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문화와사람]
'판소리 DDR'을 꿈꾸는 별난 공무원
판소리 연구가 김용근씨(2004-02-19 10:53:15)
씩씩한 남성의 소리, 동편제의 탯자락이 되어온 남원. 그 곳에 '판소리의 디지털화'라는 다소 엉뚱한 주장을 풀어놓는 이가 있다.
남원 주천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용근(42)씨. 전통에 대한 현대화 작업을 '디지털'이라는 초현대적 개념으로 끌어와 지역민의 미래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그가 얘기하는 '판소리 디지털화'의 핵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판소리 연구는 20여년을 이어온 실로 끈질기고도 집요한 것이었다. 그의 연구 분야는 단순히 발생학이나 계보학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판소리 안에는 한국의 집약된 문화와 미래가 있다"는 것이 판소리에 대한 그의 남다른 지론이자 놓을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향한 판소리', 오랜 시간과 단계를 거치며 숱한 고생과 아픔을 이기게 한 힘이 바로 그 속에 있다.
"남원 토박이로서 남원이란 도시가 오랜 세월 후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인식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남원의 경쟁력은 뭐고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때 혼자서 설문 6백부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꼽은건 단연 '판소리'였죠."
그때부터 그는 지리산 판소리 유적지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공무원인 그에게 시간은 금쪽같은 것이었고, 순전히 발품을 팔아가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고스란히 판소리 연구에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동편제 판소리 답사기』를 비롯해 『판소리 사전』 『주천고을 천년의 발자취』등 모두 5권의 책을 펴냈다. 그에겐 모두 소중한 땀의 결실이지만, 특히 8년여의 시간을 투자해 완성한 『판소리 사전』은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작업이자 가슴 뿌듯한 결과물이다.
"춘향가나 심청가, 흥보가 등 흔히 듣는 판소리임에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판소리 사설이 대부분 고사성어나 고어 등으로 이뤄져 그 내력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판소리 창본집을 뒤지고 일본에 있는 자료들을 모아 사전을 만든 겁니다."
그렇게 하루 한시간씩 8년을 투자한 덕에 사전에 올려진 단어만 총 13만 단어에 7백 페이지 분량. 『판소리 사전』에 공력을 쏟아 부은 것은 무엇보다 이 작업을 통해 남원이 판소리의 역사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각계 인사들의 네트워크 형성이 판소리의 미래를 가늠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 관광객들을 안내하면서 절실히 느꼈다고 말한다.
"국어학자, 음악치료사, 실버 산업자 등 다양한 직업의 일본인들이 남원을 찾고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데에는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일본어를 독학한 것도 그 때문이였어요. 귀가 좀 트이면서 그들이 우리 소리인 판소리를 적극 연구하고 상품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우리는 지금 우리것을 빼앗기고 있구나 싶어 위기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전통을 고수하거나 지켜나가는 것 이상으로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상품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판소리 DDR에 매달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실버산업 가운데 하나예요. 노인들의 여가생활과 운동을 겨냥한 것인데, 지금 거의 완료가 된 상태고 특허만 내면 되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벌써 우리 국악을 가져가 상품화에 돌입한 상태인데 전통만 고집하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음원에 대한 저작권 확보 작업이라도 시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불과 몇 년 후에 우리가 우리것을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공무원의 갈 길은 지역민에게 뭔가 돌려주는데 있다고 말하는 그. 개인적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해온게 지금까지 8만여장에 이른다고 하니, 그는 분명 우리시대 별난 공무원임에 틀림없다.
그의 노력 덕분에 민요와 판소리가 흘러나오는 DDR 발판에서 흥겨운 '발림'을 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김회경 기자
"지역의 미래, 문화 경쟁력에 있습니다"
남원문화의 주춧돌 임명택씨
남원문화를 일구는 이들 가운데 임명택씨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라 할만하다.
남원향토문화연구회가 태동하는데 체계적 토대를 닦은 것이나 남원사회봉사단체 협의회의 중심에서 시민 여론을 주도해 가고 있는 것은 남원문화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준비하는 젊은 문화 일꾼으로의 역할 인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리산 신문' 창간호를 내놓고 남원 문화를 지리산권의 중심 문화로 세우는데 그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고, 그가 발족한 남원진흥회를 통해서는 이웃에 대한 봉사정신을 시민 속에 풀어내는데 여력을 쏟고 있다.
