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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8 | [특집]
청소년은 즐거운 삶을 갈망한다·노상우
청소년은 즐거운 삶을 갈망한다·노상우 (2004-02-12 15:51:44)
언젠가 어느 한 신문은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생활패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사화한 적이 있다. “한국의 10대는 8백만명. 운동화에 청바지, 햄버거에 저탄산음료, 레게음악에 전자게임. 이들은 같은 옷에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음악에 맞춰 같은 춤을 춘다. 생활의 취미가 비슷하다 못해 같다. 전세계의 10대는 공간과 시간의 구별이 무의미할 정도로 닮아버렸다. 이제 이 경향은 거대한 새시대 새흐름을 이루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생활모습을 보면 이 기사의 내용은 사실인 것 같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과거순응의 가치와 규범을 온순히 받아들인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기존 문화의 해체와 단시성 유행문화를 그들이 원하는대로 가꾸어 내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양태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멋과 맛을 자유의지의 발산을 통해 공통의 문화적 생활양식, 곧 그들만의 자생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어른들이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향락문화를 만들고 있듯이 우리의 청소년들도 자기 멋을 한껏 즐기기 위해 위와 같은 청소년 자생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자생문화형성의 동인은 ‘즐겁고 멋진 삶’에 대한 충동적 욕구라고 보여진다. 즉,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의 현재의 삶이 ‘재미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더욱이 멋있는 삶도 아닌’ 문화적 저항의식이 잠재하고 있고, 이 잠재성은 새로운 욕구충족의 문화적 생활양식으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 문화형태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자신들의 편이에 의해서, 혹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발로에 의해 청소년에 대한 감성적인 배려없이 오직 ‘성적’의 가치만을 중시하고 그 가치를 지향토록 하는 규범만을 내면화하는 ‘공부문화’에 대한 대항적 성격을 지닌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자. 가정은 청소년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제 가정은 편안하게 쉴 곳도 아니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단지 공부라는 것에만 정신을 팔도록 강제하는 싫증나는 학교와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공부라는 메뉴만이 아빠 엄마에 의해서 제공되고 아이들은 단 하나의 메뉴만을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어쩌다 한 번 TV메뉴를 통해 레게음악에 곁들인 춤을 맛보거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컴퓨터 게임 메뉴를 즐기다 보면 역시 공부라는 메뉴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가정은 오직 하나의 공부메뉴에 자신들의 삶의 전체를 내맡기도록 강제한다. 가정은 결국 재미없는 청소년 공부문화의 창조지일 뿐이다. 그렇다고 학교는 즐거운 곳인가. 학교는 집보다 더 싫은 곳이다. 하루생활의 절반을 보내야 하는 학교라는 곳은 검정글씨로 빽빽히 적혀진 책과 머리를 싸매가며 등수를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기적(?)’인 친구들, 그리고 두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듯한 선생님만이 둘러싸고 있다. 책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무거워지고,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열등감이 생기며, 선생님을 바라보면 숨이 막힌다. 답답해서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그 무서운 하교규칙이 무섭게 노려본다. 결코 즐겁지 않은 학교생활이다. 학교는 가정이 창조한 공부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공장일 뿐이다. 그런데 집과 학교를 나서면 기분이 좋다. 무언가 재미를 줄 것 같은 이곳저곳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다니는 커피숍이나 술집도, 당구장과 전자오락실도, 그리고 비디오 가게문에 걸려있는 남녀의 본능적 모습이나 총 든 사나이들의 멋진 폼이 담긴 사진들의 눈안에 빨려 들어온다. 바로 이곳들이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곳이다. 몇번씩 그곳들을 들락날락 하다보니 이제는 집과 학교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좋아진다. 어른들이 말하는 유해환경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가정과 학교가 공들여 이룩한 공부 문화의 파괴지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런 곳을 단속하고 아이들을 다시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낸다. 다소 긴 부정적 언사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학업문제, 성 혹은 이성문제, 그리고 성격문제 등 요즘 청소년의 고민거리를 감안할 때 우리는 이 모든 문제가 청소년 문화내용의 건조함 내지 결핍현상으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직 즐겁지 않은 공부문화 속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그 자유를 찾아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자신의 이탈된 모습을 보고 당황하거나 고민이 생긴다. 청소년 부적응 문제는 즐거운 생활문화로 해소될 수 잇다. 그 뿐만 아니라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인 예방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문화적 배려를 통해서 가능해진다. 과거의 순응하는 청소년상을 전제한 억압적인 공부문화는 더 이상 교육적이지 못하다. 청소년들의 즐거운 삶의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 교육적 힘을 지닌다. 여기서 즐거운 경험이란 단순히 일시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경험이 아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와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의미있는 경험을 말한다. 이를테면 가족들이나 친구들, 혹은 선생님들과 함께 즐기는 자연체험, 스포츠 활동, 예절수양활동, 예능활동, 과학활동, 장기자랑 등의 경험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자기성장의 여유를 갖게 한다. 또한 루틴화된 일로부터 생긴 피로를 풀고 기분을 전환하여 생활에너지가 재충전된다. 요즘 많은 청소년 단체는 이러한 문화적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이차적인 성격을 지닌다.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삶이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가정과 학교가 즐거운 생활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가 그들로 하여금 즐거운 문화적 삶을 이끌어 줄 때 햄버거, 레게음악, 전자게임 같은 청소년 자생문화는 그들에 의해서 스스로 검증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문화적 진수를 발견하기도 한다. 청소년에게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삶’을 살고자 하는 문화감수성이 내재하고 있다. 이 문화감수성이 각종 문화 내용물을 자기 자신의 느낌으로 수용토록 한다. 가정과 학교가 즐거움을 주지 않을 때 그들은 다른 곳에서 그 즐거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즐거운 집, 재미있는 학교는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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