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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4 | [문화칼럼]
<테마기획> 장날, 그 신기한 세계의 만화경
이기화 고창문화원 원장(2004-04-20 15:33:27)
장은 일정기간마다 열리고 있어 희노애락의 기폭이 적었던 우리로서는 장에 갈 수 있는 희망과 기대감속에 평일을 저축해오면서 나름대로 일취월장의 꿈을 그리기도 했었다. 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한 물건의 구매 의욕 속에 도사려 온 터라 호주머니 속이 약간은 도두룩한 편이어서 장을 찾아 나설 때는 식후경 같은 안도와 즐거운 마음이 가득해져 장을 보거나 장 구경만으로 만족할지언정 낙천적인 멋을 풍길 줄 아는 넉넉한 단면들이 언제고 주렁주렁하였다. 일단 장에 들어서면 필요한 물품은 사는 데만 급급하는 도치기가 아니고 아무 푸념없이 장 마당 고샅을 쭉 둘러보는 습속들을 내세워 대충 장 구경을 덧 삼아 이야기 주머니를 채워둔다. 그러면서 먼 친척이나 사돈벌을 그리고 친지들을 챙겨보고 새로 사귈만한 말동무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으레 장 모퉁이에 판을 벌리고 있을 해학과 재기 일색인 장타령 판, 능청맞은 익살과 재담, 춤과 노래판까지 끼어 든 약장수 패들 심지어는 사주, 궁합, 택일, 작명 등을 하려는 아낙네들을 끌어 모으기에 안간힘을 쏟는 안경테 노인들의 구성진 말재주 판을 둘러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판의 구석구석까지 집에 가서 열어놓을 말 주머니를 챙겨 넣는다. 장터의 먹거리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인데 필요한 물품을 사고 팔며 구경거리도 보면서 돌아다니다 출출해지면 술친구를 찾아 입맛을 돋구는 주막집에 들어선다. 장터국밥이나 선짓국, 순대, 내복 등이 잔뜩 쌓인 앞에서 우선 술을 청해 마시면서 어울려 댄다. 장터주막거리에서 친지나 새로 사귄 사람들과 담소를 즐기면서 마시는 술맛은 진한 친근감을 더해주는 청량제인 것이다. 전통시대에 살았던 여인들은 평소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였으나, 장에 나가는 것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어서 5일장은 농촌사람들에겐 축제나 다름없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장날이 닥치면 괜히 마음이 설레이고 들떠지곤 했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종이 '땡' 치면 그렇게 좋아하고 친구들과 함께 장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학교수업이외에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여서 라디오가 있나 신문이 있나 농촌 서민대중은 새소식에 잔뜩 굶주려 있었다. 해서 장날만 닥치면 점심시간에 장 마당에 뛰어들어야 눈요기 꺼리도 무던히 하고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특히 유식한 할아버지가 벌려놓은 책전에 가게되면 꿈에도 그리던 옛날이야기 책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사랑방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던 이야기 속에서 주워들은 김유신장군, 임경업장군, 옥루몽, 구운몽, 혈의 누, 흥보전, 심청전, 춘향전 등의 금쪽 같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볼 수 있었기에 말이다. 처음에는 파리 쫓듯 귀찮게 하던 할아버지도 "얘야 흠집 안나게 조심해서 읽어라"하는 승낙이 떨어지면 그땐 쪼그리고 앉아 차분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흥이 나기 시작하면 그 날 오후 수업은 땡땡이치고야 만다. 정말이지 낭만이요, 꿈길이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권태의 연속뿐이었던 그 어린 시절에 5일장은 가히 꿀맛이었다. 장에 가면 무궁무진한 어른들 세계의 신비로운 베일을 벗겨 볼 수도 있고 요새말로 서민들의 폭넓은 문화마인드를 읽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세상 물정에 젖어들게 해주었던 그때 그 시절 장날 풍경은 나의 소년기를 이끌어 내준 상상의 나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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