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7 | [문화저널]
쥬라기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온 친구·김태흥
문화저널(2004-02-12 15:10:42)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물의 오염으로 서식처가 급감하면서 많이도 사라졌지만 눈에 잘 띄이는 특성 때문에 아직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곤충이 잠자리이다. 장마통 반짝하고 해가 날 때면 어디선가 나타났고, 그러면 으례히 싸리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따라다니던 된장잠자리, 낮에는 하늘높이 날아 어림 한푼 없었으나, 어스름 저녁이면 잠잘 곳을 찾느라 물가로 내려오기에 기다렸다 감히 한 마리 잡고, 꽁지끝을 실로 매고는 하나라도 더 잡아볼까 휘돌리던 춘치(분류학적으로는 왕잠자리), 가을이면 아무 곳에나 지겹게도 흔하던 고추잠자리(옳게는 고추좀잠자리). 이들 모두가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마침 학교 포장에서 밀잠자리를 마주쳤기에 오늘의 이야기는 잠자리로 모아 보겠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잠자리는 두 종류로 대별한다. 짐작하겠지만 앞뒤날개의 모양과 크기가 같고 물가에 흔한 실잠자리, 물잠자리가 하나이고 우리 나라에는 22종이 서식한다. 이보다는 몸체가 굵은 편이며 뒷날개가 앞날개보다는 커다란 잠자리가 다른 한 종류로 72종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모두 5,000여 종이 보고되어 있으며 아열대지방에 훨씬 흔하다. 실잠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은 잠자리의 차례다.
다른 곤충들과 비교하여 눈에 띄는 특징은 이러하다. 색상이 다양하고 나는 속도나 크기로도 대적할 개체가 없을 정도로 빠르고 크다. 종류에 따라 시속이 40-100km나 된다고 하는데 날아다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속이 다 시원할 정도이다. 실같이 가늘고 짧은 더듬이에 왕방울 같은 눈(복안)은 발로 뒤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거의 전 방향을 감시한다. 30,000여 낱개의 눈이 모여 한쪽 복안을 이루며 12m내의 모든 움직임을 꿰뚫는다. 앉아서 쉴 때 양날개를 등에 접어 올려놓지 못하고 뻗히고 있는데 이는 딱정벌레나 벌 등과는 다른, 진화로 보면 잠자리가 아주 원시적 곤충의 형질을 여태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날개를 지닌 곤충 중 하루살이만이 같은 종류의 날개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화석에 남아있는 옛잠자리가 처음 출현한 시기는 3억년 전 석탄기로 크게 모양의 변화없이 지금 보는 잠자리의 종류가 출현한 1억5천만년 전 쥬라기까지 내려와 현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이 정신만 차려준다면 앞으로도 이만큼의 세월은 거뜬히 살아갈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어쨌든 쥬라기는 공룡들이 번창하던 때이므로 말만 통한다면 천하를 호령하던 공룡의 위용을 잠자리가 증언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인류의 출현은 최근 100-300만년 사이의 일이므로 만화나 공상과학의 책자에서와는 달리 아무리 과거를 거스른다 하더라도 6,000만년 전 멸종한 공룡을 직접 대면했던 사람은 없었다는 점을 밝혀 둔다.
뭐니뭐니해도 잠자리의 특이한 점은 짝짓기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수놈은 짝을 이루기 전에 배를 앞쪽으로 구부려 미리 맨 끝 아홉번째 마디의 생식공으로부터 둘째마디에 있는 저장낭으로 자신의 정자를 옮겨 놓는다. 짝짓기를 할 때는 배 끝 집게모양의 파악기를 이용하여 암놈의 목부위를 잡는데 이 때 암놈은 배를 굽혀 앞쪽 수놈의 저장낭에 있는 정자를 받아들인다. 이런 유별난 생식의 과정은 다른 어떤 곤충류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모두 공중을 날면서 이루어진다. 알은 짝을 이룬 채, 아니면 헤어져서 독립적으로 물위에 산란하는데 낮게 날으면서 잔잔한 수면에 꽁지 끝을 여러 차례 두드리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다. 일부는 꼬리를 물 속에 담그고 수면 바로 밑 식물 줄기에 알을 붙여 놓기도 한다.
부화한 약충은 아가미로 숨을 쉬면서 종류에 따라 2-3년 동안 10-15회의 허물을 벗으며 자란다. 모습은 날개가 자욱만 있는 잠자리 형상을 하고 있고 배 부분이 불룩하고 짧으며 뾰족하게 끝이난다. 위장술을 겸해 흙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포식성으로 물 속 곤충이나 갑각류를 먹고 산다. 약충은 또 항문에 물을 모아 두었다가 별안간 내뿜는 젯트엔진의 추진력도 갖추고 있어 여간 해서는 천적이 없고 큰 종류의 물고기 정도가 고작이지만 수질오염, 늪지의 파괴가 잠자리의 수를 급감시키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완전히 성숙한 개체는 새벽녘 물 밖으로 기어나와 풀이나 나무줄기, 또는 돌 위에서 마지막 탈피를 하고 대망의 잠자리가 된다. 한 시간 정도면 성충의 모양이 되나 고유한 몸체의 색깔, 나는 힘은 일주일이 지나야 제대로 갖추어 진다. 그리고 긴 다리를 소쿠리처럼 모아 그물을 치듯 공중의 모기, 각다귀, 파리류를 잡으며 6-8주를 산다. 수놈 중에는 직경 90m 정도로 자기 영역을 설정하고 순찰을 도는 종류가 많은데 이 안으로 날아드는 암놈과 짝을 이룬다. 성충 잠자리도 워낙 재빠르기에 천적이라고는 제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우리 나라에 보고된 가장 작은 잠자리는 빙하기에 북쪽에서 내려왔다가 지금은 해발 600m이상의 늪지에서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 꼬리가 붉은 꼬마잠자리(Nannophya pygmaea Rambur)로 체장이 2.5㎝이다. 커다란 잠자리로는 8㎝ 이상이나 되는 왕잠자리(Anax parthenope Selys)가 있는데 이도 불란서에서 발견된 71㎝의 화석 잠자리에 비하면 별 것은 아니다. 오늘 사진에 소개하는 큰밀잠자리(Orthetrum triangulare melania Selys)는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5.5㎝로 중형이다. 왜 큰밀잠자리이냐 하면 유사하기는 하나 이보다는 작은 듯한 밀잠자리[O. albistylum speciosum (Ubler)]가 있기 때문이고 다자란 약충이 물에서 올라와 부화하고 하루나 이틀 동안은 채색이 노르슷 익어가는 밀짚의 색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후 수놈은 회청색으로 바뀌며 암놈은 황갈색 바탕에 검정색의 줄무늬를 띈다. 지방에 따라서는 그래서 암놈을 따로 용잠자리라고도 부른다. 큰밀잠자리는 몸통이 약간 굵고 수놈 뒤날개 기부가 삼각형 모양 감청으로 채색이 되어있어 투명한 날개의 밀잠자리와 쉽게 구별된다. 성충은 5-10월에 평지, 구릉지, 야산의 습지, 물이 있는 논 등에서 보는데 한국 전역과 일본, 중국, 대만에 흔히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