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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7 | [문화비평]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비판
강준만(2004-02-12 15:09:44)
인류를 크게 분열시키고 국가간 분쟁의 최대 씨앗이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이데올로기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문화다. 서구 문명이 보편적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서방 지도자들은 다른 문화권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 서방문화권을 보호하고 부활시키는데에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 이건 요즘 떠들석하게 논의되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 석좌 교수인 사무엘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 충돌론’의 요지다. 그런데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이라는 개념은 매우 독특하다. 그는 결코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학자가 아니다. 헌팅턴은 국제관계에서 철저하게 힘을 숭상하는 ‘현실주의자’다. 그는 문명과 문화마저도 이른바 ‘리얼폴리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이 독립적인 문명권이고 한국이 중국의 문명권에 속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는 자명해진다. 한국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문화적 전통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큰 힘을 갖고 있으면 그건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분류되게돼 있다. 헌팅턴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제 3세계의 혐오를 문명과 문화의 문제로 도리는 고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컨데 그는 이라크 전쟁시 회교권 국가들의 정부들이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회교권 민중은 이라크편에 섰다는 걸 강조하는데 그게 문명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런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헌팅턴은 냉전시대에 주목받던 학자다. 그는 냉전시대가 종언을 고함에 따라 고민에 빠져 들었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냉전을 만들어낼 것인가? 가만 있자 냉전시대에 치고 받던 나라들이라는게 다 문화와 종교가 다른 나라들이 아닌가. 어어, 이거 말 되네! 문명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내걸면 어떨까? 내가 헌팅턴의 속에 들어가 본건 아니지만, 헌팅턴은 그런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는 인위적으로 문명을 구분하고 자신의 주장에 들어맞는 증거만 수집했다. 사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방대한 증거와 자료에 감명을 받기 쉽다. 말이 나온 김에 미리 이야기하자. 나는 정말 헌팅턴이 부럽다. 아니 미국의 학자가 부럽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덕에 세계경영을 고민한다. 크게 놀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겨우 한국, 그것도 남한 내부의 지역갈등에 대해 고민하고 민주화에 대해 떠들어댄다. 언어만 해도 그렇다. 죽기 살기로 영어를 배운 유능한 젊은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하바드로 몰려든다. 그학생들을 통해 세계 각국에 대한 정보를 더욱 심층적으로 수집한다. 일본을 가건, 한국을 가건 영어 하나면 만사형통이다. 몇 번만 강의해도 몇 년 먹고 살 돈이 생긴다. 어디 그 뿐인가. 어느 나라를 가건 현지 학자들은 능숙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헌팅턴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언론매체들은 고액의 인터뷰료를 지불해나가면서 인터뷰를 하자고 볶아댄다. 물론 영어로 인터뷰를 하니 영어가 시원치 않은 현지 언론인들은 주눅이 들어 헌팅턴이 더욱 크게만 보인다. 그러나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절대 그렇게 놀라지 마시라.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은 절망 별 것 아니다. 이건 객기도 아니고, 시기도 아니다. 나를 믿어도 된다. 미국, 그것도 하바드를 근거로 활동하는 헌팅턴의 유리한 입지와 탁월한 포장술에 놀아나면 안된다. 헌팅턴이 이 책을 통해 유포시키고자하는 메시지는 유교와 이슬람 문명권이 연대하여 서방 세계의 이익과 가치, 그리고 힘에 도전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은 유럽과 결속을 다져야지 무슨 얼어죽을 아시아, 태평양 시대라고 그 쪽에 신경을 쓰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헌팅턴은 ‘문명 패러다임’이라는 사기를 친다. 아니 언제 문명이 패러다임이 아닌 적이 있었나? 문명은 문명이고, 국제관계는 국제관계였다. 그건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헌팅턴은 이제 그 다른 차원을 하나로 뭉뚱그려 새로운 냉전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아마도 미국의 국익을 생각하는 애국적인 마음도 없진 않았었겠지만, 그의 타고난 인종적, 종교적 편견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내가 헌팅턴을 자꾸 나쁜 쪽으로 보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다. 헌팅턴은 학자인가? 그는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최대한 활용할 뿐 진정한 의미의 학자는 아니다. 