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 | [수요포럼]
17대 총선의 의미와 전망
문화저널(2004-05-23 14:34:07)
그 어느 때 보다 극심한 정치적 의제들 속에 17대 총선이 마무리 되었다.
총선 결과 ‘탄핵심판론’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해 원내 과반을 넘었고 민주노동당은 10석을 차지하며 첫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지역주의 정치에 기반한 민주당과 자민련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결과를 얻었고, 반면 50석도 체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던 한나라당은 선거막판 박근혜 대표의 등장으로 영남권권 지지 세력이 결집하면서 121석이라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번 17대 총선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의회세력의 주류가 교체됐다는 것. 본격적인 진보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의 약진도 앞으로 정치지형을 변화시킬 커다란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밖에 여성들이 국회에 대거 진출하고, 정화원?장향숙씨 등 4명의 장애인이 당선되는 등 그동안 우리정치에서 소외받아왔던 소수계층들도 어느 정도 원내에 진출했다.
지난 4월 21일 정보영상진흥원에서 열린 제 15회 마당수요포럼은 ‘17대 총선결과의 의미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이번 총선이 갖는 의미와 향우 정국의 변화를 진단했다. 총선이 끝나고 1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인지 비교적 한산한 가운데 진행되었지만, 지역과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가해 밀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날 포럼은 박종훈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대표가 발제를, 이재규 CBS 생방송 ‘사람과 사람’ 진행자가 사회를 맡았다.
발제 - 17대 총선의 의미와 전망 (박종훈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대표)
이번 총선에서 탄핵심판론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거여견제론을 표방한 한나라당의 지역주의를 뚫고 과반수를 획득했다.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정적들의 대 반격이 지지세력의 결집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100여명과 타 당 60여명의 신진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인적청산 및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이는 개혁국회를 형성할 수 있는 필요조건을 획득하여 제도적 청산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이미 예측된 결과였다. 16대 총선시 울산북구 공천과정을 겪으면서 원내진출의 희망은 싹트고 있었고 3대 지방선거과정에서 8.1%의 득표, 대선후보 출마, 탄핵이후 여론조사 결과 등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문제는 탄핵국면이 사표심리로 이어지면서 민노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결과를 보면 탄핵정국 이전과 비교해 정당지지율에서는 오히려 올랐다. 탄핵정국이 개혁에 대한 열망을 키웠고 이것이 민노당의 활동반경을 넓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보지지율 면에서 보자면 탄핵정국 이전에 비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민노당의 각 후보들이 대중적 기반과 인지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큰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거의 몰락한 민주당 후보조차도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도를 가진 후보는 높은 득표율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성의원이 증가한 것처럼 보도되지만 수직적으로 증가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원들이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비례대표제의 전문성과 여성 정치 진출과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보안 및 정당공천이 가능한 광역과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등 지방선거에까지 여성들이 진출해야 한다고 본다. 그때 지금의 국회여성 비율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 당선지지운동, 정보공개운동 등 기존 유권자 운동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탄핵반대 촛불집회가 직접적인 정책을 매개로 한 유권자 운동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전국적으로 3분의 2가 초선의원으로 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북에서는 기존 현역의원이 모두 당선되었다. 하지만 공천을 통해 당선된 두 명의 개혁적 의원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국회는 정책대결의 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통합 선거구내에서의 소지역주의는 이번에는 별로 위력적이지 못했지만 잠복되어 있어서 쟁점이 사라지면 지방선거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향후 정국을 예상해보자면, 새로운 정치신인들의 대거 진입으로 정당내 세력재편이 기존 정당에서 진행될 것이나 과반수를 획득한 열우당이나 막판에 선전했다고 판단하는 한나라당은 정계개편을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민노당은 현 지지율을 바탕으로 확대 재편을 넘어, 외연을 포괄하는 새로운 틀을 가지고 대중적 지지와 다음 지방선거를 준비할 것이다. 각 정당이 기존의 계보나 인적 관계를 떠나 정책의 차이에 따른 정책 그룹으로 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단, 생긴다면 민노당이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판은 갈렸다, 이제 세부적인 개혁안이 필요한 때다 (큰 제목)
이번 총선은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 표출
이날 포럼의 주요 쟁점은 탄핵정국이 민노당에게 사표심리로 작용했는가와 전북에서 열린우리당이 11석 지역구 모두를 차지한 것의 의미 등이었다. 하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이번 총선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획득과 민노당의 약진 등으로 개혁의 여건을 어느 정도 마련했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했다.
