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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 | [문화시평]
수 백 겹 한지, 그 농축된 시간
이 철량 전북대 교수. 미술학과(2004-06-12 12:11:00)
임효가 닥을 다듬고 두드려서 종이를 만들고 그 위에 적절한 천연안료를 곁들여 가며 독특한 형상을 우려낸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얼마나 전통회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에 젖어있는 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이처럼 닥의 원료를 구입해 삼고 걸러내고, 수 없는 다듬이질의 과정을 거치는 고단한 작업을 하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임효가 화단에 들이민 작업들은 대담하고 활달한 필묵을 통한 산수 혹은 풍경이었다. 그의 초기 산수는 운필의 힘이 넘쳐나고 먹의 운용이 섬세한 매우 기세등등한 것이었다. 특히 전통회화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강력하고 특징적인 장점들에 대한 매우 저돌적인 실험과 훈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회화 양식을 충실하게 훈련하면서 무엇이 전통이며, 전통의 가장 유효한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실한 학습과정을 거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양화가들은 대체로 수묵과 모필 그리고 화선지의 독특한 소재를 통해 작업의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된다. 임효도 대체로 이러한 초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의 83년에 가진 첫 개인전에서 보여지 듯 그는 실경을 통한 대상의 심미적 탐색과 필운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회화 과정은 점차 논점의 축소와 집착을 통한 내면의 천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 새 번째 개인전을 이어가며 점차 이러한 내면에로의 깊이 있는 확인 작업이 지속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개인전의 부재를 “벽의 이미지” 그리고 “ 신화의 변증법” 나아가 5회 개인전에서는 “문화의 원형 찾기” 등으로 진행하고 있음에서 나타난다. 그가 전통적 소재 즉 한지와 필묵을 전통적 회화양식의 수용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문화의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모습을 읽게 한다. 그는 우리 모습의 원형을 고대 벽화나 유적 속에 농축된 시간의 축적을 통한 정신적 계승을 이어내려는 모습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전통에 대한 꾸준한 확인과정은 그의 작업이 결코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확인이 아니라 우리 미술의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며, 이는 그의 작업이 얼마나 폭넓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최근 수년 동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한지작업이 바로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인식의 연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한지란 어떤 것이냐 하는 새삼스러운 물음이다. 따지고 보면 한지에 대한 물음은 우리에게 있어 어제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삶과 함께 있어온 삶의 바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렇듯 수고스러운 수제한지를 스스로 제작하고 거기에 해답을 적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물음은 기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관심은 근대 화가들이 가졌던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처럼 매우 처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며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간단없이 한지를 소재로 하여 그림을 제작하여 왔다. 그러나 임효처럼 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확인을 거친 예는 드물다.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그가 두 개의 중요한 논점을 설정하고 작업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이라는 것 혹은 그것의 정신을 절대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효가 한지를 스스로 제작하고 닥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우수성을 발견한 것은 전통회화의 수업과정 속에서 얻어진 학습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우리 전통적인 우수한 삶의 깊이와 정신을 익혔다. 그는 이러한 전통정신을 그의 작업의 소재 즉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 진다. 그는 97년 10회 개인전에서 “한지 부조화”전을 가졌다. 그의 본격적인 한지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때의 작업은 조각 기법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반 입체적인 부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지의 강한 물성에 관심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오브제로서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지가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단순한 바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지 자신이 곧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보면 그가 한지에서 얻은 감동이 얼마나 강렬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그가 한지의 물성이 가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정서적 깊이를 그 자신의 내면과 일치시키면서 이미 오랜 시간 습득하고 있었던 전통이라는 막연한 것 혹은 전통 회화양식을 걷어내는 견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가장 전통적인 것을 통해 전통을 벗어버리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전통을 버리는 것이 곧 전통을 가장 깊이 있게 수용하고 있는 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어떻게 전통을 버리면서 전통을 수용하고 있는지 다음 전시들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99년과 2001년의 개인전에서 보듯이 “한지 우림 전”이나 “한지 드림 전”이 그렇다. 한지에 색물을 우리거나 스며들게 하는 매우 감성적이며 정서적인 작업이었다. 서양의 화가들이 해왔던 것처럼 물감을 바르거나 칠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드리거나 우린다는 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것이다. 이제 그가 과거의 산수풍경이나 벽화, 혹은 유적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현상에서 전통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감성이 곧 전통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동양적 정서와 감성의 작업은 이번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보여준 전시의 명제는 “생성과 상생 전”이다. 그의 수제한지는 이제 물성으로서의 독자적 이미지라기보다는 그 이미지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한지 스스로 새로운 생성의 우주적 바탕이 되고 있었다. 무한의 공간에서 생성하고 또 그들이 서로 얽히며 상생하는 그의 이 철학적 질문에 한지는 매우 완벽하게 해답을 던져준다. 그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마치 생명의 윤회처럼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한 사라졌다가 생겨난다. 어떤 때는 아침 햇살처럼 드러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암흑처럼 멀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드러남과 사라짐은 한지가 갖고 있는 기묘한 질감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듯 함께 존재한다. 한지의 기묘한 질감이란 그가 수없이 두드리고 누르고 만져낸 표면들이다. 거칠지만 부드럽고 부드럽지만 질긴 한지의 표정들 속에서 그의 일상의 삶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마치 숫자처럼 드러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기호처럼 얽히고 있다. 혹은 어떤 것들은 작가의 긴 호흡처럼 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한 어떤 것들은 그가 남긴 그림자처럼 아득하게 풀어져 있다. 이런 흔적들은 그가 기록한대로 자신의 기원이고 기념일이며 혹은 자신의 어떤 만남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명제들은 기실 자기 자신의 오늘의 모습을 보는 것이며, 임효가 그간의 동양화라는 전통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전통의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내는 독자적 방식은 실로 수 십 년에 걸친 전통에 대한 철저한 학습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이철량 /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 신흥고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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