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 | [문화저널]
【 전북의 땅과 문화, 사람들 】
갑오년 역사 발굴의 선구자
향토사학자 최현식 옹
김회경 기자(2004-02-17 14:56:02)
향토사학자이자 전문화원장인 최현식(78) 옹.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인물에서부터 역사적 전개과정, 동학농민군의 정신, 의의, 유적지 등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그칠 줄 모른다. 그만큼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지금도 온통 동학농민혁명뿐이다.
그가 동학농민혁명을 조사하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 여전히 동학비도들의 '동학난'으로만 인식되던 시절에 그는 갑오년 동학농민군의 함성을 되살리는 일에 나섰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1963년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건립되고 1968년 기념사업회가 창립되면서 동학농민혁명과 인연을 맺은 그는, 그때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단다. 그마저도 그때에는 정읍에서 일어났던 농민군의 항쟁으로만 동학농민혁명을 알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것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캐도 캐도 한정이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캐다보면 정읍이나 전라도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황해도 이남 모든 곳에서 일어난 혁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갑오년의 역사가 '동학난'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는 그의 말엔 역사바로세우기가 자칫 지역이기주의의 전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담겨있다. 아직도 조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기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동학농민혁명이 다시 '국지적인' 혁명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그래서 8년동안의 문화원장을 끝내고, 이제 인생을 되돌아보며 편안히 쉴 수도 있는 그가 오늘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를 붙잡고 있다. /장세길 기자
으뜸이었던 옛 명성을 뒤살린다
정읍농악보존회
공무원, 교사 그리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등 정읍농악보존회를 꾸려가는 이들은 다양하다. 20대에서 60대까지 나이차도 크지만 쇠채나 장구채를 잡아본 이력도 2년에서 10여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읍농악이 울리는 곳에선 나이차도 경력차도 직업도 느낄 수 없다. 한때 우도농악을 대표했던 정읍농악의 가락앞에서 그들은 그저 '신명'을 느끼는 장구잡이요, 쇠잡이인 것이다.
1994년 꾸려진 정읍농악보존회는 광복 직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연거푸 2회 수상한 명성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단체다. 그때 대통령상을 수상한 정읍농악의 중시조격인 이봉문 선생과 그의 가락을 이어받은 유남영 선생의 풍물을 고스란히 이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읍농악이 이렇게 한때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입암면 대흥리에 본부가 있었던 6백만 신도의 보천교에서 풍물을 수용, 적극 권장했기 때문"이라고 향토사학자 김재영씨는 설명한다. 정읍풍물굿은 바로 이때에 체제가 갖추어졌다고 할만큼 전성기를 이룬 것이다. 한때 흩어졌던 우도굿의 명인들이 정부수립 직후 전국농악대회를 위해 당시 거점지역이던 정읍에 모인 것도 정읍농악이 명성을 날린 이유중의 하나다.
보존회의 보존회 단장은 유지화 선생. 도 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돼 있다. 열다섯살부터 풍물을 시작한 그는 40여년동안 동악농악단원 생활을 하면서 전북여성농악단, 호남여성농악단, 전주아리랑농악단, 유지화농악단, 충효국악예술단 등을 운영한 말 그대로 농악과 평생을 살아온 명인이다. /장세길 기자
"지역사가 바로 잡혀야 역사가 튼실해진다"
지역사 연구자 김재영 교사
10년 넘게 지역사를 연구해온 정주고 김재영 교사. 본업이 학교 교사인지라 주로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정읍 곳곳으로 발품을 팔러 다닌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고향 제대로 보기', 고향에 대한 가감없는 애정이다.
그는 "지역사를 한다"고 말하지, 향토사를 공부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지역사와 향토사, 그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바로 고향을 보는 시각이나 자세와 연결돼 있다는 생각에서다.
"향토사는 그 어감부터 은근히 애향심을 종용하기 때문에 아전인수적 해석, 자의적 해석이라는 오류를 낳기 쉽습니다. 내 고장을 아끼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보고, 올바로 해석해야죠. 그래서 저는 향토사라고 안하고 지역사라고 합니다."
