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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 | [특집]
‘새로운 규제’와 ‘개발’사이의 해법찾기·마목년
마목년 (2004-02-12 16:09:36)
전주에 그럴싸한 문화의 거리 하나쯤 만들어보자는 것은 전주의 오랜 바램이었다. 전주시의 문화거리에 대한 기획에서 언제나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풍남동과 교동 일대의 오랜 한옥지구가 또 한번 홍역을 치렀다. 이곳은 전주 한옥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가능성 높은 전주의 문화적 자산으로 꼽혀왔지만 한편으로는 그 곳에 살아왔던 수많은 지역주민들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시비를 일으키면서 20여년 동안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말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전주시의 입장은 언젠가는 이 지역에 인접한 경기전과 풍남문, 오목대, 향교 등과 연계하여 번듯한 문화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고, 지역주민들은 그 대가로 정상적인 재산권 행사는 물론 심지어 개축과 보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채 낡아가는 한옥안에서 극도로 불편한 생활을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때깔곱던 한옥들은 낡고 볼품없는 ‘빚좋은 개살구’가 되었고, 보존의 효용성에 대한 전주시와 시민들의 회의와 주민들의 민원에 밀려 전주시는 이곳을 6월 10일자로 4종 미관지구(한옥지구)에서 해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전주시는 한옥지구를 해제하는 대신에 도시설계지구로 지정하여 경기전과 오목대, 향교 주변과 연계하여 민속의 거리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즉 그동안의 규제를 풀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일부지역만을 보존하고 역사, 문화도시에 걸맞게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전주시는 이를 위해 경기전과 향교, 오목대 주변 등 2만7천여평을 도시설계지구로 지정하여 보존가치가 없는 가옥은 과감하게 철거하는 한편 보존가치가 있는 한옥은 형태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개발하여 조선시대의 주막과 포목점, 풍물점 등을 재건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경기전과 향교 등 문화재도 보호하고 이미 낙후된 풍남동과 교동을 관광지구, 문화지구로 개발하여 주민들이 20년 동안 보았던 피해를 보상한다는 것이 전주시의 기본 입장이었다. 그러나 전주시의 이같은 계획은 지난 5월말 전주시장이 이곳의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면 유보되고 말았다. 막상 이곳의 주민들이 도시설계지구 지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전주시가 도시설계지구 지정을 추진하면서 실시한 주민공람에서 해당 주민 183세대 가운데 찬성 의견을 제출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도시설계지구의 지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피해의식과 반대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전주시는 그렇기 때문에 도시설계지구의 지정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도시설계지구는 그 동안의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개발개념이어서 지역개발을 촉진하며 궁극적으로는 지역주민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옥지구가 해제되면 당장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주민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이미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거래가 이루어지기 힘들고 여기에 소규모 필지가 많아서 개별적인 건축과 개발이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전주시의 설명이었다. 오히려 이곳이 개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이 지역이 영원히 낙후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전주시의 일치된 견해였다. 여기서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보물 308호로 지정된 풍남문의 경우를 살펴보자. 풍남문은 지난 80년 4억을 들여 증축되었지만 그 역사적 가치에 비해서 시민들로부터 선뜻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뜻하게 단장은 되었지만 주변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현대식 건물들에 묻혀서 사실상 문화재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해버린 것이다. 결국 한옥지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개발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온 경기전이나 오목대, 향교 등도 볼품없는 콘크리트 더미속에 묻혀버릴지 모른다. 결국 문제는 지역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도시행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 셈이다. 지역주민들의 결사적인 반대는 충분히 이해되는 바가 있지만, 새로운 의미에서의 개발과 전주시의 문화거리 조성이라는 명분과 실리를 주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는 과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주시는 지역주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이곳에 대한 개발이 난관에 빠지자 민속거리의 조성계획을 위한 새로운 부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옥지구를 둘러싼 전주시와 주민들의 공방은 궁극적으로는 전주시가 계획하고 있는 문화도시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1차적인 가늠쇠가 되고 있다. 이미 전주시에 문화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역적인 요구와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주시와 지역주민들은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높고 근거가 튼튼한 한옥지구를 떠나서 허허벌판에 완전히 인공적으로 조성되는 민속촌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잇겠는가. 그렇게 건설된 민속촌이나 민속거리가 용인이나 다른 지역의 민속촌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가 다시 한번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서 전북대 채병선 교수(건축과)는 일본의 경우 이미 전통가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개발하고 여기에 상업적인 기능을 부여하여 주민들이 쾌적한 생활을 하고 또 경제적인 혜택도 얻을 수 있는 방식의 지역개발이 이미 일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개발의 방향을 둘러싼 제한된 설계지구의 지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외국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은 지역주민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이미 도시설계지구의 지정이 무산되면서 이곳 한옥지구의 땅값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개발방식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전주시와 지역주민들은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서로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의 개발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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