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3 | [특집]
특집 / ‘97 한국미술시장개방
치열한 자기진단이 절실하다
-미술시장 개방과 전북화랑의 전략-
글·강진영 문화저널기자
(2004-02-12 15:05:47)
경제수준의 향상에 따라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커가고 있고, 이제 서구적인 시장경제논리가 자본주의의 수요가 공급의 논리에 의해 미술품 또한 외국 자본의 잠식대상이 된다고 보면 우물안 개구리처럼 유한층 고객만을 대상으로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격차, 그리고 외국 화랑의 진출 속에서 열악하기만 한 도내 미술계가 살아남을 전략은 있는 것일까?
「매화초옥도(梅化草屋圖)」
전기(田琦), 1825-1854
수준높은 기획전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미 5천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간 국립전주박물관이 주관한 「눈그림 6백년展」에 전시된 그림
우리의 미술시장은 그 역사가 미비하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그림은 아직도 휑한 벽면을 채우는 소품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예술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또한 중앙집권적인 우리나라 문화시장의 풍토에서 아직도 미술 시장의 개념조차 서 있지 않은 이 지역의 상황을 볼 때 미술시장 개방이라는 이슈는 아직도 낯설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경제수준의 향상에 따라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커가고 있고, 이제 서구적인 시장경제논리가 자본주의의 수요와 공급이 논리에 의해 미술품 또한 외국 자본의 잠식대상이 된다고 보면 우물안 개구리처럼 유한층 고객만을 대상으로 잠자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격차, 그리고 외국 화랑의 진출 속에서 열악하기만 한 도내 미술계가 살아남을 전략은 있는 것일까?
도내 화단, 자기진단이 필요하다
전북지역의 전시공간은 대체로 열악하다. 삼성문화회관이 개관하면서 전시공간의 여건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작품을 수용하기에는 아직도 그 수가 작고, 전시공간도 비좁다. 또한 몇몇 화랑을 제외하고는 기획전시보다는 임대의 공간으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 자본이 없다보니 참신한 이벤트나 교류전 등의 기획전과 홍보도 부족하여, 관람객의 발길이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96년에 가장 성공적인 전시로 기록된 국립전주박물관이 주관한 ‘단원김홍도전’에 한 달여 기간 동안 5만 9천여 명이 몰린 것과 올해 U대회와 관련하여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는 ‘눈그림 6백년전’의 입장객수가 5천 명을 넘어선 것 등을 생각해 본다면 수준 높은 기획전에는 관람객이 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시장의 불황을 타계하는 방법으로 먼저 지속적으로 관람객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는 참신한 기획과 행사가 필요하다고 화랑주들은 이야기한다.
외국 작품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가장 경쟁력을 잃는 것은 가격이다. 높은 가격의 국내 미술품에 비래 객관화된 가격책정으로 인해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외국 미술품이 들어올 경우 국내 화단이 불황을 입을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미술시장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뿌리깊은 잘못된 관행은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 주 원인은 사회적·경제적 불황도 크지만 미술품 가격의 객관성이 없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그리고 미술품 유통에서 화랑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직거래의 관행은 이제 국내 미술품 뿐 아니라 외국미술품 구입에까지 이르고 있다. 화랑들이 영세해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의 한 원인을 차지한다고 도내 화랑주들은 입을 모은다. 또 우리나라 미술품들의 가격이 높은 것은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작가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잘못된 편견과 작가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음성적 방법 때문이라고 화랑주들은 말한다. 결국 높은 작품 가는 일반 대중에게 미술품은 상류층만 향유하는 것인 양 인식되는 양태를 낳은 셈이다.
일방적인 작품가격과 경매제
서울의 화랑가에서는 미술경기의 퇴조를 되돌리려는 것과 함RP 미술시장개방에 대비한 국내미술품 가격의 적정화를 시도하는 노력의 하나로 경매전을 시도했다. 또한 한국미술품경매주식회사가 창설되어 96년 5월 이후 다섯 번의 경매전을 가졌다. 또 6월 청담 미술제 일환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 경매전이 열렸다. 청담 미술제 전시작가 17명의 신작과 작고 원로 중진작가 46명의 작품이 나와 77점 중 25점이 거래되었다. 다보성미술관에서도 고미술품 경매를 통해 성과를 올렸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세계 2대 경매회사인 소더비, 크리스티 두 회사가 들어와 있다. 외국의 미술품과 경쟁하려면 가격의 거품을 빼 공개 입찰을 통해 적정가격으로 작품이 매매 되도록 해야 한다. 도내 화랑주들도 경매제의 방법을 논의하고는 있지만 현재의 여건 속에서는 일단의 시도초자 쉽지 않다고 한다. 얼화랑 한춘희 관장은 “작가들의 의식의 변화와 대중의 참여도가 따라주지 않는 한 어렵다”고 말한다. 또 정갤러리 정병표 관장은 “작품의 매매와 수장활동은 창작활동은 지원하는 훌륭한 문화활동이라는 인식 하에 거래를 양성화하고 구매 당사자의 신원비밀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내 청년작가들은 작품가격의 잘못된 관행으로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호수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비례하는 호당 가격제와 작가의 나이와 지위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는 관행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적한다. 작품의 질을 중심으로 작가, 관람객, 화랑 세 집단의 객관적인 의견이 반영되는 작품당가격제라야만 공정한 가격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술시장개방이 국내 미술품 가격의 거품을 빼고 공정한 가격제도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작가들의 안일한 창작활동에도 경종을 울려 프로의식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기진단과 대인확립이 필요하다.
