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9 | [문화저널]
컴퓨터 언어의 고독·정영원
정영원
(2004-02-12 16:12:06)
우리는 우리들의 의사표현을 몸짓이나 표정으로 전달하거나 혹은 상형문자 등과 같은 기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음성을 통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표현 방식은 사실 지금 거의 모두 중요하게 그리고 거의 같은 양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좀더 정확하고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그 방법을 개발해 왔고 지금도 개발되고 잇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컴퓨터의 기록 방식이나 컴퓨터의 작동에 활용되는 의사전달 방식을 새로운 의사표현의 방식 즉 언어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표현 방식은 언어학자들의 깊은 관심 말고도 평범한 우리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문서 작성 때 많이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손으로 쓰는 문서에서는 줄을 긋고 칸을 만들어, 내용을 채울 때 쓰기도 쉽고 모양도 깔끔하게 하였으며 보기도 쉽게 하였다. 물론 줄을 긋는 일이 문서작업에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는 좀 달리 생각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줄긋기가 컴퓨터에서는 매우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요소라는 점이다. 글 한줄보다 선 한줄 긋는 것이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 뿐아니라 인쇄에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컴퓨터가 달라지면 화면상에서 선은 사라지고 아주 괴상한 글씨들로 선의 자리를 채우는 가하면 같은 프린터로 인쇄를 하는데도 선이 화면에서 본 것처럼 잘못되어가 곱게 맞추어놓은 선들이 들쭉날쭉 보기싫게 인쇄되기도 한다. 이렇듯 컴퓨터에 있어서 줄긋기는 매우 큰 애물단지이며 특히 초보자들에겐 컴퓨터 사용을 꺼리게까지 하는 큰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찮은 요소에 우리는 이미 잘 적응해 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이제는 대부분 이러한 이점이 없고 불편한 선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의 다양한 글자 모양과 뛰어난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문서를 더욱 보기 좋고 깔끔하게 만들 수 있도록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컴퓨터의 출현으로 달라지고 있는 다른 많은 변화들에 비해 아주 극히 작은 예이다. 좀더 예를 든다면 도서내용이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할 필요없이 컴퓨터 통신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고 또다시 베껴 쓸 것 없이 바로 인용할 수 있으며, 논문이나 소설 등을 수정하거나 의견을 듣기 위해 두터운 원고 뭉치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고, 이제는 결재까지도 컴퓨터로 전자결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제는 원고나 줄이 잘 그어진 문서는 마치 언어가 있기 전의 몸짓과 같은 둔한 의사전달 매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컴퓨터를 남은 인생에 별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차가운 기계로 보아버린다면, 아마 그 사람은 남은 여생동안 이 시대를 꽉 메운 이러한 기계들로부터 고독을 느끼지 않는 특별한 수련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 시대는 우리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언어가 컴퓨터 언어의 세계로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