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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 | [문화저널]
창작소극장 재건운동 지역문화의 희망을 재건한다
문화저널(2004-02-12 15:38:09)
전주 유일의 연극전용소극장, 소극장 운동의 보루, 전북연극의 모태…. 지난 4월 화재로 불타버린 창작소극장에 붙여졌던 영예롭지만 고달픈 수사들이다. 이렇듯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던 창작소극장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지역연극계와 시민문화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창작소극장은 지난 90년 연극인들과 연극애호가들의 후원에 힘입어 개관되었다. 이후 만 7년동안 이곳은 지역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잇는 다양한 실험과 창작과 만남의 장이 되어왔으며, 수많은 연극인들과 지역극단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왔다. 특히 지난 93년부터 시작된 <소극장연극제>는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지역연극의 축제가 되어왔다. 바로 이곳에서 창작극회의 <방디기전>, <남자는 위 여자는 아래>, <시민 조갑출>, <마술가게>, <진흙> 등의 실험작들이 공연되었고, 극단 「황토」,「디딤예술단」,「불꽃」,「연희단 백제후예」등이 만든 수십여편의 연극들이 지속적으로 공연되면서 지역연극의 소중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창작소극장은 80년대 이후 전북연극이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한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벌써 몇 년째 지역문화의 위기가 운위되는 시점에서 창작소극장의 화재는 지역문화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창작소극장은 최근 지역문화의 대형화와 상업화에 맞설 수 있는 의미있는 대안운동으로서 지역문화의 기초가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창작소극장이 순수하게 연극인들과 소액 후원자들의 후원에 힘입어 세워진 순수 예술공간이라는 점에서 최근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개관하고 있는 문화공간과는 그 성격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창작소극장을 되살리기 위해서 창작극회와 전북연극협회를 중심으로한 지역 연극인들은 지난달 「창작소극장 재건 추진운동본부」를 발족시키고 각계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며, 창작소극장 재건기금마련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 전북지역의 시민문화단체들도 뜻을 모아 지난 7월29일 「창작소극장 재건을 위한 시민모임」을 구성하고 재건운동에 나서고 있다. 창작소극장의 재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시민적인 노력과 참여를 통한 후원이 가장 의미있는 도움이 될 것이다. 「창작소극장 재건 추진운동본부」는 일차적으로 약 5천만원 정도의 재건기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창작소극장의 화재가 지역연극계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범시민적 역량을 결집시키면서 지역연극의 보루를 새롭게 단장한다면 침체에 빠진 지역연극은 다시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북미술협회『전북미술근대사』발간 전북예술사 정리의 단초 마련한 결실 전북미술협회가 지난 95년 ‘미술의 해’를 기념해 작업에 들어갔던 『전북미술근대사』를 발간했다. 이 지역 문화예수의 큰 축을 이루어온 미술계를 정리한 이 책은 전북미술의 한세기에 걸친 발자취와 그 활동상을 담아 전북미술의 도도한 물줄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전북미술개요」(이철량·전북대 교수)를 필두로, 「전북미술근대사의 작가들」(김은정·전북일보 기자), 「도판(圖版)」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전북미술계를 정리한 「새로찾는 전북미술사」에서 이철량씨는 ‘전주는 오랜 역사와 넉넉한 삶을 꾸려, 각종 예술과 지주계급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서화를 즐기는 풍조가 유행했다’도 말했다. 「전북미술근대사의 작가들」에는 추사에 버금가는 명필로 인정받은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사군자 일품인 문인화의 대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인물화에 빼어난 신필(神筆)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蘭그림이 빼어난 19세기말의 걸출한 문인화가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 학문적 바탕위에 서예의 굵은 맥을 이은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학문과 시에 대한 높은 경지를 이룬 진재(晋齋) 배석린(裵錫鱗), 근대와 현대를 잇는 새로운 기풍을 일으킨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 현대미술사의 공백기를 살았던 황종하(黃宗河)의 형제들, 기존화풍을 벗고 근대적 사상을 담아낸 소제(昭齊) 이상길(李相吉), 자유분방함과 진취적인 화풍을 지닌 묵로(墨鷺) 이용우(李用雨), 근대 일본화풍의 전통위에 선 운정(雲汀) 정복연(鄭復然), 불우한 시대의 빼어난 민족화가 진환 전북서양화단의 문을 연 금릉 김영창(金永昌), 뜨거운 예술혼으로 근현대 화단을 이은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한국적 정감을 담아낸 김현철(金顯鐵) 등 전북화단의 맥을 면면히 지킨 작가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았다. 