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 | [삶이담긴 옷이야기]
공갈 빵 같은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
최미현 패션디자이너(2004-04-20 14:27:23)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많은 학생이 패션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 강의실을 꽉 매운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당황했다. 광주의 한 대학에서 강의 할 때였는데, 학부제를 실시하는 이 학교의 패션열풍은 정말 강렬했다. 목공예 수업에는 겨우 6명이 신청을 했을 뿐이어서 담당 교수님은 과목 명을 퍼니춰 디자인이라고 바꾸기까지 했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서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싶다는 것이었
다. 그러면 나는 김이 팍 새게 그 세계에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해 주고는 했었다. '빵인데 껍질만 크게 부풀려 놓은 공갈 빵 이라는 거 혹시 아니? 나름대로 맛도 있고 보기도 좋은데 배가 고플 때는 별로 도움이 안돼. 패션계도 마찬가지야, 겉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어렵지.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그 열정으로 버텨나가지 않는다면 견디기 힘들어, 등등' 하면서 학생들의 부풀려진 환상에 바늘을 콕콕 찔러대고는 했었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없을 수 는 없지만 패션계의 현상은 더욱 부풀려서 알려져 있다.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디자이너도 있고 그들을 보도하는 언론이란 왜곡된 것이 많아서 마치 힘 하나도 안들이고 성공의 길에 접어들을 것 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에서 생존하기란 정말 백척간두 위에서 발을 앞으로 빼야만 하는 상황일 때가 많다. 세계의 유명한 디자이너 대부분은 지독한 일벌레로 하루 10시간 이상을 작업실에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들의 생활은 지독히 단순하다. 그들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이유는 옷에 살고 옷에 죽는다'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또 그들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혼자 힘이 아니고 그들 동료들의 헌신적인 뒷받침 때문이기도 하다. 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가 '나의 오늘은 동료들의 힘으로 완성된 것' 이라는 말을 어느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었다.
또 돈을 많이 벌을 것이라는 것도 부풀려진 사실이다. 디자이너의 수입이라는 것이 그리 대
단한 것이 못되고, 발바닥이 닳아져라 뛰어 다니는 병아리 일 때는 국민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 일정량의 판매고를 책임져 주어야만
한다. 그래서 새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면 다들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게 안되면?
사표를 쓰는 것이 관례이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수명은 짧다. 그 다음은 어디로 가나?
돈과 능력이 뒷받침되면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안되면 필자처럼 어영구영 지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르고 걸러서 남은 소위 디자이너 불루칩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물론 상당한 연봉의 스카웃 제의가 따른다.
서러우면 성공해야지.......
그런데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국내 유통 시스템에서 젊은 디자이너가 발붙일 곳이 없다. 젊은 디자이너가 매장을 얻기도 힘들지만 수입의 30%를 지불해야 하는 현실에서 막강한 자본력 없이는 견디어 내지를 못한다. 돈 있는 자여 오라, 내가 문을 열리라 하는 풍토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나올 수 있을까? 없다.
이런 이야기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수저는 그릇에 닿지만 그 맛을 모르는 것처럼 자신의 입에 넣어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맛인지 쓴맛인지 모르기 마련이다. 맛을 봐야 맛을 알지.
그러니 부풀려진 현실을 사실로 착각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