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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7 | [문화저널]
토요일의 손님·한민자
한민자 (2004-02-12 15:12:00)
나는 선그라스를 꺼내쓰고 차를 몰았다. “여보 내게도 팬이 생겼어. 그래서 지금 그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점심 먹고 들어갈게요.” 조금 전 나는 남편에게 그런 내용의 전화를 넣었다. 퇴근을 두어 시간 앞두고 누군가 내게 전화를 했었다. 내 작품을 읽고 만나고 싶다는 비구니였다. 음성이 탁하고 좀 나이가 든 느낌이었지만, 비구니라는 것과 내 작품을 읽고 전화를 건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이 관심을 끌어서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기꺼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으므로 지금 그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가 가는 길이었다. ‘내 시를 읽고 인상깊었다?’ 나는 기분의 좋아서 터미널다방의 유리문을 힘껏 밀고 들어섰다. 주말의 한낮이라 다방은 꽤 붐볐는데,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유월에 긴 회색 승려복을 걸치고 검은 모자를 쓴 스님의 뒷모습은 애써 찾지 않아도 금방 눈에 띄었다. 아이쿠. 스님의 앞으로 가 머리를 꾸벅 숙이던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예상밖으로 나이가 든 비구니였다. 나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무엇을 읽었느냐, 어떤 느낌이었느냐, 어디에 계시는 분이냐…. 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잘 들은 것 같진 않았지만 무어라 화답을 한 것 같기는 했다. 그게 대수냐 싶어 나는 시종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헌데 처음의 꽤 정중한 말투가 몇 마디 오고 간 다음부터는 반말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전제하에. 괴팍한 중들이 대게 반말에 욕지꺼리를 서슴치 않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그녀의 그런 말투를 보편적으로 봐야한다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또한 시를 쓰는 스님이라니 더 하면 어떤가 하고. 그녀는 내 연작시 ‘별’이란 작품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대부분 쓸데없는 말들을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그런저런 얘기들을 하는 사이 반말로 전해오는 그녀의 말들이 왠지 불쾌하다는 느낌이 슬며서 들기 시작했는데 늙은 그녀가 불쑥 내뱉었다. “나 배고파. 밥 사줘.” 마치 어린애가 엄마에게 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점심까지는 대접할 생각이었으니까. 헌데 유리문을 막 밀고 나가려는데 “이소영씨 이것 좀 들고 가.”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커다란 가방이 그곳에 있었다. 그걸 나더라 들고 가르는 것이었는데. 부탁하는 말투가 아니고 명령조였기 때문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나는 이내 마음을 다독이고 알았다고, 밥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낑낑거리고 들고 나와 우선 내 차에다 실었다. 날이 더우니 냉면을 먹자고 했더니 고기를 사달라고 한다. 이런-. “스님도 고기를 드십니까?” 하나마나한 소리였지만 일부러 약간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럼, 고기 안 먹는 중 봤어? 나 배가 많이 고파.” 가까운 냉면집으로 가서 후딱 해치우려던 나는 할 수 없이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날이 더워서 고기 먹기에는 부적합한 날이었다. 짜증이 점점 불어났지만 참고 있자니 더욱 더웠다. “나 술 한 병 시켜줘.” 낮술까지? 가관이로군. 나는 군말없이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두고보자는 생각이었다. 밥 생각도 없어서 소주를 마시며 허적허적 고기를 씹는 그 늙은 여인을 멀끄러미 바라보았다. 모자를 쓴 얼굴이 붉게 번들거렸고 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시가 실린 잡지를 진열해 놓은 그 ‘어디’의 주인을 원망했다. 왜 하필이면 나를 짚었을까. 다른 사람의 시도 많은데…. 여보, 내게도 독자가 생겼어 하고 좋아했던 내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이제 술까지 마신 늙은 여인은 취기까지 겹쳐서 더욱 꼴불견이 되어버렸다. 