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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6 | [정철성의 책꽂이]
동문사거리에서 만난 시인들 3
정철성(2004-06-12 12:30:23)
3. 박형진의 「서해안 바람 2」 섬진강변의 진메마을에서 변산반도의 모항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모항의 옛이름은 띠목이다. 모항에는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이 산다. 몇 년 전 그가 손수 벽돌을 찍고 지붕을 올렸다는 흙집에 몇 사람과 함께 찾아갔다. 우리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고 마당에 나가 별을 보았다. 다음날 우리들의 일정은 내소사와 반계 유형원 유허지로 잡혀 있었다. 향기로운 전나무 숲길과 주춧돌의 모양과 높이가 제멋대로 아름다운 봉래루가 우리의 발길을 내소사로 돌리게 하였다. 또한 머리는 비었는데 가방만 무거운 우리 일행에게 반계라는 이름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런데 박형진이 한사코 반계 유허지에 가는 걸 말렸다. 차라리 우반동 입구의 점방에서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나 한 잔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의 충고가 찜찜하였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들러서 가자는 말에 나는 일행을 그곳으로 안내하였다. 말처럼 큰 사슴이 이상한 울음을 우는 농장 옆에는 서툴게 그린 화살표가 반 바퀴나 몸을 돌려 쓰러져 있었다. 유허지 입구의 채반만한 샘에는 묵은 이끼가 칙칙했다. 반계의 목소리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박형진이 내뱉고 싶었던 말을 우리는 산에 오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말과 비슷할 것 같은 시를 고르다보니 「서해안 바람 2」가 눈에 들어온다. 박형진이 같은 제목으로 쓴 두 편 가운데 하나이다. 서해안 바람은 버스도 몇번 들어오지 않는 이 외딴 동네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자가용을 불러오고 오뉴월 뙤약볕 속 비록 남의 논이지만 내가 김을 매다 땀을 들이는 저 솔밭 그늘은 자가용에서 내린 다리 흰 계집애들과 계집애들을 따라온 무쓰 바른 건달들과 계집애들의 생리대와 선글라스와 비치파라솔로 채워놓았다 밤이면 쿵쾅거리는 전축 소리와 해변의 여인이 된 다리 흰 계집애들의 속살 타는 냄새가 한낮보다도 더 뜨겁게 뜨겁게 온 동네를 휘감고 호박국에 밥 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서울 한번 가 못 살아본 나는 외상술을 먹고 애꿎은 담을 걷어차고 짐승처럼 소릴 지르며 충혈된 눈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함께 일을 해보자던 동네 청년들은 설을 쇠자 썰물처럼 동네를 빠져나가고 땅금은 땅땅 올라 서해안 바람은 버스도 몇번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콘도를 들여와서 더 뜨거운 여름을 예비하고 있고 나는 땅 한 마지기를 살 수 없고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외딴 조각밭에 잡초만 무성하고 나는 이제 밭에 가기 싫어졌다 이 시의 한 구 절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는 시집의 제목이 되었고, 다른 구절 "호박국에 밥말아 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세던" 은 산문집의 제목이 되었다. 떼어놓고 보면 애절하고 안타깝고 그리운 이 시구들은 처음부터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평과 객설스레 도색적인 비난에 가려 잘 들리지 않는다. 동네를 파괴시킨 것은 해수욕장과 콘도, 바꾸어 말하면 관광과 개발이다. 박형진은 삶의 터전이 일순간 관광지로 변하면서 원주민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간단명료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골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승용차와 거리낌없이 일탈을 즐기는 피서객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가난한대로 지켜왔던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지면서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시인의 일차적 대응은 발길질을 하고, 괴성을 지르고, 밤새 뒤척이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자명하여, 시인은 남아있던 동네 청년들과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단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생활고와 전망부재가 그들을 도시로 몰아냈을 것이다. 썰물처럼 한번 빠져나간 그들은, 명절이 되면 더러 얼굴을 비치기는 하겠지만, 다시 밀물처럼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은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콘도에 여장을 푸는 또 다른 피서객의 무리일 것이다. 시인의 절망은 여기서 한계에 달한 것처럼 보인다. 땅도 없고 땅을 장만할 꿈도 없는 농민은 바구니 속 감자싹이 시들어가는 것을 쳐다본다. 동네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밭에는 잡초가 무성한데, 틀림없이 그럴 텐데,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밭에 가기 싫어졌다"에서 나는 신경림의 「시골 큰집」 종결구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와 비슷한 울림을 듣는다. 산업화 또는 근대화의 이름으로 진행된 변화의 연장선상에 박형진의 모항이 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김용택의 진메마을도 적성댐이 들어선다면 물속에 잠기게 될 터인데, 다행스럽게 수몰을 피해 갈 모양이다. 여기 차이가 있다. 진메에 다녀간 이들이 적지 않지만 바쁜 사람이 많아 불러도 다 오지 않는다. 그런데 모항은 박형진이 손사래를 치며 말려도 꾸역꾸역 밀려온다. 박형진의 음울한 전망에는 이런 모습이 떠 오른다. 땅을 팔고 늘어난 빚을 갚고 몇푼 손에 쥔 내가 모두 낯선 사람들로 채워진 8대째 살아온 이 마을을 떠나 어린것의 손을 붙잡고 아내를 잡아끌며 낯선 새 땅을 찾아 어디론지 가는 것이 보인다 「서해안 바람 1」의 일부이다. 박형진의 시에는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개발이익의 분배나 정치적 분쟁 해결에 대한 관심은 고향과 사람을 사랑하는 시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시의 호흡을 거칠게 한다. 발목이 잠기면 기우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다. 땀 흘리며 쓴 그의 시에서 면벽의 호흡을 기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러나 박형진의 시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마을 고샅길을 비키니 차림으로 쏘다니는 것이 볼썽사나운 줄 알지만 50년 전에는 해수욕이라는 단어조차 일상용어가 아니었다. 8대조가 모항에 들어오기 전에 박씨 가문은 어디에 둥지를 틀고 살았었는가? 변화에 대한 박형진의 대응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예단함은 무의미하다. 다만 나는 박형진의 시에서 전통적 삶과 보편적 가치가 구분되기를 희망한다. 따로 더 예를 들어 살피겠지만, 욕심 없이 여유작작한 인물들이나 반드시 넉넉해서 베푸는 것은 아니었던 그들의 푸근한 인심을 그린 시들에는 시대의 제약을 넘어서는 통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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