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2 | [문화저널]
전라도 향취를 그리는 뜨거운 ‘필봉’
글·이종원 완산고 교사
이종원 / 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나왔다. 지난 (2004-02-17 13:41:40)
하반영 화백의 작업실은 어느 박물관과 흡사하다. 거창하게 진열대를 갖추어 꾸며낸 듯한 모습은 아니지만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품들이 규모있게 널려있다. 정겹기조차 하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작품들이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강렬하게 느껴져서 화가 하반영의 작은 체구를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다.
찾아온 사람이 누구이든, 반기는 모습은 흡사 어린애같이 천진(?)하기도 하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외과의사가 흐뭇하게 술잔을 대하듯, 찾아오는 손님이 그리 반가울까? 시세담을 즐기는 친구들이나, 후배 화가들 모두 그의 자상한 기억력에 놀라기도 하고, 해박하기까지한 해학을 입담좋게 늘어놓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후일 그리워하게 하기도 한다.
전북이 낳은 서양화가 하면 하반영씨의 작업실에는 굳이 서양화 중의 하나에만 얽매이지 않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한꺼번에 대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이라 할 「비자 없는 나그네」, 「평화」, 「한 두름」, 「도자기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각종의 꽃들」이 어우러져서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작업실을 조성한다.
팔십 노구인데도 전혀 연세를 짐작할 수 없으리만치 작품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작업실에는 생기마저 감도는 실험이 여기 저기에 진열되여 있다. 작품 마다에 예술의 혼이 살아오른다. 서양화가이니 서양화가 주가 되지만 평소에 좌우명으로써 제작한 서예 작품이 특이한 흑과백의 조화를 보여준다.
장르를 초월한 예술의 열정은 어린 시절의 핍박 속에서 체험한 민족의 모습을 담아내는가 하면, 6.25의 비극을 가슴 구석구석에서 잊지 말자는 듯이, 피난민의 행렬 또한 가슴을 적신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젊음이 빚어낸 예술 혼이 살아 움직이는 작업이다.
젊은 시절 연극, 영화에 대한 열망부터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일, 만주 기행에 이르기까지를 줄줄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으로 오르게 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특유의 기억력으로 휘어잡아 이끄는 화술의 친근미는 천진한 천성 탓일까? 스승이신 김영창 선생의 이야기부터 거의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는 작가들까지 언어로 쓰는 화단 역사를 풀어 놓을때는 새로운 인간미가 스며옴을 느낀다.
자신의 업적 중 전주 일요화가회에 대해 창설담, 회고담 부분에서는 침을 튀기기도 해가며, 특유의 흐느낌마저 담긴 어조에 눈시울을 적셔가며 애정표현을 한다.
팔십 고령인데도 어쩌면 그렇게도 꼿꼿하시며 당당하신가, 안경도 쓰지 않으시고 신문을 보신다니 건강을 타고 나섰는가 보다고 건네는 말에 선뜻 대꾸하기를 작품과 더불어 산 인생이니, 눈이 쉴 사이 없이 색채를 분석하고 깊이를 느끼기 위해 명도를 고르느라 늙을 사이가 없단다. 사물의 형체가 자신의 눈을 통과하여 가슴을 적시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는 동안 자신의 눈과 마음은 항상 젊어 있어야지 않겠느냐라는 투다. 그러나 다정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지울 수 없어 보이는데, 줄무늬 점퍼 차림에 눌러쓴 모자로 단장된 모습은 50대 장년을 의심케 한다. 말씀 중에 하도 ‘일요화가회’의 회고에 감정을 삭이기에 또 한 번 묻기로 대답이 청산 유수다. 이 또한 그림을 애호하는 사람들에게 작품 창조를 가르쳐 미술 인구를 확장해 취미의 안목을 넘어서게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학교 수업에서 미처 발굴되지 못했던 숨어 있는 숨어있는 천재를 발굴해 내고 싶단다. 그러면서 제자 자랑과 아울러,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와 열정만으로도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지론이다.
일제 강점기하 당시의 서양화가는 가장 현대적 문화 개념으로 이해되던 우리 현실에서 1937년 작품 「나팔꽃」으로 최고상을 수상한 이후 예술인의 ‘끼’는 더욱 타올라 예술의 각종 장르 - 연극, 영화 등- 보폭을 넓혀 나갔지만 결국 최종 예술종착역은 화가 하반영인 셈이다.
