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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 | [저널초점]
윗물과 아랫물이 흐르는 원리를 아는가·윤덕향
윤덕향(2004-02-12 15:49:32)
짜증스러운 장마비는 쏟아지는 빗줄기라도 차라리 시원한 것이었다. 장마조차 끝난 날들은 어느 한구석 시원한 곳이 없이 답답하고 답답한 시간의 연속이다. 용들이 벌린 이전투구나 재벌그룹의 부도위기 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얼마간의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그럭저럭 해결되고 또 해결될 일이다. 1년 전 중앙청의 첨탑을 끌어내리면서 민족정기의 회복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목소리 높여 외친 이래로 얼마나 민족정기가 회복되고 역사가 바로 세워졌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호사스럽거나 성마른 일이니 역시 덮어둘 일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의 근간이라 할 수 잇는 청소년들. 입만 열면 나라의 미래를 젊어진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괴롭힘이 언론에 보도되자 마치 새로운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것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되어버렸다. 그 이후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청소년 비행은 급기야 포르노 제작까지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견문이 짧은 탓으로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포르노 제작분야에서 최연소로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한편으로 어찌되든 세계 일류를 기록하였다하여 세계화, 국제화의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분이 계시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한다. 그런 기성세대들도 돌이켜보면 ‘요즘 애들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란 세대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그런 의미나 수준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버릇없고, 문제가 많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또 다른 엄청난 일이 생길 때까지는 이 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망각 속으로 묻히고 말 것이다. 언제나처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히 덮어두고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니 말이다. 하기야 청소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우리 사회에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일이다. 청소년 문제에 대하여 어떤 전문가께서 학생들을 늦게까지 학교에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다. 그분 말씀대로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청소년 문제는 문제가 될 수 없는 극히 사소한 일이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마다 기숙사를 지어 모든 학생을 학교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도록 만들면 될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그렇게만 된다면 문제가 되는 사교육비도 해결될 것이고 건설회사들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등 1석 3조가 아니라 1석 몇 십조가 될 것이니 말이다. 물론 바다모래를 쓴다던가 졸속으로 인한 부실 공사가 염려되기는 하지만 그런 문제쯤이야 얼마든지 경험한 바가 있으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면 각종 청소년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대학교를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대학교의 서열화에 따른 교육열의 과열을 막기 위하여 전국의 대학교를 모두 같은 이름으로 하고 학과도 정원에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방법을 곁들인다면 교육과 관련된 문제, 청소년 관련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법도 하다. 도대체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있는 집안이라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런저런 영재교육으로 10여년간이나 공부에 찌들릴대로 찌들려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부하는 시간, 또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적고 자유시간이 많은 탓으로 넘쳐나는 여가를 주체할 수 없어서 우리의 청소년들이 포르노를 만들고 집단폭행을 하고 폭력조직을 만든다는 것이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인간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것처럼 백안시 당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품행도 방정하고 인격도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는 평가가 오늘의 청소년들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인식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는 각급 모임에서 목에 부목을 댄 것처럼 뻣뻣하고 오만할 수 있고 그 앞에 아들의 성적에 따라 서열화된 어머니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가 아닌지? 인간성함양을 외치고 자율에 따른 교육을 말하는 뒷전으로 강압에 의한 자율학습이 이루어지고 보충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우리의 학교교육이 아닌지? 흘러가는 구름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량학생들의 몫이고 구름이야 흘러가든 말든 교과서나 들여다보아야 모범생이 되는 것이 우리의 청소년들이 아닌지? 신문이나 방송에 학교 폭력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아침저녁 등하교를 시켜주고도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이 자녀 가진 부모들이 아닌지? 학교마다 폭력 학교이고 교실마다 폭력이 횡행하는 뒷골목같이 느껴지는 요즘 차라리 무자식 상팔자를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것인지 끝도 바닥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참으로 우리의 청소년들은 못된 것인지? 근본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우리와는 다른 딴 나라의 별종들이 잘못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인지? 모두가 자신과는 관계없고 자신의 아이, 자기 학교의 학생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의, 이 땅의 청소년임에 틀림이 없다면 그들이 지닌 문제의 근본은 이 사회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들에게서 찾아야할 일이다. 공부가 모든 가치에 앞서는 절대절명의 가치인 것처럼 우격다짐으로 세뇌한 것이 바로 이 땅의 부모들이고 그에 동조한 것이 이 땅의 선생님들이다. 가요주점, 룸살롱에서 포르노 못지 않은 일을 즐기는 부류가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로 돈번 청소년들은 아니다. 이번 포르노 제작의 지침이 되었을 포르노를 청소년에게 보여주거나 공급한 것도 역시 청소년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거들은 이런 때일수록 목소리 높여 요즘 애들 버릇없음을 개탄, 한탄하며 입에 거품을 문다. 공부도 중요하고 대학교도 중요하다. 그리고 요즘처럼 하늘높이 치솟는 교육열을 보면 조만간 우리 나라가 아닌 세계 최고의 대학들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독점적으로 입학할 것만 같다. 우리 나라, 아니 세계 최고명문대학을 나온 것으로 최고의 인간이 된다는 생각을 조장한 것은 바로 우리 기성세대이다. 몇몇 가수나 그룹을 가창력이 아닌 립싱크와 춤실력만으로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도록 한 것도 결코 청소년들이 아니다. 자율학습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율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도 청소년들이 아니다. 그들을 가르쳐야할 기성세대들은 목소리 높여 청소년들을 비난하며 미성년자를 껴안고 오늘도 술을 마실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일으키는 치맛바람이야 새삼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한 편의 포르노, 아니 100편의 포르노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학교마다, 교실마다 폭력이 넘쳐나는 것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걱정되는 것은 두 얼굴을 가진 기성세대들로서는 청소년들을 가르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엇을 보면서 자라도록 말해줄 수 있을지 답답하고 답답한 일이다. 민족이 빛을 찾은 광복절에도 오늘을 밝혀줄 빛 한 올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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