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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 | [서평]
당장 돈이 된다고 둥지속의 알을 꺼내려는가! -김환기 교수의 『지역개발과 환경개발』-
글ㆍ이진영 문화저널 편집위원, 전북대 강사·사학과 (2004-02-17 11:16:05)
출현 이래로 인간은, 자연에 대해 경외와 도전이라는 두가지 태도를 취해왔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에 두려워했고 살아야 했기에 도전했다(전자는 종교를 후자는 과학을 낳았다). 이 관계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금세기 이래, 그러니까 아주 짧은 시간에 그 균형과 조화는 깨졌고 경외보다 도전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이제 인간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生存) 자연에 도전하지 않는다. 보다 더 누리려는 인간의 이기(利己)를 위해 자연을 송두리째 파헤치고 바꾼다. 누구나 알 듯이 그 결과는 ‘인간의 생존 위험’으로 되돌아왔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이상 그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래서 지금, 인간은 자연에 다시 관심을 기울인다. 한데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고민은 ‘경외와 도전’이 아니라 ‘개발과 보존’이다. 자연은 인간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것도 자연 자체로서의 보호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환경으로서의 보존 대상으로. 「후손에게 빌려쓰는 땅」, 「물과 미래의 전쟁」,「지역개발의 득과 실」등 3부 34개 소주제로 구성된 『지역개발과 환경 보존』은, 개발과 보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들어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풀어갔다. 그 사례는 로마인의 납남용ㆍ스위스의 고속도로 페인트ㆍ미국 괌의 뱀 문제 등 말 그대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것이며, 수돗물ㆍ지하수ㆍ쓰레기ㆍ건전지 등 우리 일상 생활의 소재를 망라한 것이다. 그래서 그 사례 하나하나가 우선 쉽고 재미있다. 하지만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아니다. 이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수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독특한 환경은 한번 파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하나를 파괴하면 연쇄사슬이 깨지고 인간이 최종적인 피해자가 된다. 우선 당장 돈이 된다고 둥지 속의 알마저 꺼내다 팔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후손으로부터 자연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등 환경에 관해 명심해야 할 말을 쏟아놓고 있다. 자연질서를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일단 엄중히 경고한 셈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무조건적 환경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환경보존과 똑같은 무게로 개발을 중시한다. 우리의 국토는 언제든지 누군가에 의해 개발될 수 밖에 없으며, 후손 못지않게 현재 우리의 삶이 중요한 이상 개발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발의 정당성과 현실성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없이 막연히 몇마디 구호나 단순한 의욕만 가지고 환경 보존의 문제를 풀어가려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무개발정책이 환경보존의 대안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보존과 개발에 관한 우리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모든 창을 막는 방패와 모든 방패를 뚫는 창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창과 방패와 싸우는 일은 얼마나 쉬운일인가? 고민은 이 둘이 맞닥뜨릴 때 생긴다. 보존과 개발이 모두 인정된다면, 이 ‘모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 모순을 풀어주는 대안이 중요한데, 이 책은 대안 제시면에서 관심을 끈다. 저자는 보존과 개발의 양쪽 가치를 인정한 다음, 이의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다. 개발할 것이라면, 보존과 개발의 득실을 환경에 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식위에 판단하고 대안을 세우라고 말한다. 환경을 제대로 알 때, 환경을 보존하는 가운데 그에 맞는 개발을 할 수 있으며, 개발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와 같은 자세로 우리지역에서 진행되는 현안 개발사업들을 면밀히 진단한 다음, ‘갯지렁이를 살려야 어장을 살린다. 때로는 골프장 개설이 더 적은 공해와 더 많은 이익을 줄 수도 있다. 용담호의 수질을 지키지 않으면 댐을 만들기 전보다 더 많이 잃는다. 첨단산업단지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충고와 대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보존과 개발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상식, 편견, 무지를 일깨워주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다. 환경보존과 지역개발이라는 ‘모순’된 문제를 우리환경과 생태계 특성에 초점을 두고 풀어가는 가운데 적절한 개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지자체 출범이후 경쟁적으로 개발을 계획하는 현실에서, 환경보존을 아우를 수 있는 개발을 추진하는데 지침서가 될만하다. 다만 개발보다는 환경보존이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을 준다는 관점과 사례가 보강되었더라면 하는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환경이 문제다”고 말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개발이 문제다. 보존 후 개발이지 개발 후 보존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너무 선선히 개발의 정당성을 전제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어릴적 감동깊게 보았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떠올랐다. ‘사과나무와 한 아이가 있었다. 나무는 아이에게 놀이터이자 벗이었다. 아이가 성장하자 나무는 열매를 내주었고, 가장이 된 그에게 몸통마저 아낌없이 내주었다. 사과나무의 열매와 몸통은 그의 삶을 내내 지탱해 주었다. 노년을 맞아 찾아온 그에게, 나무는 그루터기를 휴식처로 내주며 변함없는 사랑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만약 이 글의 작가가 지금 똑같은 소재로 글을 쓴다면, 그는 아직도 자연의 베품을 찬미하고 자연과 인간의 잔잔한 우정을 그릴까? 혹시 노년의 다정함에서 이야기를 맺지 않고,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나무의 뿌리마저 파헤쳐 버렸다고 덧붙인 다음, 「송두리째 빼앗는 인간」이라는 제목을 달지는 않을까? 그리하여 여전히 아낌없이 베푸는 자연의 은혜를 무한한 파괴로 갚는 인간을 조롱하지는 않을까?’ 하는데로 이어진다. 아론 생각이 맴도는 것은, 앞으로도 자연은 그 자체로서 보호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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