몇차례 ‘가출’의 기행이 진행될 때마다 한 켠씩 쌓아올린 숫자보다 몇배의 찬사가 울릴 것이다.
붓 서너 자루 들고 회한을 삭이던, 그림 세계로의 출가의 기행마저 감추려 들지 않는다. 물론 진실한 예술인, ‘예술’만을 위한 ‘삶의정진’ 탓이었을 거란다.
그런 탓인지 주변에는 늘 죽마지우(竹馬之友)같이 대하는 새까만 후배 화가들이 즐비하여 우정의 양 또한 그득하다. 그것은 연 20회 전시회를 가져온 ‘삼인전’의 형태로 참사랑이 가득한 우정의 늪을 짓는다.
현재의 안착에 만족하지 않는 작가로서의 실험정신을 끊임없이 구가하는 것은 전북 화단의 모범이 되지 않으랴 싶다.
항상 식지 않는 열정으로, 새로운 감동으로 한국적 정감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에서 지나 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특히 「비자없는 나그네」에서는 우리 민족 염원인 통일의 의지가 듬뿍 느껴지기도 한다.
원색적인 인간의 감성을 속이지 않는 천성탓인지 직설적으로 표현하여 그 감정까지도 화폭에서 그윽한 향기와미소를 머금게 한다. 또한 한국적이기도 한 「십장생」에서는 보편적인 인간 삶의 의지가 확연하다. 잔 정에서부터 뭉텅이 정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천성이 내비치며 특이한 예술가로서의 진정이 솟아 오른다. 작업실 여기저기에서 볼수 잇는 후배들의작품을 보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제 햇병아리(?) 첫 전시장마다에서는 용기와 의욕의신장을 위해서 사주어야 한다며 구입한 작품들이 작은 미술관을 방불케한다.
작가로서의 영화로움이나 성취욕도 중요하지만 애타게 갖고 싶어허기진 미술 작품 애호가에게는 분신처럼 아끼는 작품을 선뜻 안기기도 하는 아량 또한 특유의 천성이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불우 이웃돕기 자선전의 횟수만도 열 손가락 꼽기에 분주할 지경이다. 어린시절, 어려운 시대의 산물이기도한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이 생각될 때마다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의 자세를 보인다.
한자(漢字)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글자는 ‘좋을 호(好)’, 호(好)자의 해학에서 부드러운 ‘평화’의 산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정자(精子)처럼 줄지은 인간의 행렬을 그득하게 춤추게 하는 작품이 탄생된 듯 싶다.
세상에 널려 있는 사물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으로 될 수 없는 작품속에서는 아름다운 부분이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대가의 설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미감을 감지한다. 그의 대가적 면모에 감히 부족한 필봉으로 무슨 보탬을 주겠는가마는 작품에서 한국적 정서(민중정서)로서의 한(限)의 세계를 구석구석에서 용솟음치게 한다는 필자 나름대로의주장을 펴고싶다.
베토벤이 남긴 몇 마디가 떠오른다. 그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비쳐진다. 가난한 사람들, 뭔가 그리움이 가득찬 가슴을 가진 사람들, 마음이 비어서 항상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달래주는 하반영 화백은 그들을 자신의 고통으로 감싸안는다.
예술세계는 자연의 질서가운데 부분적 특성을 통해 본질을 강조하고, 일상적인 인생을 거부할 수 있다. 그는 그의 기질로 자연을 해석하고 견딜 수 없는 고독을 술로 푸는 작가인성 싶다.
예술은 고독과의 투쟁이란다. 예술은 자신을 위해 단순히 위로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고독과의 싸움일뿐, 오직 작품속에서 투쟁의 한표현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작품속에는 늘 감추어진 인생의 환희가 화사하게 간직되어 있다.
그래서 하반영 화백의 술은 항상 강이되어 흐른다. 끝없이 짓눌러 오는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술’이란 강에 자신을 띄운다. 어느 한 곳에 정박하여 닻을 내린 채 쉬기를 거부하는 예술가로서 망망대해를 향해 쉴 사이 없이 노를 젓는다. 그는 특별한 장르나 표현 양식을 거부한채 ‘예술’이라는 동일 장르를 형성하며 화폭속에 자신의 혼을 담아 낼 것이다.
영원한 고향 전주! 전라도를 사랑하기에 선조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남은 생애를 다바쳐 전라도의 향취를 그려 내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