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 | [문화가 정보]
갑신년, 운수대통하소서
설 맞이 다채로운 문화행사
최정학 기자(2004-03-03 18:59:40)
올 설 귀성길은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길이었다. 71년 만에 찾아왔다는 기록적인 동장군의 기세에 전국은 꽁꽁 얼어붙었고, 때마침 내린 폭설은 고향을 찾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애타게 했다. 하지만 언제 봐도 푸근한 고향과 반갑게 맞아주는 친지들이 있어 아무리 고되고 힘든 귀성길 피로라 해도 봄 눈 녹듯 사라지는 법.
이번 설 연휴기간동안 우리고장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설맞이 행사가 열려 귀성객들에게 고향의 넉넉함과 포근함을 전해 주었다.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는 22일과 23일 이틀 간 풍성한 ‘갑신년 운수대통 설날 큰잔치’를 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한해 운수를 알아보는 ‘토정비결’. 설맞이 ‘소원축제’의 일환으로 준비한 ‘운수대통 토정비결’은 유료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신년 새해 운수를 점쳐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소원문 달기’행사와 ‘재수부적 나누기’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가해 각자 새해 소원문을 소원솟대에 달거나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을 직접 찍으며 갑신년 한해의 복을 빌었다.
광주에서 근무하다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최창훈(28)씨는 “재미로 본 토정비결에서 올해는 장가를 들겠다는 괘가 나왔다”며 “점괘도 잘나오고 먹을 것도 많아 모처럼만에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명절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푸짐한 먹을거리. ‘음식축제’에서는 전통한과를 만드는 전 과정을 시연하는 한과시연과 떡메치기 체험이 열려 점점 사라져 가는 옛 명절의 모습을 되살려 냈고, 떡국나누기와 야외 부뚜막을 이용한 군고구마와 군밤 등의 겨울 먹거리 체험장은 가족들과 함께 찾아온 시민들에게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밖에 다채로운 ‘공연마당’도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혼례마당에서 열린 ‘재수굿 한마당’에서는 무당이 직접 출연, 갑신년 운수대통을 기원하는 신명나는 굿 잔치를 벌여 행사장의 추위를 녹였다. 놀이마당에서는 타악뮤지컬 ‘야단법석’이 공연됐다. ‘야단법석’은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쌓고 불법을 설파한 야외법회에서 유래한 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법고, 목어, 요령, 죽비, 발우 등과 전통타악기를 이용한 기상천외한 퍼포먼스가 신명나게 펼쳐졌다. 특히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하고, 마임과 탭댄스, 심지어는 불교경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를 이용해 연출한 리듬은 행사장을 찾은 귀성객들에게 전통문화고장 전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옥생활체험관과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열려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을 반갑게 맞았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1등 시상금이 무려 50만원이 걸린 ‘설맞이 윷놀이 경연대회’가 열려 매서운 동장군의 추위 속에서도 시민들의 열렬한 참여를 이끌어냈다. 1만원을 내고 가족단위로 참가한 시민들은 “좀 춥긴 하지만, 답답한 방안에서 가족들끼리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고 너스레를 떨며 상금을 타기 위한 즐거운 혈전(?)을 벌였다.
‘우리, 우리 설날은!’이라는 슬로건으로 행사를 열었던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는 갖가지 전통행사 비롯해 외국인을 위한 특별 행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옥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 먼 타국에서 쓸쓸히 명절을 보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날 한옥마을사람들이 마련한 풍물과 장기자랑 등의 자리를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전주역사박물관에서는 연휴 첫날인 21일부터 주말까지 세시풍속 한마당이라는 이름아래 ‘소원성취 항아리타임 캡슐’이라는 이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소원성취 항아리타임 캡슐’은 올 한해 자신이 이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편지글로 적어 타임캡슐 항아리에 저장하는 것. 지난 2003년 설 연휴에 ‘소원★은 이루어진다’라는 이름으로 같은 행사를 개최한데 이어 올해에도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어낸 자리다. 올해 행사에서는 지난 설에 넣어 두었던 편지글을 꺼내서 ‘지난 해 내 소원은 무엇이었고, 지나온 1년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다시 뒤돌아보는 시간도 함께 있었다.
이밖에 전주국립박물관에서도 어린이 한지 공예 솜씨전 등 여러 전시와 공연, 행사 등이 열렸다. 전주공예품전시관과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2월 5일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 최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