그는 미국 역대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온 실질적인 ‘관료’였다. 그는 미국 국가 안보회의 위원이었으며, CIA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였을 뿐 아니라, 이른바 ‘강제적 도시화 및 현대화’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정당화시킨 이물이었다. 미국이 그 프로그램에 따라 베트남에서 한 일은 농민들을 마을에서 쫓아내고 마을에 불을 지르는 따위의 일이었다. 그는 반전 데모를 하는 대학생들로부터 ‘미친 개’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헌팅턴은 지난 87년 미국의 권위있는 ‘미국과학자협회’로부터 제명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제명의 이유는 그가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을 계량화하는 사이비 사회과학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그는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적 질서』라는 책에서 “좌절과 불안정의 상관 관계는 0.5이다”라는 따위의 주장을 늘어 놓았다. 베트남 전쟁을 적극 지지했던 사람이 미국의 개입 정책을 비판한다? 좌절과 불안정의 상관관계가 0.5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어찌 헌팅턴의 숨은 뜻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요컨데, 헌팅턴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사회과학의 포장을 씌우는 일에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그것이 지나쳐 미국과학자협회로부터 제명까지 당한 것이다. 그러나 ‘하바드대학 교수’라고 하면 꺼뻑 죽는 경향이 있는 국내 학자들과 언론은 오랫동안 그럴 ‘석학’ 대접을 해왔고, 그 결과 그의 이론은 국내에서 과대 평가 돼 왔다. 물론 헌팅턴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나름대로의 변명을 갖고 있기는 하다. 서구세계에서는 이제 과거 200-300년 전과 같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세계에 살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다른 문명권들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자신의 진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구차한 변명이다. 미국인들, 아니 미국 정책 결정자들에게 미국의 헤게모니는 끝났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라는 것이 그 논문의 목적이었다는 건, 베트남 전쟁을 적극 지지했던 헌팅턴의 전력으로 미루어 볼 때에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른바 추상의 차원에서 논의될 때엔 그럴듯한 면도 전혀 없진 않지만 그것이 미국의 구체적인 외교 정책으로 가시화 될 때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인권운동은 쇠퇴할 것이고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또 미국은 ‘문명 충돌’이나 ‘문화 갈등’이라는 면죄부를 흔들면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헌팅턴의 주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점이 많다는 것도 지적해 두는 게 공정 할 것이다. 중국의 패권주의는 미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우리 역시 경계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실리를 취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헌팅턴으로부터 배울게 있다. 헌팅턴은 95년 MBC TV와의 신년특별대담 ‘문명충돌과 한반도’에서 “10~20년 내에 통일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며 다른 나라들도 이를 제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분단 40년의 장벽은 5천년의 문화적 전통에 비추어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지극히 타당하거니와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그의 충고를 들어보자. “위험천만한 이웃들이 도사리고 있는 이 지역에서 한국은 통일을 이룩해야만 한다. 통일된 한국은 인구 6천만명에 달하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게다가 높은 생산성을 지닌 북한의 인력과 활력있는 남한의 경제가 합쳐질 것이고, 군사적으로도 막강해져 핵무기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될 때 통일된 한국은 위험천만한 이웃 나라들 사이에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한국은 동아시아의 주요 문명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있어 갈등이 빚어질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쪽에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입장을 잘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된 한국의 외교정책에서 그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떠오를 것이다.”(「조선일보」, 95년 1월5일)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다. 남북한은 통일돼야 한다니! 동아시아 전체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말이다. 문제는 우리의 외교 역량에 달려 있다. 헌팅턴이 지적했듯이, 한국이 지도자들은 중국과 일본사이에서 입장을 잘 조절해야 하며 그건 통일된 한국의 외교정책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외교정책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그런 외교 역량을 따져 묻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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