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7 | [시]
칙칙폭폭 칙칙폭폭 5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양병호
(2004-02-12 15:25:17)
삶의 에이비씨 단계 벗어나도
교실에선 여전히 교과서를 배웠다
모두 함께 제비새끼들처럼 입 벌려
따라일기 하는 나날들 속에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
『정통종합영어』의 단정명제에 끌렸다
기본은 수료하고 정통하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실습을 통해 심화 학습하고 싶었다
‘얻는다’를 확인하고 ‘용감’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 때 칙칙폭폭 칙칙폭폭 열차가 달려왔다
먹물보다 짙은 하교길 친구들 멀리하고
태평동 살구나무 그림자 무성한 빨간기와집의
살구씨같은 여학생의 꼬리를 밟기 시작하자
전봇대, 가로수, 포장마차, 공중전화 박스 모두
기꺼이 내 부끄러움의 은폐물이 되어 주었다
담 넘어 그녀의 창은 질투날 정도로 아늑했으므로
나는 ‘얻음’을 향해 ‘용감’하게 돌편지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얻지’못했고 그녀의 오빠는 ‘용감’했다
유리창 깨지듯 따귀를 얻어맞고 혼비백산했으므로
용감한 자 되기에 불충분한 자질만을 확인한 채
삼심육계 놓는 등뒤로 “오빠는 괜히 그래-씨이”
“알지도 못하면서” 맛좋은 여학생의 투덜거림을
따라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가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