발제를 맡은 박종훈 전북참여자치 시민연대 대표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했다고 해서 개혁국회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162명이라는 인적 청산을 통해 개혁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기에 개혁 내각이 출범한다면 앞으로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며 이번 총선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국민적 열망이 표출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덕진구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전준형씨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여전히 일정한 지지계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가장 억울한 것은 민주당이다. 탄핵정국으로 인해 지난 4년간 해놨던 일들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자민련의 몰락은 당연하다”며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다. 만얀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잡았다면 교섭단체를 갖출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김병수 공공스튜디오 심심 대표도 민주당의 몰락을 안타까워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가 정당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순식간에 몰락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게는 그리 나쁠 것 없는 선거였다. 선거를 치를 때 차떼기 정당이라던가 탄핵정국 등 여러 약재 속에서도 여전히 그들의 지지 세력들이 결집한 것을 보여주었다”며 “지금까지의 국회의 여러 구태들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에게 눈을 돌리게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정웅기 마당 이사장은 좀더 구체적인 분석을 했다. “개혁을 해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진보를 지지하고 변화를 통해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은 보수를 지지한 것이 영남과 호남, 서울 강남과 변두리의 표 쏠림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며 이번 총선은 ‘부’에 따른 성향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어 “개혁을 하고 싶어도 지금까지는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국민이 힘을 실어주기위해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 한다”며 “이번 선거는 정책면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승리했고, 감성면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사표심리가 민주노동당에 영향 끼쳤나
쟁점이 된 부분은 탄핵정국이 개혁적 성향의 유권자들에 사표심리를 조장해 민주노동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는가였다.
이에 대해 박준형 대표는 “투표결과를 보면 탄핵정국 전에 비해 정당 지지율면에서는 오히려 올랐다. 탄핵정국이 개혁에 대한 열망을 키웠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활동반경을 넓힌 것”이라고 분석하며 “정당 득표율과 후보 득표율에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은 사표심리라기보다는 각 후보들이 대중적 기반과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이재규씨도 “이번 총선은 중요한 정책선거였다고 생각한다. 정책선거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탄핵심판이 얼마나 중요한 의제인가”라며 “쟁점 자체가 탄핵에 대한 찬반으로 집중되면서 그동안 급진적 이데올로기 등 때문에 유권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민노당의 색깔이 희석되고 국민들에게 안정적 대안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며 거들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덕진지구에서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전준형씨는 “민노당이 탄핵심판론 때문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의장이 사퇴하기 4일 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보와 정당 지지율 모두 13~15%대에 육박하던 것이, 정동영의장 사퇴 후 후보지지율이 8.4%로 떨어졌다”며 후보지지율 면에서는 사표심리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동당이 실질적으로 지역사회와 교류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총선은 시민들의 냉엄한 심판 이었다”고 덧붙였다.
김병수 대표는 진보정당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지금까지 지역에 대한 각 정당들의 공약을 보면 대부분 실천 가능성이 희박한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 이었다. 진보정당은 지역이 갖고 있는 내재적이고 내생적인 발전전략에 맞는 지역 정책들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실천해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민주노동당도 지역의 생활에 밀착해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들을 제시해줄 것”을 주문했다.
개혁의 물결 지역정치권까지 뻗쳐야
전북의 총선결과에 대해서도 다양한 진단과 전망이 쏟아져 나왔지만 참가자들 대부분 신지역주의를 우려했다.
전준형씨는 “전북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위기의식이 그 어느 지역보다 팽배하다. 이것이 열린우리당이 전북에서 싹쓸이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낙후된 지역이라는 생각이 힘 있는 여당에 대한 열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이것은 전북이 처한 가장 어두운 부분이다. 열린우리당의 싹쓸이가 전북정치권이 진정으로 전북의 성장을 위한 토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박종훈 대표는 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전라북도 정치권은 도민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낡고 노쇠했다. 이번 총선도 이런 낡고 노쇠한 지역주의에 기댄 측면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정치적 쟁점들은 모든 국민들이 다 동의하는데, 지역으로 내려오면 지역 논리에 휩싸여 아무런 민주주의의 내용성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지역도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춰가면서 우리 사회전체를 개혁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의미에서 경선과정을 통해 당선된 신인들이 중요하다. 이들이 낡은 지역 질서를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며 이들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여성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밖에 그 어느 때 보다 높았던 여성들의 국회진출이나 새로운 형태의 유권자운동으로 자리매김 된 촛불시위에 대한 담론도 오갔다.
사회를 맡은 이재규씨는 “진취적인 정당에 몸담고 있는 여성후보라면 모르지만 반 진보적이고 수구적인 정당에 몸담고 있는 여성후보의 경우, 그 여성후보를 찍는 것이 오히려 여성들의 삶을 후퇴시키는 것과 연관될 수 있다. 여성단체들이 정치적 정체성이나 성향을 무시한 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물론 모든 정당에 대해 여성후보가 일정비율 이상 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보정당이나 개혁정당에 여성후보들을 집중 배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총선에서 낙선낙천 운동 등의 유권자 운동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미 객관적인 정보는 제도적으로 공개가 되기 때문에 보다 밀도 있는 정보공개 운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총선에서 정치개혁의 열망을 표출했던 수많은 촛불집회 참여 시민들은 시민사회운동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유권자 운동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들의 절박함은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여기서 물러서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의 과정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것이다”라고 촛불집회의 의미를 평가했다.
박종훈 대표도 “지금 우리사회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확고한 지점에 와있다. 촛불집회가 이런 위기의식이 발현된 경우라고 생각 한다”며 “앞으로는 개혁이 눈앞에 가시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을 통해 개혁에 대한 탁 틔인 시야를 제공할 수 있는 고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총선이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참가자들 대부분이 동의했지만, 신지역주의의 발현이나 여성계를 대표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원내 진출 등 앞으로 극복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