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0 | [특집]
지역문화 외면하면 명함도 못내민다
글·김동민 한일신학대 교수·신문방송학과
(2004-02-12 16:45:37)
기본적으로 상업방송인데다가 SBS네트워크 구실을 주로 하게 될 전주방송에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체편성비율이 10%내외를 맴돌고 있을뿐더러 그나마도 적은 예산에 좋은 프로그램 제작에 한계가 있는 KBS나 MBC를 생각할 때, 20%를 상회하는 자체 편성에 지역민의 방송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적지않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상업방송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상업방송이라고 하더라도 영국의 ITV처럼 공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다. 국민의 공유재산인 전파를 사기업이 상업적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의 부당함은 물론이요, 그에 따라 프로그램의 질이 저질화 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공민영체제에서는 공영방송까지 시청률경쟁에 끌어들여 타락시킨다.
그래서 나는 1990년 정부가 채널선택권의 확대라는 가당치않은 명분으로 밀어부쳤던 상업방송의 도입과 그를 합리화 해줄 방송법의 개악에 반대하였다. 당시 방송노조와 시민단체의 반대 투쟁은 치열했다. 특히 KBS 노동자들은 한달간의 파업을 단행하며 투쟁을 주도하였다. 그 4월투쟁은 경찰의 진압으로 막을 내리고 15명의 동지들이 투옥되거나 수배를 당해야 했다. 해고당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정부와 민자당은 상업방송의 도입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 시켰다. SBS는 그같은 희생과 진통을 겪으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SBS 프로그램은 재미있다. 그러나 유익하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좋은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나쁜’프로그램은 재미있다. 그 ‘재미’에 끌려 사람들은 SBS를 많이 보았다. 그러자 지역민들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SBS는 수도권을 가 시청권으로 하는 지역방송이기 때문에 그밖의 지역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위 지역민방의 설립이 추진되고 SBS는 이를 전국 채널화 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결국 1차에 이어 2차로 지역민방이 허가되고 9월 27일의 전주방송 개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나는 물론 지역민방의설립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있었다. SBS라는 독소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민들은 시청료를 추가로 내지 않고도 공짜(사실은 공짜가 아님)로 볼수 있는 SBS의 시청을 원했고 지역민방의 설립에도 호의적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같은 지역민들의정서를 올바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중앙방송의 중계소 역할에 그치고 있는 KBS와 MBC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새로운 방송에 대한 기대라고 해석한다. 단순히 SBS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의 정서와 여론과 문화를 대변해주는 방송을 원하고있다는 것이다. JTV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SBS는 ‘나쁜’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보았을 뿐 아니라 뉴스의 공정성에도 해악을 끼쳐왔다. 예를 들어 1시간 빠른 SBS뉴스에서 대통령 동정을 몇 꼭지 방송했느냐가 KBS와 MBC의 9시 뉴스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이런 양적인 불균형 말고도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면서 선거때는 불공정 편파 방송의 극치를 달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JTV는 이같은 SBS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좋은 프로그램과 공정한 보도로 지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우선 SBS프로그램 중에서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을 구별하여 나쁜 프로그램으로 분류된 시간에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성의가 요구된다. 이는 경영과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당장에 전면적으로 시행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본 방침 하에 장기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의편성으로 시청률을 확보하겠다는 원칙은 있어야겠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체 광고 수입으로 이어져 경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SBS 저질 프로그램의 중계방송사라는 인식이 지역민들 사이에 형성된다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SBS를 보게 되면 저질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많은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대중문화의 저질화를 부추기는 촉매제들이다. 쓰레기 양키문화와 왜색 문화의 주요 보급로이기도 하다. 거기에서는 우리 문화의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 문화를 주변화 시키고 초라하게 만든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은 명함도 못내민다. JTV는 그같은 나쁜 프로그램들을 밀어내고 지역민의 기대와 정서에 부합하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다.
뉴스도 마찬가지이다. SBS 뉴스의 편파성은 편파보도의 원조격인 KBS를 능가한다. 새로운 원조가 등장한 것이다. 아마 우리 지역 시청자들은 찬여적인 불공정 편파보도에 강한 거부감을 보일 것이다. JTV는 이 점에 유념하여 SBS뉴스의 중계시간을 대폭 줄여 나머지 시간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본의는 아닐 지라도 JTV가 편파보도의 중계역할을 지속하게 된다면 지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방송은 결코 개인의 사유물일수 없다. 이윤추구의 대상일 수도 없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이라도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최소한 5년정도는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투자없이는 제작능력의 향상을 기할수 없으며, 좋은 프로그램으로 지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지역방송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김동민 / 55년 옥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언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정책위원과 전주시민회 자문위원, 국민주 방송설립 추진위원회 정책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언론법제의 이론과 현실』이 있고 번역서로는 『자본주의 TV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현재 『정보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문을 준비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