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4.6 | [저널초점]
한옥마을 /'이야기’가 속살거리는 공간, 미래는 거기에 있다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4-06-12 12:16:17)
한옥마을의 현재와 미래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한옥마을은 전주를 알리고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는 중요한 문화관광 거점으로 떠올랐다. 전통적인 자산을 상품성 있는 문화 콘텐츠로 포장하고 디자인 하는 작업이 21세기 도시정책을 이끄는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전주시는 ‘한옥마을’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한옥마을에 대한 가치를 수동적인 ‘보존’에 묶어두었다면, 21세기의 한옥마을은 적극적인 투자와 디자인의 대상으로 ‘업그레이드’ 된 셈이다. 전주전통문화센터와 전주공예품전시관,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등 한옥마을을 문화관광구역으로 길러내기 위한 전략적 문화거점 시설들이 2002년 속속 개관한 뒤, 최근 2~3년 사이에 교동 한옥마을은 단시간 내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려내는데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한옥마을이 긴 생명력과 타 지역 한옥마을과 차별화 된 매력을 갖추기엔 무언가 빠져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주시가 다양한 육성계획과 투자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교동 한옥마을에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온 토박이들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한옥마을이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옥마을 정책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컨텐츠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컨텐츠와 하드웨어의 발굴을 어느 샘물에서 길러올 것인가에는 차이가 있다. 전주시 교동에 위치한 ‘한옥마을’은 시대 흐름을 따라 몇 번의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도시계획가이면서 도시 역사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온 장명수 전 우석대 총장은 그 변화의 흐름을 ‘상전벽해’의 기적으로 비유한다. 1920년대 말 당시의 중산층이 현재의 교동과 풍남동에 건축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한옥을 짓기 시작하면서 부촌을 형성하다, 1970년대 들어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쏠리면서 ‘보존지구’로 지정된다. 그리고 21세기 문화관광자원의 중추로 거듭나기까지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 변화와 이에 따른 정책적 개입이 얹혀지면서 한옥마을은 다양한 변신을 거쳐왔다. 한옥마을이 새로운 해석과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 즈음, 주로 역사적 관점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주목하고 있는 장명수 전 총장은 소프트웨어의 발굴 역시 ‘역사성’에 맞춰놓고 있다. 결국 ‘한옥마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당면해서는 그 답을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조선왕조’의 뿌리와 관련된 이목대와 오목대를 연계한 역사적 맥락 안에서 ‘한옥마을’의 문화적 가치를 매기자고 제안한다. “교동 한옥마을 자체가 갖는 역사는 그 전통이 오래되지 않고, 한옥마을 안에서 고유의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옥마을 안에서 테마를 찾자면 그 공간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뿌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장 전 총장이 한옥마을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이야기’의 보고를 ‘역사성’에서 찾고 있다면, 전북대 채병선 교수와 공공스튜디오 심심 김병수 소장은 주거문화와 주민들의 삶 속에서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쪽이다. 한옥마을 정책을 ‘관광’에서 방점을 찍어 진행한다면, 인공적이고 박제된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 채병선 교수는 교동 한옥마을이 주민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변화되고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져 온 만큼 주거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옥마을을 ‘주거문화’로 인정할 때, 정책결정을 위한 최우선의 고려 대상은 그 공간에서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주민’이 된다는 이야기. 따라서 보존과 개발을 이분법적으로 갈라 세우기보다는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옛 한옥의 주거 및 골목형태가 가장 견고하게 남아있는 리베라 호텔 뒤편은 철저히 보존하되, 나머지 공간은 보존과 개발정책을 함께 적용하자는 견해. 채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권역별 차등화 지원’으로 현실화 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공공스튜디오 심심 김병수 소장은 한옥마을 정책이 주민들과 유리되지 않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있는 공간에 정책이 끼어들어갔기 때문에 새로운 걸 만드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김 소장의 견해다. 특히 지금의 한옥마을이 자본력 있는 외부인들이 규모를 갖춘 하드웨어 중심으로 유입되면서, 주민들 역시 자기 삶과 주거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고 꼬집는다. 마을과 어울리는 건축행위와 표현행위를 갖추도록 하는 연습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한옥마을 정책이 행정 주도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주민들이 ‘보상’에 대한 만족으로 머물지 않고 작은 이벤트와 문화행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한옥마을에 대한 주민 스스로의 애착과 적극성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옥마을에서 생활의 터를 닦고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상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는 부류와 경제활동과 주거공간을 분리해 살고 있는 부류로 유형화 할 수 있다. 경제활동과 주거공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상가 주민들은 한옥마을 정책의 방향을 대부분 ‘개발’ 쪽에 기대를 얹어놓고 있다. 이들은 한옥마을을 테마파크 형태의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는데 무게를 두면서 도로와 상권 정비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외부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한옥마을의 정취와 분위기가 좋아 안착한 사람들이나 대를 물리며 이곳에서 터를 닦고 살아온 주민들은 ‘개발’의 균형과 완급조절, 문화적 시선에 대한 기대가 더 커 보인다. 각기 다른 기대와 발전에 대한 속도감을 달리 규정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중지’를 모으고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마을 주민들은 전주시의 한옥마을 육성정책이 일방통행으로 흐르거나 한옥마을 내에서도 태조로 부근이 집중 개발되는데 대한 상대적인 소외감과 불만을 안고 있는 듯 보인다. 구체적인 생활과 생계를 교동 한옥마을에 기대고 있는 주민들은 그동안 교동이 침체일로를 걸었던 만큼 한옥마을 정책을 통해 활기를 띠는 곳으로 변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옥마을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이 주민들의 생활 패턴과 리듬을 담아내는 주민 중심의 소프트웨어의 발굴에 모아진다면, 한옥마을 상가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 주변을 에워싸는 왁자하고 번듯한 하드웨어의 건립 쪽에 기대를 두고 있는 눈치다. 전주시와 도시계획 전문가, 다양한 기대를 품고 있는 마을 주민들이 한옥마을에 대한 일관된 청사진을 갖고 조력하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옥마을 정책의 가장 큰 난맥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냉소적이거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주민 중심형 소프트웨어’에 대한 유도와 협조는 결코 쉬운 과제일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서두르지 않고 마을 주민들과 전문가, 행정이 의견을 모으고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함께 모색하는 사려 깊은 정책이 한옥마을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