지역사에 대한 연구는 순전히 자신의 사비를 털고 시간을 쪼개어 온 '개인적 선택'이었다. 한국신종교학회와 전통문화연구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때 그때 학회에서 주어진 연구 주제가 바로 정읍의 다양한 지역사를 살피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내고장 역사의 숨결(96)』『샘솟는 땅, 정읍의 문화(98)』등 정읍의 전반적인 역사와 유래를 책으로 엮고, 지금은 정읍의 신종교 발원, 천주교 수용의 추이 등을 좇고 있지만, 지역사를 함께 연구하는 사람이 드물어 학문적인 외로움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역사를 공부한 전문연구자들이 지역사 연구에는 전혀 뛰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함께 학문적 성과를 나누고 고충을 나눌만한 동지가 없어 안타깝죠. 지역사 연구는 참 외로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사는 나무 줄기와도 같은 겁니다. 지역사가 바로 잡혀야 한 나라의 역사도 튼실해 진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위의 인식들이 크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죠."
때문에 그의 연구분야는 '정읍사'라는 문학장르에서부터 종교, 건축물, 민속, 동학 등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방대해지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을 오히려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털어놓는다.
"지역사 연구자는 만물박사가 아니거든요. 각 분야별로 상설위원을 두고 전문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10년쯤 후에는 지역사가 빛을 볼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정읍에 얽힌 지명의 유래와 의미, 정읍사 가요와 신종교 등을 열뜬 모습으로 설명하는 김재영 교사. 그 속에서 그의 신념이 언뜻 언뜻 비쳐진다. / 김회경 기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 신문으로 말해요"
신문동아리 '정읍 I들'
정읍시 시기동 '새교육 공동체 시민모임' 사무실 한켠. 훌쩍 큰 키의 다섯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부터 왁자하게 모여들었다.
수업이니 학원이니 꽉 짜인 공부에 일요일 늦잠이 그리울법도 한데, 긴 탁자앞에 마주 앉은 아이들은 해사한 얼굴로 조용한 일요일 아침을 흔들어 놓는다.
청소년 신문을 만드는 '정읍 I들'. 하승희(정읍여고 1) 김경희(정읍여고 1) 이승호(호남고 1) 우창우(호남고 1) 박상용(호남고 1) 권순오(정일여중 3) 주은영(정일여중 3) 은경진(정일여중 3). 이 여덟명의 아이들이 학기에 한 번 네면의 타블로이드판을 채워간다.
1년전 정읍시 교육NGO 단체인 새교육공동체의 글쓰기 동아리 회원들이 '갈 곳 없는 청소년 실태'를 조사하다, "기왕이면 신문을 만들어 배포해 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이 '정읍 I들'을 태동시켰다.
현재는 1천부 정도를 찍어 각 학교와 청소년 수련관에 배포하고 있다. 비용은 새교육공동체가 보조하고 자신들도 조금씩 자비를 털고 있다. 일요일 모임은 다음 신문을 위한 기획 회의였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신문을 통해 스스로 책임감과 사회성을 배워가고 있었다.
"공부 때문에 부모님들 걱정이 없진 않지만, 사실 큰 지장은 없어요. 그리고 기왕 시작한 일인데 책임감 갖고 열심히 해야죠.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청소년 문화나 인권에 대해서 한 번더 관심을 갖게 되고, 회의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도 함께 조절해 나가고... 글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구요."
'정읍 I들'은 두발자유화에서부터 인터넷 문화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선생님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균형있게 싣고 있다. 마냥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제법 의젓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어른들의 시각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각 학교 동아리반 탐방도 가고, 선생님과 부모님에 대한 불만도 독자 투고를 통해 담고 있다.
아직 기사로서의 완성도(?)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정읍 최초의 신문동아리라는 자부심과 책임감만은 충천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할 일'을 알고 있다.
"I들이 좀더 발전해서 진정한 청소년 발언대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들도 고2, 고3 되면 후배들한테 물려줘야 하는데 사실 걱정이에요. 오늘도 후배녀석 세명만 아직 안나왔잖아요. 빨리 군기를 잡아야 되는데..."
아이들은 농담 반, 진담 반 걱정을 늘어놓으며 한바탕 웃어재낀다. 신문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오는 선생님들이 있어 힘도 나지만, 이것 저것 학생들의 생각이 틀렸다고만 지적하는 '고지식한' 선생님들도 있다며, 또 한 번 함박 웃음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