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특집]
10년 여정…반석 위에 올려진 '진혼의 역사학'
김회경 기자(2004-04-20 14:20:17)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10년 이끈 한승헌 변호사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령탑으로 일해 온 한승헌 이사장이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을 접고 이임식을 가졌다. 2월 1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연회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고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역사적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과 역사적 실증 작업을 벌여온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활동 중심에는 한승헌이라는 든든한 '거목'이 서 있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비롯해 민주화 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아 '인권 변호사'로 세인의 존경을 받아왔고, 최근에는 일천하기만 한 저작권법을 바로 알리는 저작권 전문변호사로 입지를 다지는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선도적 활동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객관적이고 강직한 성품을 인정받아 감사원장으로 재직했다.
인권변호사가 뒤틀린 역사인식에 묻혀있던 동학농민혁명을 당당한 역사적 진실로 평가받기 위해 순탄치 않은 여정을 앞장서 걸어왔다는 점은 비록 역사학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선진적 행보에 비추어 조금도 낯설지 않은 이력이다.
그의 이임을 즈음해 절묘하게도 지난 2월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국회를 통과라는 뜻밖의 이임 축하선물이 안겨졌다. 10년동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열정을 쏟아온 한승헌 변호사를 만나 이임 소회를 들었다.
▲10년 동안 무리 없이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이끌어왔는데, 이임 결심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동학농민기념사업회가 10년 전에 출범했는데, 너무 오래 재임했다. 일인 장기집권을 비난해 왔던 장본인이 같은 우를 범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 그래도 내실 있는 사업을 많이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던 차에 동학농민군들의 명예가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이 통과돼 퍽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특별법 국회 통과가 기념사업회 중심으로 이뤄져 다행이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1993년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출범한 이후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 인식이나 대중성의 확보도 그 토양이 척박했을 줄 아는데.
△ 그렇다. 동학난이라고 폄하되어 왔던 게 사실이고,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0년 전만 해도 동학혁명을 불온시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라 사업의 동반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지난 100주년 기념 행사를 진행하면서 도지사에게 축사를 부탁했더니, 당시 지사의 답변이 지금으로 보자면 반란군에 의해 도지사가 쫓겨났던 사건인데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서 축사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의를 따르지 못하고 쫓겨날 정부라면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응수를 했더니, 결국 기념 행사에 나와 동학 만세 삼창을 함께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벽을 허물며 합법적인 공간을 넓혀 나가고 자치단체와 정부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임 결정과 때를 같이해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더없이 반가운 '이임 선물'이 되었을 듯 하다. 그간의 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인식해 왔지만, 법 제정 노력이 실질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의원이 당위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들을 계몽하고 설득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부러 동학혁명 관련 세미나를 국회 건물에서 하기도 했는데, 국회의원들이 한 명이라도 더 들어주길 바라서였다. 여기에 호남의 윤철상 의원과 영남의 권오을 의원이 힘을 많이 쏟았는데, 이번 특별법 제정이 이렇게 동서와 여야의 벽을 넘어 이뤄졌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번 특별법 제정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이에 따르는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동학혁명에 관련한 사료 수집과 연구, 관리 등이 정부 지원으로 튼실히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다양한 기념사업과 계승사업 등에 정부 지원을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회복이나 유가족 보상 문제 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동학군과 그들의 유족을 판별할 문서나 자료가 척박하고 근거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보상을 금전적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산하해 간 무명 농민군들을 기릴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념사업회가 그동안 추진해온 사업을 최전방에서 이끌어 왔는데, 기억에 남는 사업을 꼽는다면.
△역사교실과 역사기행 등 의미 있는 연례사업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과 1996년 북해도 대학에 방치돼 있던 농학농민혁명 지도자 유해 국내 봉환사업, 전봉준 장군 일생을 그린 음악극 <천명> 순회공연, 2001년 한중일 국제학술대회 등 특별사업이 다채롭고 내실 있는 사업으로 기억된다. 최근 전주역사박물관 수탁 운영을 맡게 된 것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지난 한중일 학술대회를 즈음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다시 한번 뜨거운 이슈가 됐는데, 학술대회에 참가한 일본의 이노우에 교수가 주축이 되어 학술대회 참가자들의 이름으로 일본 교과서 왜곡에 맞서 대 일본 규탄 성명을 발표한 것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이런 중요 사업이 성취될 수 있었던 건 이사장인 내 힘보다 이사와 임원, 회원, 그리고 이름 없는 독지가의 은덕이 컸다. 각별한 지원과 관심을 가져준 개인 독지가와 자치단체에 거듭 감사를 드린다.
▲의미 있고 내실 있는 사업으로 기념사업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이사장으로서 큰 힘을 보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자리를 떠나면서 아쉬움이 없지 않을 것 같다.
△회원 확장이나 운동 및 사업의 저변을 좀 더 넓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사업의 전국화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점은 적지 않은 아쉬움이다. 농민혁명은 우리 지역의 자랑만으로 가둬둬서는 안 된다. 앞으로 사업의 전국화가 반드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하나 아쉬움은 무명 농민군 묘역 조성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제 학술대회에서 한 역사학자가 동학농민혁명을 '진혼의 역사학'이라고 칭했는데, 짓밟힌 민중들이 스스로 깨달아 목숨을 걸고 역사의 주체로 섰다는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역사다. 구천을 떠돌 영혼을 위로하고 안식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진혼의 역사학'이자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신임 김정기 이사장이 바통을 이어 받아 이사장 자리에 앉았는데, 당부하고 싶거나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당초 2년 임기를 염두에 뒀던 것이 10년을 지나온 것은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였다. 김정기 이사장이 선출된 것은 이임하는 나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면서 학문적 깊이가 깊고, 서원대 총장을 지내 조직 관리도 뛰어난 분이다. 기념사업회로서는 이사장으로서 맞춤옷 같은 적임자를 맞은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우리 고장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지역에 묶어두는 건 옳지 않다. 이런 생각을 기초로 이사진 구성 역시 국지화를 벗어나려 애썼다. 김정기 이사장 역시 그런 맥락에서 선임된 분인데, 차기 김 이사장을 통해 기념사업과 계승사업이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지역정부나 중앙중부와 더 자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야 할 것 같다. 우리 고장의 역사와 민속, 전통의 잠재력 위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