그의 이같은 노력은 그야말로 '지역 사랑'을 위한 전 방위적 실천력으로 다양하게 풀어지고 있다. 남원 문화를 논하는데 임씨의 역할과 위치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원광대 문화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면서 남원향토문화연구회 전 회장, 남원사회봉사단체 협의회 사무총장, 남원문회진흥회 회장 등 그가 가진 직함 역시 다양하다. 번듯한 수입이 생기는 일도 아니지만, 그는 늘 에너지가 넘친다. 몸 담고 있는 자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의 목표와 사고는 한 가지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남원은 그 어느 지역보다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입니다. 그만큼 가능성도 많은 곳이죠. 하지만 전북의 여느 소도시가 갖고 있는 인적 자원의 한계는 이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원의 문화 정체성을 확보하고 장기적 비전을 찾는 데에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전통을 현대로 적극 끌어와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시절, 서울 명동에서 리어커를 끌며 책장사를 하다 우연히 고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것이 향토 문화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착으로 이어졌다. 10여년의 공무원 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향토문화연구회 활동을 시작으로 시민사회활동에 투신한 것도 바로 이같은 그의 신념과 애정 때문이었다.
"우선 사람을 통해 문화 마인드를 심어가는게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문화를 공부하고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지역이 얻게 되는 이익도 많아진다고 봅니다. 남원의 관광산업은 이 지역의 미래로 연결되는 작업이니까요."
그가 향토문화연구회 회장직을 1년여로 마감지은 것이나 여러 단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인적 자원의 '순환'을 통한 마인드의 확산 때문이었다. 그는 남원의 최대 경쟁력을 '문화 전략'을 통한 경제 및 문화 성장으로 꼽고 있다.
문화마인드를 사람 속에 전파하고, 시민성을 확산하는데 그의 활동과 사고의 중심이 있다. 누구보다 많은 직함과 거기에서 오는 분주함은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잘 사는 남원'을 위한 그의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수한 열정이 피워내는 아름다운 시민정신
지역 정체성 찾는 남원향토문화연구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사랑한다."
국악의 본향이자 여느 지역보다 문화재가 풍부한 고장, 그 자랑을 오늘에 잇는 데에는 무엇보다 '알고 느끼고 사랑하려는' 회원들의 애정과 열정이 그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지난 98년 3월 남원을 중심으로 지리산 지역의 역사 문화를 조사하고 연구해 가자는 취지로 발족된 남원향토문화연구회(회장 변지원).
남원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와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남원문화의 주춧돌을 세워보겠다는 것이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으로 나뉘어진 62명의 회원들을 하나로 묶게 한 힘이 되었다. 3년여의 길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남원 향토문화연구회가 일궈놓은 사업의 결실은 결코 적지 않다.
우선 매달 회원 각자가 답사기행에 앞서 교양문화강좌를 진행하고, 답사 후에는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문화재와 유적지가 갖는 역사 문화적 의미를 기록화한 것이 이들이 내놓은 가장 기본적인 사업 성과물이다.
향토문화연구회 변 회장은 "지리산권 중심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온 만큼 회원들 각자가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가 차츰 성숙해가고 있다"며 "특히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만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각자의 연구 분야가 전문화되고 분리되고 있다는 점도 적잖은 성과"라고 말한다.
남원향토문화연구회는 무엇보다 문화 마인드를 사람 속에 침투, 확산시키는데 적잖은 공력을 들여 왔다. 어떤 사업이든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소중한 주체를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철학'을 토대로 지난해 9월에는 제1기 남원문화대학을 개설해 시민을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오기 위한 뜻 있는 강좌를 마련하기도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원광대의 협조를 얻어 회원들의 평소 소신을 시민 속에 실천해 옮긴 것이었다.
변 회장은 "1, 2학기로 나눠 원광대 교수님들과 우리 회원들이 강사로 나서 30개의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문화와 역사가 무엇인가에서부터 구체적인 남원의 문화유산의 유래와 의미 등에 이르기까지 알찬 강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향토문화연구회가 자랑하는 최대 사업이기도 하고요."
향토문화연구회는 이외에도 파손 위기에 처한 문화유적지를 찾아내 잘못된 문화 정책을 질타하는 여론 형성에도 적잖은 힘을 실어놓고 있다.
지리산 댐 건설에 따른 문화재 침수 등에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운봉읍 골프장 건설지를 답사해 문화재 파괴 현장을 시민들에게 고발하는 등 환경과 문화유적 파괴에 대한 관의 정책을 견제하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자료를 올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남원 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보호하는데 회원들의 역량을 결집해 나갈 것이라는 남원향토문화연구회. 남원 시민들은 물론, 안팎으로 이들을 주목하는 것은 순수한 열정이 피워 올리는 아름다운 시민정신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