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8 | [문화저널]
방아벌레는 공중 튀어오르기의 명수 ·김태흥
김태흥
(2004-02-12 15:35:41)
제목만 보고는 방아깨비[Acrida cinerea cinerea (Thunberg)]를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 같다. 7월 이후 나타나는 손가락 굵기의 기다란 초록색 메뚜기류로 뒷다리의 가는 종아리마디를 모아 쥐고 있으면 아래위로 흔들거리는, 흡사 디딜방아를 연상케하는 유년시절의 친구. 제딴에는 뛴다는 것이 오금을 잡혔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셈이 되는데 방아깨비라 불리우는 친구는 모두 방아깨비의 암놈이다. 수놈은 비슷한 모양이나 크기가 반밖에 되지 않으며 굼뛰는 암놈보다 훨씬 약삭빨라 잘 잡히지 않는 편이다. 날 때는 앞과 뒤의 날개가 부딪치면서 “따다 따다” 하는 소리를 내어 때까치라고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사람도 어른이 되면 더 크지 않듯이 일단 날개가 돋으면서 성충이 되면 때까치를 포함한 모든 곤충은 더 자라지 않는다. 이 말은 비록 수놈이 몸체는 작다하나 당당한 성체로 시간이 흘러도 더 크지 않으며 필요한 남자구실을 완벽하게 다 한다는 뜻으로 태어나기를 작게 태어났을 뿐이다. 또 그런대로 잘 생각해 보면 여기에 당연한 이치가 들어있다. 가을이면 대부분의 곤충은 성충으로서 생을 마감하는데 수놈은 짝짓기가 끝이지만 암놈에게는 조금 더 살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투입하는 산란이라는 절대절명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할 일 없이 노닐다가 가을 서리가 내리면 그만인 수놈과는 다른 처지의 암놈은 미리 영양분을 충분히 저장해 두어야만 대를 이을 수 있기에 대체로 크기가 훨씬 큰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본론으로 메뚜기 방아깨비가 아닌 딱정벌레 방아벌레의 차례다. 놀이감이 귀하던 어린 시절 손바닥 안에 꼭 쥐면 딱 딱 몸부림치는 것이 느껴지고 평평한 땅에 뒤집어 내려놓으면 10여㎝를 튀어 오르는 단단하고 납작길죽하게 생긴 바로 고놈이다. 체색은 보통 검정부터 갈색에 이르는데 붉은색의 종류가 잇기도 하며 등쪽에 경고용 눈모양 반점을 지닌 개체도 있다. 우리 나라에는 녹슬은방아벌레, 빗살방아벌레, 뿔방아벌레 등 모두 83종이 보고되어 있으며 크기는 12-30㎜ 정도인데 다른 나라에는 이보다 유난히 큰 예외가 있기도 하다. 방아벌레라는 이름을 얻게된 취는 동작은 물론 놀라움의 표시, 적으로부터의 탈출일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이렇다.
딱정벌레의 첫째와 둘째 가슴마디는 보통 완전유착이 되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방아벌레는 예외로 바닥 쪽 가슴 첫째마디 끝에 뾰족한 가시(그림에서 sp로 표시된 부분)가 튀어나와 둘째마디 앞부분의 가운데 패여있는 홈(그림에서 점 어두운 곳)에 끼워지면서 유연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수평바닥에 방아벌레의 배를 위로하여 내려놓으면 발버둥을 치는데 다리만을 이용해서 바른 자세로 돌아가는 재주는 없다. 이때 머리와 가슴 첫째마디를 힘껏 재끼면 가슴, 배를 하늘로 쳐드는 꼴이 되며 ‘ㅅ’자처럼 머리와 꽁지의 끝만 지표면에 닿게된다. 그리고는 아주 갑자기 몸체를 쭉 뻗는다. 이 동작으로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던 가슴 앞마디 뾰족가시가 둘째마디 홈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딱’소리와 함께 몸체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게 된다. ‘딱’하는 소리는 등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 홈 속에 가시가 끼면서 멎을 때 나는 소리이다. 당장 실행해 보면 아시겠으나 엄지손과 장지를 이용하여 소리를 낼 때에도 약지가 장지를 잡아주지 않으면 신통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어쨌거나 이 동작의 결과는 통제가 불가능한 공중제비로 내려설 때 바로인지 뒤집어져인지는 우연이며 바로 내려설 때까지 방아를 찧는다. 초고속 촬영으로 확인된 바 튀는 동작은 1/2,500초에 완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충은 식식성으로 나무껍질 밑이나 고목 속에 주로 살며 봄철 꽃으로 모여든다. 유충은 갈색으로 고목 또는 땅 속에 사는데 가늘고 길며 광택이 있다. 식성이 대단하여 야생식물은 물론 새로 파종한 종자, 콩의 뿌리, 감자 등 농작물까지 해친다. 번데기 시기는 땅 속, 나무 껍질 밑에서 보내는데 알의 시기부터 계산하면 종류에 따라 2-5년 후 성충이 된다. 사진에서 보는 방아벌레[Ampedus (Ampedus) nigroflavus (Goeze)]는 몸 전체가 검은색이며 체장은 16㎜이다. 5-8월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는데 풀잎이나 나무줄기 또는 개망초 같은 들꽃 위에서도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