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8 | [문화저널]
아카시아꽃의 충고
옹기장이 이현배(2004-02-12 15:47:41)
옹기전을 주관한 문화원 원장댁에서 저녁식사를 하구서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원장께서 비닐봉지에서 아카시아꽃 말린 것을 꺼내 나눠주시는 거였다. 그이의 이런저런 사회활동으로 보자면 도무지 아카시아꽃을 따 말려뒀다가 차로 그 향을 음미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당장 나 자신 부끄러웠다. 그래 아카시아꽃에 얽힌 옛 일을 고백했다.
“ 십 여년 전에 사귀던 아가씨와 양산 통도사엘 갔었어요. 아카시아꽃이 많이 피었드랬는데 아카시아꽃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 손을 뻗어 가지를 잡아 아가씨 앞에 내밀었죠. 그랬더니 꽃은 안먹고 저를 빤히 쳐다만 보는 거예요. 가만 봤더니 왜 안따주냐는 거예요. 그래 제가 정색을 하고 말했죠. ‘나는 당신이 원하는 걸 스스로 얻는데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그걸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요즘 몸에다 쑥뜸 들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쑥뜸을 뜨면서 말린 아카시아꽃을 선물해 준 문화원 원장님과 십여년 전 아카시아꽃을 선물받지 못한 그 여자친구의 ‘좀 따뜻한 사람이 되라’는 충고가 쑥뜸의 뜨거움을 기꺼이 견디게 하고 있다.
외딴 곳
버려진 집에다
2박 3일 동안
나를
가두었다
발효가 되는지
부패가 되는지
그걸
알고 싶었다
....... (1986. )
그때 나는 부패도 발효도 아닌 그냥 굳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어떨까? 옹기그릇이 발효에 좋은 그릇이고 약쑥으로 뜸을 들이고 있으니 이번엔 이 사람이 ‘좀 괜찮은 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