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9 | [문화저널]
귀신 곡할 소리·최상화
최상화
(2004-02-12 16:06:37)
무덥던 여름날 밤에 할머니로부터 귀신얘기를 듣고는 등골이 오싹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다. 그 얘기에는 달걀귀신,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 귀신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했다. 요즈음도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는 귀신을 소재로 한 납량특집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귀신은 우리의 재미있는 옛날 얘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손님임에 틀림없다.
판소리도 역시 우리의 옛 이야기를 담은 노래일진대 귀신 얘기가 빠질 수 있었겠는가. 판소리 중에 춘향가를 보면 감옥에 갇혀 목에 칼을 찬 춘향이가 쑥대머리(쑥대강이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귀신형용(鬼神形容)을 하고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귀신을 만나는 대목이 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소리꾼은 잔뜩 긴장을 하게 되는데,
...바람은 우르르르 쇄, 도깨비는 회-익 회-익, 밤새 우는 소리는 부-우 부-우, 귀신들은 이리고 가며 흐히 하하, 저리로 가며 이히 이히히이 이히이히히...
이렇듯 귀신의 형상을 판소리적 성음을 통하여 표현하려는 것이 바로 ‘귀곡성’(鬼哭聲)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귀신 모습을 오직 목소리(擬聲語)만으로 표현해야 하고, 또한 그것을 일정한 장단이라는 틀 안에 맞추어 불러야 하기 때문에 귀곡성 대목이 더더욱 어렵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옛 명창인 송흥록이 이 귀곡성을 부르면 귀신들이 나타나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요즈음에도 소리꾼 중에서 귀곡성 대목 만큼은 일부러 무섭고 음산한 장소를 찾아 독공(獨功)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독자에 따라서는 귀신 곡할 소리로 들리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