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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 | [문화칼럼]
문화일꾼들의 눈물겨운 작업에 눈을 돌려라
글·김인철 전 온다라 미술관장 (2004-02-12 16:34:52)
이제 곧 전북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기공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지방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오랜 숙원사업인 전북예술회관 건립은 10여년전 당시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첫삽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1982년에 개관한 현재의 예술회관은 지역 예술인들의 오랜 바램과 노력으로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연지 15년 만에 철저히 외면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미 개관 당시부터 1,2층 전시장은 전시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이 돌출되어 있고 난방용 라지에터도 모두 노출되어 있어 작품 전시와 관람에 불편을 주었고, 공연장은 3층에 배치하여 각종 무대 설치물들을 일일이 사람이 직접 옮겨 나르도록 하는 불편을 주었다. 또한 녹지 휴식공간의 배려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해 이용자들의 원성과 불만이 높았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서 지었다는 전문 문화공간이 비전문적이고 반문화적인 공간이 되고 말았으니, 그 황당한 불편함에는 누구나 할것없이 고개를 젓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문화 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크고 작은 전시며 공연들을 치러왔다. 그런 면에서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근본과제인 문화예술회관이 마련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문화예술인 뿐만아니라 도민 모두의 기쁨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새 문화예술회관은 약 3만 5천평의 부지에 925억원의 예산으로 연건평 9,000평의 대공연장(2,200석), 소공연장(700석), 야외공연장(1,500석), 국악당, 국제회의장, 미술관, 야외조각공원 등이 들어서는 대형시설이다. 다양한 기능과 풍성한 용도로 설계되고, 형식적인 규모보다는 문화예술인들의 잠재능력 표출과 창작활동 고취에 중점을 두고, 관료적이기보다는 시민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도록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적 비전의 21세기를 지향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전북도와 각 시군은 미래의 가장 중요한 산업으로 문화예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대중의 문화 참여와 향수를 확대하는 문화복지 실천 차원에서 과거와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고 있고 문화예술의 산업화, 국제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다양한 발전계획도 세우고 있다. 판소리의 세계화, 서예 비엔날레, 문화특구 개발, 영상 산업단지 개발, 각종 축제, 조각공원 건립 등 갖가지 아이디어와 대규모 사업들이 급작스럽게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새 문화예술회관의 경우 그동안 전북도가 회관 건립을 위한 여론을 수렴하고 도내 예술인들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위치 선정과 규모, 기능 시설면에서 현 예술회관의 문제점을 거울삼아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그러나 예술회관이 과거와 같이 전문인력과 프로그램 부족으로 단순히 장소와 시설대영의 기능에 머문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예산 투자의 비효율과 함께 매년 부담해야 할 막대한 운영비로 인해 지방재정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지난 해 완공된 삼성문화회관과 같이 대공연장 무대에 올릴만한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물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서울의 전문 기획사들에 의해 상업적 흥행에 바탕을 둔 작품의 공연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그나마 힘겹게 노력해 오던 지역의 문화집단들이 위축되는 폐해가 심히 우려된다. 또 소극장 중심의 다양한 작품의 생산이 대극장 공연에 치우쳐서 년간 생산될 수 있는 작품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공연장의 연간 이용률의 침체로 이어진다. 이런 이유로 대규모의 새 예술회관이 완공되는 2000년에는 지역문화의 기형적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지역조건으로 보았을 때 관이 주도하는 대형 문화공간의 확충에 치중하는 문화진흥정책보다는 대중의 생활 공간에 밀접하게 맞닿을 수 있는 문화 소외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문화공간을 다각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주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다. 이런 소규모 공간을 중심으로한 전문 문화집단의 육성과 지원에 눈을 돌린다면 적은 예산으로도 전북문화예술 진흥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진흥을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고있는 전북도나 전주시의 경우 이제 지역에 있는 기포 문화집단에 눈을 돌려볼때다. 극단 노래패, 풍물패, 미술패, 춤패, 문화기획패, 출판운동 등..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어려운 여건들을 감수하면서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다. 각 집단과 개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작은 공간이나마 꾸려보려고 혼신의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근래에 예기치 못한 화재로 타버린 소극장을 복구하려는 한 극단은 예술인들 개인 생계의 어려움은 돌보지 않은 채 예술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으로 빚돈까지 내어가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공간 마련에 고군분투하지 않았는가! 최근에 문은 연 한 아동극 전용 극장을 보자. 금암동에 있는 작은 건물 지하에 30여평 남짓한 극장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그곳이 60만이 사는 예향 전주 최초의 어린이 전용극장이다. 그 부끄러움이라니.. 925억의 위용에 넘치는 대형 문화예술회관 건립정책의 이면에는 이렇게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문화의 균등한 나눔을 지향하는 참 문화를 일구려는 문화 일꾼들의 눈물겨운 피와 땀이 얼룩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비단 어느 한 분야의 특수한 예가 아니다. 우리지역에 뿌리박고 노력하는 여러문화 사업관계자, 문화예술집단들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실정들이다.이들의 문화적 생산물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무엇으로 문예회관의 문화적 가치 창출이 가능해 지겠는가! 알찬 소프트 웨어의 개발과 육성없는 고성능 하이웨어의 거대한 텅 빈 발전과 무엇이 다를까? 오늘날 ‘문화적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문화정책 이념의 핵심은 ‘공동체’와 ‘자율적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다. 문화적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참여, 문화적 생산과 분배의 소수 독점을 막기위한 탈중심화, 그리고 문화적 다원성의 보장 등 상호 연관된 세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만 문화 예술정책이 균등분배를 통한 문화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인철 / 전 온다라 미술관장으로 전북지역의 미술문화 정착과 발전에 묵묵히 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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