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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 | [문화저널]
아날로그 편지쓰기
김관우 전북대 교수, 독어독문학과(2004-05-23 14:44:21)
보고싶은 니콜라오! 수난시기가 끝나고 돌아가신 지 사흘만에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를 기리기 위해 우리 성당 식구들 모두가 근처 공원에서 부활 야외 미사를 드리던 그 날, 니콜라오는 독일의 라인강 변에 위치한 쾰른 대성당에서 외국 친구들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는 소식을 메일로 접하고 문득 보고싶은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더구나. 뿐만 아니라 네가 다니는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독일의 본(Bonn)대학에 교환학생으 로 선발되어 한국을 떠난 지도 벌써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학내 업무에 쫓기다보니 평 소에 너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잘 있으려니...” 하며 오히려 잊고 지낸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더구나. 그런데 <부활 축하> 제목을 달아 보낸 너의 메일에서 내내 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내용이 담겨 있어 조금은 당혹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단다. 그것은 바로 지나간 학창 시절이 단지 대학 진학과 학교 등수에 집착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나, 그동안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어리숙한 면이 많았고 지금은 때론 이유도 없이 감정이 휘몰아치곤 한다 는 너의 글에서 어렴풋하나마 청소년 시절에 대한 회한과 그간 분출하지 못한 감정의 격 랑이 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모범생으로 비쳐졌던 학창 시절의 너의 자화상이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소산물이 아니라, 마치 외부의 끊임없는 강압과 사회적 규범에 속박되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나마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난 길을 순응하 고 제 발로 걸어온 자신이 홀로 떨어진 채, 이질적인 유럽문화와 서양인의 의식을 체험 하면서 겪는 홍역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는 마무리의 글을 읽으면서 “인간 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는 괴테 <파우스트>의 글귀가 떠올려지더구나. 그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문학사에서 흔히 ‘젊은 괴테’라고 칭하는 지금의 네 또래인 20대 청년기의 괴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싶구나. 당시의 시대적 경향은 이성을 중시하는 합 리주의적 계몽주의 사조에 반발하며 감정을 우위에 두려는 이른바 <질풍노도운동>의 시 기였단다. 질풍은 파괴를 의미하고 노도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을 뜻하고 있었지. 달리 말하면 신세대의 구세대에 대한 항거이며 계몽주의와 모든 규범에 저항하는 청년들의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중심에 독일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지 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괴테가 우뚝 서 있었다. 불과 그의 나이 25세에 고 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지 않았겠니? 서한 문 형식으로 쓰여진 이 작품은 베르테르라고 하는 청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격정적인 사 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한 때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청년들이 베르테르의 복장이나 언어까지 모방할 정도였다 니까 그 작품의 반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냥 주관적인 감정에 치 우치게 되는 당시의 문학 작품들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감상적인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단다. 괴테는 그 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고대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 히는 동시에 예술의 목적이 형식과 내용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 지. 이렇게 해서 조화와 형식미를 추구하는 괴테 주도의 고전주의가 도래하게 되었단다. 사랑하는 니콜라오! 자칫 휘몰아치는 감정에 모든 것을 내맡길 수도 있는 한창 패기에 찬 지금의 니콜라오에게 앞서 언급한 젊은 괴테의 이야기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또한 이미 ‘질풍노도’시기를 경험했을 주위의 인생 선배들과 능동적으로 진솔한 대화 의 기회를 가지는 것도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오늘의 나의 편지가 니콜라오 인생 항로의 지침이라기보다는 오 히려 중년에 접어든 보통 사람들의 기우에 다름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대학 진학 및 학교 공부에 매달리느라 어쩔 수 없이 억눌러 온, 심연의 솟구치는 감정을 무제한으로 발산하기보다는 이젠 오히 려 잊고 있었던 감성의 복원에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얼마 남지 않은 독일에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먼 훗날 보람 있었던 성과로 기억하게 되는 관건 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주님의 은총이 항상 니콜라오와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니콜라오을 사랑하는 예로니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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