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7 | [문화저널]
신경성 위염과 비증(痞症)·문구
문화저널(2004-02-12 15:10:11)
한의학에서 비증이란 가슴과 명치 부위가 더부룩하고 꽉 막힌 듯이 답답하며 통증이 없는 병증으로 양방의 신경성 위염의 범주에 속한다. 신경성 위염은 기능성 위장장애의 일종으로 여러 가지 검사에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지만 오래되면 전신허약과 함께 환자 자신에게는 중병으로까지 여겨지며, 소화가 잘 안되고 명치끝이 아프지 않으면서 답답한 증상이 비증의 증상과 유사하다.
이러한 비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비증의 병리상태 파악이 중요한데 샤론스톤 주연의 영화 <원초적 본능>을 보면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원초적 본능의 첫 장면에는 샤론스톤과 어떤 근육질 남서의 주역(周易)의 괘사(卦辭)를 연상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위쪽에 위치하고 남자가 아래쪽에 위치하는데 이것을 괘사로 표현하면 위에는 음(陰)인 곤괘(坤卦)가 아래에는 양(陽)인 건괘(乾卦)가 위치하는 지천<태>괘(地天<泰>卦)이다. 위쪽의 곤괘는 음적인 성질이 있어서 기가 아래로 향하고 아래쪽의 건괘는 양적인 성질이 있어서 기가 위로 향하기 때문에 음양의 기가 서로 교류하여 천지, 만물, 상하가 상통하고 교감하여 가장 좋은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태괘와 정반대 되는 괘는 위에는 건괘가 아래에는 곤괘가 위치하는 천지<비>괘(天地<丕>卦)이다. 상부의 건괘는 양의 성질이 있어서 기가 위로만 향하고 하부의 곤괘는 음의 성질로 아래로만 향하므로 음양의 기가 교류하지 못하여 천지, 만물, 상하가 불통하고 교감하지 못하므로 상하가 꽉 막혀 버린 상태이다.
비증에서 ‘痞’ 字는 천지비괘의 ‘丕’ 字와 질병을 뜻하는 ‘疒’ 字가 합해진 것이다. 한의학에서의 비증병리가 바로 주역에서의 비괘와 같은 상열하한(上熱下寒)의 상태로 나타나 명치이상 부위에서는 열증(熱證)이, 명치 이하에서는 한증(寒證)이 나타난다.
상열하한 상태의 소화불량증에는 단순히 소화만 시켜주는 약은 효과가 적고 지천<태>괘의 상태로 돌려놓는 약이 필요한데 바로 사심탕(瀉心湯)계통의 처방이 그것이다. 사심탕에는 한성약(寒性藥)과 열성약(熱性藥)이 같이 들어 있어서 한성약은 상부의 열을 치료하고 열성약은 하부의 한증을 치료하여 상부와 하부의 기가 서로 교류하도록하여 지천<태>괘 상태를 이루게 하는 처방이다. 달리 설명하면 한성약은 자율신경을 조절하여 교감신경을 안정시키며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위장관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열성약은 위장관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며 기능을 보강하여 치료효과를 내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성 위염도 이처럼 비증의 병리를 파악함과 동시에 위장관의 한열허실, 오장육부의 상관관계 등을 파악하여 다스리면 근본 치료가 가능하다.
비증은 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나 국가에도 만연되어 있는 듯 하다. 대화와상식이 통하는 태쾌의 사회를 위해 양보와 이해 그리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