기획위원회 측은 “『전북미술근대사』가 단지 형식에 그치는게 아닐, 실질적인 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 철저한 고증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들어갔으나 자료와 기록이 미흡하여 시기도 늦어졌고, 체계적이고 철저한 고증이 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전북지역이 수많은 문화유적과 유산, 그리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어느 것 하나 변변하게 정리된 것이 없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북근대미술사』발간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 단재상 수상 한국문학사의 큰 궤적으로 남은 민족의 ‘혼불’ 17년 동안의 투혼으로 완성한 대하소설 『혼불』로 한국 현대문학에 빛나는 결실을 안겨준 소설가 최명희씨가 제 11회 단재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단재상은 한길사가 지난 1986년 단재 신채호 선생서거 50주년을 맞아 단재선생의 민족정신과 사사응ㄹ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제정, 운영해오고 있는 상이다. 올해 단재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명희씨는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 그 이듬해인 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제 1부)이 당선되었다. 『혼불』은 최씨가 1980년 봄 4월부터 첫장을 쓰기 시작해 만 17년 동안 투혼을 불사른 대하소설. 90년 제 1·2부가 출간된데 이어 다시 6년만인 지난해 12월 모두 6부 전10권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이 소설은 1930년대 말부터 1943년 봄까지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남원의 한 유서깊은 문종 매안 이씨 가문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려는 청암부인과 율촌댁, 효원에 이르는 종부 3대의 삶을 중심으로 남성성이 거세된 주인공 ‘강모’, 또 그 남성들로 하여금 사회적 남성성을 잃게 만든 식민지 상황, 그러한 근대사의 격랑속에서도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당당하게 지켜갔던 양반사회, 그리고 그들과 함께 평민과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러운 세상살이를 살다간 거멍굴 사람들의 애절한 삶들을 그리고 있다. 출간된 직후부터 각계의 관심과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학의 해 최대 성과”,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오래 남을 작품”, “살아있는 민족문학의 백과 사전” 등의 찬사를 받은 혼불은 어둡고 억눌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펴보이는 해원의 장대한 서사시. 또 세시풍속·관혼상제·음식·노래 등 민속학·인류학적인 기록들을 우리의 아름다운 모국어와 극채색으로 생생하게 복원해낸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0대의 작가를 50대에 이르러서야 놓아준 『혼불』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아름답게 그려낸 역사서이다. 또한 우리 문학계에 난무하는 각종 가벼움과 일회성을 경계하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편 단재상은 박현채(전 조선대교수·작고), 이오덕(아동문학가), 조정래(소설가), 김남주(시인·작고), 신경림(시인), 이영희(전 한양대교수·신문방송학), 노동은(목원대교수·한국음악), 염무웅(영남대교수·독문학)씨 등이 수상했다. 올해 시상식은 7월14일 저녁 7시 서울 강남출판문화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렸다. 고창 생가복원과 미당시문학관 건립 추진 문학사의 거목, 미당 서정주 문학관 세운다 한국시문학사에서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르내리는 찬탄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비껴간 나약한 시인으로 애증(愛憎)의 눈길을 함께 받아온 미당 서정주 시인의 문학관 건립이 추진된다. “한국문학에 끼친 미당의 업적을 보존·선양하고 고창을 시문학 순례지의 기반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미당 시문학관 건립 추진위’의 설명이다. 언론인, 예술인 등 각계인사로 구성된 추진위는 지난 7월 15일 고창군청 상황실에서 도내 및 출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 날 총회에서 미당의 생가가 있는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질마재)일대 857평내에 생가를 복원하고 시문학관을 조성한다는 기본계획을 구상했다. 내부에는 미당 육필집, 소장 작품들을 수집해 미당문학 전시관을 만들고, 영상실, 강의실, 시비와 흉상들을 건립할 예정이다. 시문학관 설립과 관련해, 전북문인협회 서재균회장은 “미당 서정주가 한국문학사에 끼친 업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문학관 걸립은 당연하다. 전북을 빛낸 미당의 문학관을 설립하는 일에 문인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순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건필을 자랑하고 있는 미당 서정주는 얼마전 출간한『늙은 떠돌이의 시』의 머리말에서 “매 숨결이 내 육신에서 아주 떠나버리는 날까지 나는 이 짓을 접어두어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각오한 바 있다. “시 쓰는 일에 있어서 백년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인물”(문학평론가 김재홍)이라는 평을 얻고 잇는 미당은 일제 말기 친일행각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발언 등으로 비판을 동시에 받아온 인물이다. ‘다쓰지로 시즈오’라는 일본 이름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시와 수필, 소설 따위를 썼다는 사실, 광주의 피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1981년 초 그가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위한 텔레비젼 지원연설에 나섰던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사에 그는 큰 발자국을 남겼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고창에서 출생하여 중앙공보와 중앙불교학교에서 수학하였다. 