나를 완전히 봉으로 생각했는지 갈수록 가관이었다. “나도 말이야. 젊어서 시를 썼어. 그때 한 남자를 만나 미쳐버렸지. 그래 산 속으로 도망갔다 이거야. 내 나이 스물이었지. 근데 이 남자가 죽어버렸거든. 그래서 절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또 도망을 쳤지. 중하고. 결혼을 했는데 또 죽어버렸어. 그때부터 절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또 들어가고 하는 사이 늙어버렸어. 지금은 떠돌이 중이야. 당신 시를 보니 내 지난날이 생각났어. 나도 시를 썼거든. 이래뵈도 선시를 썼다고. 나 무시하면 벌 받아. 이깟 고기 좀 사줬다고 재지말고. 자, 자, 술 좀 따라.” 나는 늙은 여인의 엉뚱한 술시중까지 들어야 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다음말은 더 가관이었다. “이제 자네 집으로 가세. 가서 좀 쉬어야겠어.” “우리집은 왜 가요?” “그럼 어디로 가? 난 갈 데가 없어. 돈도 없고 내 가방 갖고 가자고. 가서 얘기할 게 많아.” 이거 큰일났군. 나는 안되겠다 싶어 고깃집에서 나와 잠시 서 있으라고 하고는 낑낑거리며 가방을 꺼내 갖고 와서 말했다.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릴 테니까 가세요.” “안가. 네 집으로 갈거야.” 막무가내였다. 가방은 무겁고 불쾌한 늙은 여자는 취기까지 겹쳐서 도통 움직이려 들지 않고 나는 기가 꽉 막혀버렸다. “그러면 여관에 모셔다 드릴게요. 가요.” 나는 할 수 없이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그녀를 떼어버려야만 하는데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별 거지같은 게 다 와서 시인이라고. 선시를 쓰는 비구니라고 사기친다고 욕을 하며 길거리에 팽개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내 시를 읽고 찾아온 ‘스님’아닌가. 끝까지 겉으로라도 스님 대접은 해줘야 내 격에 맞는 일이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길가에 주저앉은 그녀를 일으켰다. 술에 취한 그녀가 한낮에 길에서 토할까봐 겁이 났다. 나는 여관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놈의 가방,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위기를 모면하려 애쓰고 있었고, 인내심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 하지만 나는 늙은 땡중이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그 한계를 극복했다. ‘차비가 없었던 거야. 밥먹을 돈이 없었던 거야.’ 나는 핸드백을 뒤져 약간의 돈을 찾아 그녀의 승복에 찔러넣었다. “자요, 차비하세요.” 그녀가 돈을 꺼내보곤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곤 할 수 없다는 듯 따라나섰다. 하지만 입으로는 계속 “네 집으로 갈거야. 네 남편 만나서 얘기할 게 있어.”하고 주절대었다.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마침 터미널 근처에 아는 사람의 여인숙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나서 나는 가방을 질질 끌고 그곳으로 갔다. 그녀가 군소리 없이 여인숙의 한방으로 들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뿐하게 진짜 스님처럼. 하지만 그녀는 나의 먼 친척뻘인 여인숙 주인남자를 화나게 했다. “너 나를 무시하면 안돼. 왜 나를 안데리고 가는거냐? 너의 집에 가서 자고 이야기하고 싶단 말이다. 나도 시인이야.” 더 이상은 옮기기가 뭣하다. 그녀의 욕설섞인 반말지꺼리를 어찌 격의있는 내 손으로 옮겨쓰겠는가. 그래서 여인숙 주인이 나선 것이다. “정말 안되겠네요. 택시 태워드릴테니 가세요.” 나는 분노를 누르고 그렇게 말했고 여인숙 주인은 내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더니 문 밖으로 내다 놓았다. 처음엔 내팽개칠려고 하다가 내 손짓을 보고 탕, 하고 내려놓는 것으로 그쳤다. 그 다음에는 뻔하다. 그녀는 노회한 여인숙 주인에 의해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서 쫓겨난 그녀를 가방과 함께 태웠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격의를 지켰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지만 그녀를 쫓아버렸다는 시원함보다 푸르스름한 슬픔이 왜 내 가슴을 채우는 걸까. 늙은 내 독자여. 안녕. 그렇게 나는 쓸쓸히 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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