략화시킨 의장적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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