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한상봉의 시골살이]
<한상봉의 시골살이>
농부(2004-04-20 14:25:22)
귀농, 참으로 눈물 겨운 투쟁
어제는 우수(雨水)였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서 봄을 재촉하는 절기다. 지난 며칠동안 경기도 여주의 도자기 전시장에 가서 일을 돕다가 왔다. 아직 농사철이 시작되지 않았고, 여행도 할겸 뒷집 처자와 우리 식구들은 오랜만에 멀리 나들이를 한 것이다. 결이도 그 집 아이와 잘 놀았고, 우린 그릇을 포장하거나 먼지 앉은 그릇을 닦았다. 집에 와보니, 무주도 여주 만큼이나 따뜻했다. 몇 주전에 집중적으로 왔던 눈은 이제 다 녹아서 잔설조차 볼 수 없었다. 한 번쯤 꽃샘추위가 올 테지만, 산골마을로 올라올 때, 아랫동네 이웃은 비닐하우스 자리에 고추모종을 심고 있었고, 이른 농사는 벌써 시작된 듯 싶다.
밤중에 아내가 어느 잡지에 실린 '귀농 실패기'를 읽어 주었다. 지금은 양평 읍내 어느 속셈학원에서 강사 자리를 얻어서 일한다는 그분은 적자로 얼룩진 귀농일기를 써내려갔다. 지금은 귀농이 아니라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고백하는 그분은 '생활고'가 농사를 접게 만들었음에 답답한 심경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열악한 교육환경은 자녀를 둔 그의 시골살이를 더 안타깝게 만든다. 도시에 있을 때 웬만큼 돈을 벌어놓고 귀농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자립하는 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그야말로 '부지런한 농부'가 되는 것이다. 돈이 될만한 작목을 선택하여 분명한 계획을 갖고 '뼈빠지게 일하는 것'이다. 이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왜 시골 노인네들이 해 떠서 해 질 때까지 일하는 지 이해한다. 그리고 체력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는 한, 해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경험할 것이다. 하나는 농사 외에 다른 수입원을 찾는 것이다. 글을 쓴다거나, 품을 팔거나, 벌목장에 가서 일을 하거나, 농한기를 이용해 두어달 동안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사실 단촐한 식구에 '소박한 삶'에 대한 비상한 결단을 내린 경우가 아니라면 귀농은 참으로 눈물겨운 투쟁이 뒤따른다.
내 경우에도 귀농할 때 마음 먹었던 것들을 몇 가지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첫 번째가 귀농하면서 '생계형 글쓰기'는 하지 말자고 하였으나, 지금은 매달 어느 잡지에 기고하는 글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계의 한 부분을 맡고 있으며, 강의나 이런저런 요청이 있을 때마다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일 이년동안에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려고 했다. 공사판에서 인부로 일하거나 집 짓는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며, 단행본 책자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마음이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릴수록 농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매년 가을에 적은 수확을 보면서 날씨탓을 하지만, 결국 첫해만큼 농사에 마음을 쓰지 못한 게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농사규모가 줄어들어 가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른바 탈농(脫農)은 생각할 수 없다. 이미 도시에서 살기에는 시골생활이 주는 혜택을 너무 많이 누려왔던 탓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땅이 주는 은혜도 그러하거니와, 도시에서라면 우리 처지에 평생 좁은 전세방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다. 여기선 넓은 집에 넓은 마당, 그리고 주변이 온통 산이라서 새 소리조차 난무(亂舞)하다.
겨울과 초봄에는 유난히 여기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늘어나 머리 속이 복잡해질 때가 많지만, 결국 봄기운이 무르녹아 감자를 심을 때쯤이면 다시 일에 몰두하게 되고, 그런 걱정쯤은 다시 다음 겨울로 미루어진다. 그래서 또 한 해 산골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