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8 | [특집]
문화의 나라, 다양한 그물망과 전문적 지원이 생명
외국 선진사례로 본 주민참여 문화정책
글 이정덕 전북대 교수·문화인류학
(2004-02-19 15:24:16)
지역에서 문화정책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95년 지방자치가 시작한 이후에 상당한 발전을 이룩해왔다. 더구나 점차 소득과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여가를 좀 더 의미있게 쓰려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 예술, 스포츠, 관광 등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고, 또한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려는 경향이 높아가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문화산업, 예술산업, 관광산업, 오락산업, 스포츠산업이 더욱 커져 이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문화정책도 이에 따라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결과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문화의 집, 예술센터, 축제, 동호회 등의 지원도 커지고 있다. 앞으로도 주민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늘리는 방향으로 더 많은 정책들이 개발되고 실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치단체들의 문화정책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자치단체장들이 아직도 문화의 다양한 내용과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를 행정에서 주변적인 업무로 생각하는 단체장도 있다. 문화는 예술을 포함해서 모든 정신적인 영역을 다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민의 행복과 즐거움에 커다란 기여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산업적으로도 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주민 삶의 질이나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그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을 위한 문화정책들이 하향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주민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책이 적다는 것이다. 주민의 정책의 개발이나 지향점에서 주민참여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주민을 위한 문화나 예술정책을 시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갈수록 주민의 삶과 행복에 문화가 중요해지고 있어, 시혜보다는 주민 삶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생각으로 문화정책을 수행한다면 정말 좋겠다.
이러한 문제점을 점검해보기 위하여 외국에서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채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우리가 그러한 정책 가능성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외국의 정책들을 나름대로 전북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 뉴욕, 파바로티를 공원에서 만난다
미국은 행정부내 국가문화정책을 다루는 기관이 없다. 문화나 예술은 가능하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나 시군이 알아서 문화정책을 정하고 실행한다. 주나 시군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의 경우 문화국장이 있어서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이 자신의 문화적 방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책임자로 문화행정을 펼칠 수 있다. 국장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공무원신분으로 대부분 문화국 내에서만 일한 사람들이다. 평생 문화만 다루어왔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이미 가지고 있어 일을 치밀하고 전문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문화봉사팀은 뉴욕시 안에 있는 각종 문화단체들이 프로그램계획을 제출하도록 하여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일정한 돈을 지원해준다. 지역주민에 대한 강연회, 전시회, 취미교육활동, 거리음악회, 문화센터활동, 연극, 영화상영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빈곤한 학생들에게는 시에서 저렴하게 예술을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바이올린 등도 무료로 빌려주고 강사들도 구하여 가르치게 함으로써 빈한한 집의 아이들도 관심이 있으면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가 흥미있는 악기연주를 배울 수 있다.
돈 없는 예술가나 주민들의 문화활동을 위해 시내 다양한 공간(대형건물로비, 광장 등)이나 기부물자를 필요한 예술인이나 단체에게 연결해주는 팀도 존재하며, 중하층 주민이나 아동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팀도 존재한다. 또 한 팀은 교육청과 협조하여 각종 예술가나 문화전문가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 예술이나 문화를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뉴욕시가 관리하는 도서관(89개)에서도 자체적인 무료 문화프로그램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 서적전시회, 기타 문화물품전시회, 영화상영, 강연, 작가 등 유명인과의 대화, 연극, 음악회, 파티 등이 자주 행해지며 지역주민의 특색에 따라 분관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의 문화행사를 가지고 있다. 공원에서는 공원국의 지원으로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개최된다. 이 덕분에 나도 뉴욕식물원에서 파바로티 등 세계적인 성악가의 노래를 공짜로 즐길 수 있었다. 박물관도 150여개로 아주 많다. 시 도서관이나 공원에서 행해지는 문화행사가 연 15,000건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물론 자원봉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산을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전체적으로 뉴욕시는 특정 예술가의 활동보다도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도록 하는 데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공연과 문화활동을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시 기관뿐만 아니라 학교, 교회, 문화단체 등도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시민이나 학생에게 많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교회나 학교에서는 예배당이나 강당을 이용하여 공연을 하며 입장료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몇 불 정도만 받고 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이웃에서 각종 공연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취향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게되어 삶의 여유로움이 더욱 풍부해진다.
뉴욕시에는 없지만 군지역에 가면 종합문화센터 같은 시설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서는 예술뿐만 아니라 강연, 교육, 스포츠도 함께 이루어진다.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신적인 교양과 스포츠도 함께 즐기도록 되어 있다. 내가 방문한 한 센터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을 게시하느라 게시판에 공고문이 넘쳐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 긍정적 개입으로 문화권리 보장
뉴욕사람들은 뉴욕이 세계문화의 수도라고 자랑을 한다. 세계적인 브로드웨이, 화랑, 박물관, 미디어, 신문사, 광고, 패션쇼, 예술가 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도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예술의 도시라고 한다. 예술만 한정한다면 파리가 더 예술도시일 것이다. 이에 걸맞게 파리는 다양한 문화시설과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참여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에 문화부가 있다. 대체로 총예산의 1%정도여서 문화계나 예술계의 불만이 높지만 크게 그 비율이 높아지지는 않고 있다. 도단위나 시군단위에서도 물론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문화정책의 기본정신이다. 미국에 비해 긍정적인 개입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주민에 대한 긍정적 개입을 통해 시민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해준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실행하기 때문에 예술을 관람하거나 또는 이들을 직접 실행하도록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중오락적인 장르나 또는 외국문화를 같이 논의하는 집단 등에 대해서도 차별하지 않고 지원한다. 즉, 예술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주민들이 원하면 지원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다.
문화의 집은 프랑스에서 시작한 것이라 파리에도 여기 저기 있다. 문화센터가 56개가 있다. 더불어 시립 예술회관이나 음악, 미술, 연극학교 등이 존재한다. 박물관도 130여개에 이른다.
주민참여를 가장 자극하는 문화정책은 주민들이 시민단체 또는 동호회를 구성하면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예술뿐만 아니라 문화의 각 영역에 있어 마음대로 시민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 자치단체는 이들이 사회에 유용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되면 지원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종류도 많고 조직도 다양하다. 프로예술집단들도 이러한 동호회로서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시에 시민단체센터가 64개가 있는데 시민단체나 동호회에 대한 정보를 집결해서 개개의 시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집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시민단체가 더욱 활성화되고 주민들도 더욱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화행정의 중요한 부분이다.
프랑스문화연합, 프랑스지역연합, 카톨릭모임, 인도무용, 합창, 가면극, 지성의 발굴, 우표수집, 웃기와 말하기, 여행, 서커스모임 등 예술을 넘어서서 문화의 다양한 부분을 다 포괄하고 있다. 물론 문화영역을 넘어서는 모임들도 지원한다. 무용 영역에서만도 파리에 153개 단체가 지원받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 스스로가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자신에 알맞는 영역에 참여하고 활동하고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 파리시의 가장 중요한 주민에 대한 문화정책이다.
일본에서도 시민들의 동호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강사를 소개시켜주기까지 한다. 관련 정보제공과 다양한 관람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기본적인 임무다.
영국에서는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예술센터들을 지역주민이 보다 쉽게 참여하고 관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왔다. 지역주민들이 예술행사에 참여하고, 창의성을 개발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전문예술가들과의 만남 및 공동작업 기회를 만들어 주면서 아마추어 작업과 참여적 워크샵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화정책이 주민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자치단체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민들도 이러한 방향이 자신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