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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 | [문화저널]
옹기골의 처녀하나, 총각하나
옹기장이 이현배(2004-02-12 16:06:10)
작년 이맘 때였다. 옹기 일을 배워 보겠다고 찾아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처녀 하나, 총각 하나가 손내식구가 되었다. 총각은 충북 음성 사람으로 스물일곱살인데 항해사를 하다 왔다 했다. 꼭 옹기쟁이가 안되더라도 오랜 기간 배타는 일을 하였기에 옹기 일이 육지생활에 도움이 될꺼 같다 했다. 처녀는 경남 마산 사람으로 스물 여섯 살인데 여상을 졸업하고 한 직장에서 칠년동안 근무하다 그만뒀다고 했다. 본래는 긴 머리였고 치마만 입고 살았는데 손내에 올 때 숏커트 머리 꼴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렇게 손내에는 총각 하나, 처녀 하나가 새식구가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네들이 처음 왔을 때 시루나 밥통 같은 푸레그릇을 굽는 연 먹이는 가마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다 짓구서 칸가마 큰걸 짓게 되었다. 그 기초 다듬는 일을 그네들에게 시켰다. 항해사 출신의 총각은 땅파기를 잘했고 수평 자와 길이 자를 잘 다루었다. 경리과 출신의 처녀는 셈을 잘하여 흙벽돌의 쓰임에 요모조모 깔끔하게 잘 대처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몸보다 마음이 더 가기에 더디지만 그런 자세를 이런 사람은 이미 잃었기에 기초 다듬는 일을 굳이 그네들에게 시켰다. 그리고는 내가 붙어 흙벽돌로 몸을 이루며 가마를 사렸다. 그 작업의 처음에는 서먹서먹한 까닭인지 자기 할 일만 하더니 가마를 사리게 되어 보조 노릇을 하게 되면서는 힘이 필요한 일은 총각이, 꾀가 필요한 일은 처녀가 하는 역할 분담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생겼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더니 가마 짓는 일이 끝나 갈 때는 처녀 총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이가 되었다. 먼저 총각이 떠났다. 그리고 나서는 처녀가 생각이 많아졌다. 조용히 불러 이렇게 얘기했다. “두 사람 성향으로 봐서 도회지에서 살기가 쉽겠다. 시골 생활이나 흙일에 대한 동경은 도회지 생활에 능숙한 까닭에 균형감을 갖고 싶은 갈증 같은데서 오는 것 같다. 나중에 일부러 다시 경험 삼아 할 수 없는 일이니 이참에 이 일을 더 알고 떠나는 게 좋겠다. 이 만큼에서 그만두면 미련이 남고 다시 시작할 때 새잽이가 되어 더 많은 댓가를 치뤄야 할 꺼다” 그러겠노라며 며칠을 지나다가 결국은 떠나야겠다고 했다. 충청북도 청주에다 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하여 아내는 꼭 딸 시집보내는 기분 같다며 살림살이에 요긴한 그릇들을 챙겨보냈다. 새집에 창을 크게 두고 창살로 그 큰 면을 나눴다. 그네들이 이미 한 면을 차지했었나 보다. 허리 아픈병으로 누워지내며 창밖 세상을 보다가 문뜩 그네들이 떠오른다. 그네들에게 손내는 무슨 의미일까. 이 사람은 이렇게 이 몸을 하고 있는데 그네들에겐 그냥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그런 곳이었나. 무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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