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첫 시집『화사집(花蛇集)』(1941) 이후『귀촉도(歸蜀途)』(1948),『신라초(新羅秒)』(1961),『동천(冬天)』(1969),『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산시』(1991),『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 다수의 시집을 냈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동국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5·16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박물관 문화학교 옛 문화아ㅗ의 소중한 만남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돕는「어머니와 함께하는 청소년 강좌」가 열렸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는 청소년 강좌는 7월21일부터 24일까지 하루 2강좌씩 총 8강좌를 마련, 우리 전통 문화와 역사적 유물의 이해를 돕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마지막날인 25일에는 고창 부안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 이론만으로 소홀해지기 쉬운 우리문화를 관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청소년 문화강좌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방법에서부터 옛그림, 도자기의 감상방법을 비롯해 변천과정, 역사연구의 기본인 옛문서의 쓰임새에 대해 강의했다. 또 유물의 발굴에서 박물관에 전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하여 선인들의 국악, 미술을 통해 표출되었던 예술문화에 대해 감상하는 시간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도내에 얼마나 산재되어 있는가를 알아 보았다. 마지막날 고창 부안지역 고적답사는 고창의 선운사, 읍성, 상갑리 고인돌, 선운사, 내소사 등 지역에 산재해 잇는 문화유적에 대해 박물관 최선주 학예연구사로부터 강의와 함께 유물의 의미를 감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학생들은 평소 눈으로만 보아온 문화재를 자세한 설명과 곁들어 감상하게 되어 보다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5일간의 일정을 빠짐없이 마친 학생들은 “학교교육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 이번 여름방학은 우리 문화에 더욱 친밀해 질 것 같다”며 “겨울방학에도 이 같은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좌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이번 강좌를 통해 자녀와 대화의 장이 마련됨은 물론 자녀와 함께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공부한다는 점이 특히 자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는 것 같다”며 잦은 필요성을 지적했다. 전주박물관은 매년 7월에 어머니와 함께하는 청소년 문화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문화예술회관 10월 착공 문화예술계의 숙원사업, 삽질이 이루어진다. 말많고 탈많았던 전북문화예술회관이 마침내 오는 10월에 착공된다. 전북도가 지난 7월16일 문화예술회관 신축부지인 전주시 덕진동 산1-1번지 일대 3만3천3백평의 매입과 등기절차를 모두 완료해 공사착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전북도는 부지내 3만평의 땅을 소유한 전북대측과 지난 1월 농민교육원옆 도유지 3만평과의 교환 협약을 체결하면서, 최근 부지교환을 매듭지었으며 나머지 2천 4백평의 사유지를 매입해 착공전 작업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따라 6월 전주시에 신청한 건축협의를 8월에 마무리짓고, 곧바로 공개입찰을 통해 시공업체를 선정한 뒤 10월에는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01년에 준공될 문화예술회관은 국비 2백억원과 도비 6백5억원 등 모두 9백9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1만 9백 32평 규모로 대소공연장과 미술관 등을 갖춘 전북을 대표하는 문호공간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도기 시작한 것은 94년부터였다. 전북도는 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자료조사를 시작했고 도내 예술인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부지선정과 대학로 개설문제로 난황을 겪어오던 중 지난해 전북대 부지 통과구간 연장 5백m중 3백25m를 지하화하는데 완전합의, 신축사업이 진척되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문화예술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문화예술회관의 건립확정은 지역 문화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술회관의 신축과 함께 지역문화의 기초를 세우는 일에 대한 투자와 관심도 촉구되고 있다. 대규모 공연장과 전시장이 세워졌을 때 그 공간을 채울 수 잇는 지역문화의 역량이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지역문화의 균형잡힌 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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