개방에 대비해 타지역의 일부 화랑들은 미술 관련 연구소 등 별도 조직을 만들어 대기업을 상대로 미술품 컨설팅에 나섰는가 하면, 공공 조형물 프로젝트 전담팀을 둔 곳도 있다. 또 한정된 고객으로 는 영업이 안된다고 판단, 불특정 다수의 고객 확보를 위해 전시안내 리플릿을 제작 무료 배포하고, 인터넷에 우리 작가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개설을 추진하고, 자기 화랑의 주요 업적이나 전속화가들을 홍보하는 책자를 펴내는 등 국내뿐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는 전략이 치밀하고 사업도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도내에서는 민촌아트센터(관장 허명욱)가 처음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자료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미술인들의 작업을 시작으로 도내 문화예술인들 전체로 그 대상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한다. 문화예술인 자료 전산화의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던 상황이고 보면 미술시장개방 뿐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자산을 남긴다는 측면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시장은 개척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도내 화랑주들은 말한다. 미술품을 금융자산으로 인정하고 담보대출까지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고 보면 미술품만큼 고부가가치를 남기는 사업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이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요인으로 미술큐레이터 등의 전문인력육성과 문화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술행정과 경영, 미술품 관리 복원의 이론과 실무에 능한 전문인 양성은 미술품의 공신력을 확보하는데도 기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작품 대관의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도내 화랑은 훌륭한 전시를 기획·진행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고, 정부 관리의 문화예술인 채용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없이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그간의 양태를 보아 알 수 있다.
한편 도내 작가와 화랑주들은 전문인력 확보와 더불어 일반 대중의 미술품에 대한 안목과 관심을 모으는 교육사업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품을 향수 하는 계층의 확대와 미술품이 소장가치가 있는 문화상품임을 알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화랑이 몫이 아니라 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작가, 문화단체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교육계에서도 입시 교육의 획일성을 버리고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키워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말을 종합해보면, 지속적인 시민강좌와 교육을 통한 미술 향유계층의 확대, 수준 있는 전시기획, 미술품 가격의 공신력 확보는 도내 화단이 살아 남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전략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경쟁력이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열한 자기진단과 이를 통한 대안의 확립에 있을 것이다. 미술시장개방이라는 꽃샘추위가 한동안 기승을 부리겠지만 도내 미술계가 묵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으로 헤쳐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인 듯 하다.
인터뷰 / /정갤러리 정관표 관장
잠재된 고객 찾아내는 유통활로 개척이 필요하다
미술과는 무관한 경영학을 전공하고도 그림이 좋아 화랑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정병표 관장은 이제 미술품도 하나의 문화상품임을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구체적 접근을 해 나가겠다는, 그의 미술시장개방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미술시장개방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은?
우선 긍정적 측면으로 미술품 교류가 활성화되어 미술계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또한 거품 가격과 음성 거래로 침체되어 있는 도내 미술시장에 충격을 주어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외국의 적극적 마케팅에 따른 가격, 작품 질의 경쟁력 약화로 우리의 미술시장이 잠식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도내화랑이 살아남기 위해 세워야 할 전략이 있다면?
첫째, 잠재된 고객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 유통 활로 개척이 필요하다. 둘째, 화랑들과의 교류를 통한 영역 확장이 필요하다. 외부 작가의 작품이 들어왔다고 해서 배척하는 보수적 풍토를 버려야 한다. 셋째, 미술품도 하나의 훌륭한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투자와 소비의 양면성을 고려한 투자 가치가 있는 고부가가치 상품임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넷째, 미술 전문인들이 육성되어야 한다. 큐레이터의 개념조차 서 있지 않은 도내의 상황이고 보면 참신한 전시를 기획하고 치뤄 낼 수 있는 전문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본다.
*정갤러리의 올 해 사업 계획은?
여건이 마련된다면 참신한 기획전과 교류 전을 해 볼 생각이다. 공간확보를 위해 우선 갤러리를 확장할 계획이다. 전시는 4월 중순에 개관 4주년 기념전을 열 계획이고, 5월에는 옹기생활용품전, 7월에는 부채기획전 등을 열 예정이다. 올 한해 동안 대략 10회 정도의 전시회를 가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