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다. 약속한 규칙을
지킨다면 그 생김새가 어떻더라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글자의 모양에 많은
정성을 기울여왔다. 글꼴 자체가 이미지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를 전달해도 명필의 글씨는 내용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현대에는 이미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개인의 손글씨체는 의미를 잃었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디지털 글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어떤 글꼴을 쓰느냐에 따라 작게는 가독성부터 크게는 메시지의 중요성까지 좌우할 수 있다.
하루에 디지털 글꼴을 쓰는 시간을 얼마나 될까? 친구와
메신저로 잡담을 나누고, 거래처와 문자를 통해 업무를 진행한다. 워드프로그램으로
서류를 만들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는다. 아마 대개는 손으로
글씨를 쓰는 시간보다 수십 배 많은 시간을 디지털 글꼴을 활용하며 보낼 것이다. 때문에 이제 글꼴은
본연의 기능성을 넘어 개인이나 집단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심볼의 기능도 하고 있다.
2010년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로 서울시
상징서체가 등장하며 국내에서도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마케팅 전략으로써 전용서체 개발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요
대기업은 물론 지자체들도 전용서체 개발과 배포에 뛰어든 것이다. 기업과 단체, 지자체에서 만든 글꼴들은 여러 사용자에 의해 다양한 매체에서 활용되며 자연스러운 브랜드마케팅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 브랜드, 지역 이미지가 관광산업은
물론 농특산물 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전북에서도 글꼴을 활용한 브랜드마케팅은 유효하다. 전북, 전주하면 떠오르는 전통문화를 이미지화할 수 있는 글꼴,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까지 보유한 자원이 이미 우리지역에 존재한다. 바로
완판본이다. 조선 후기 한글고전소설 출판문화를 이끌어갔던 완판본은 그 내용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문화유산이다. 또한 완판본 목판에 새겨진 글꼴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만큼 개성이 있으면서도 조형적으로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활용한 글꼴 개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사회에서 제기돼 온 과제였다.
사회적기업 마당은 2013년, 글꼴개발전문업체 태 시스템과 함께 완판본을 활용한 글꼴, ‘완판본
마당체’를 개발했다. <문화저널>은 신년 특집을
통해 완판본의 가치를 되새겨보고, ‘완판본 마당체’의 개발과정과 의의를 살펴봤다.
완판본, 조선 지식산업의 중심에 서다 완판본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
완판본(完板本)이란 말은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전주를 나타내는 ‘완산(完山)’의 ‘완(完)’, ‘목판(木板)’의 ‘판(板)’, 책을 나타내는 ‘본(本)’을 써서 ‘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란 뜻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어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여기서 ‘방각본(坊刻本)’이란 말은 ‘판매용 책’을 말한다.
완판본(完板本)「명사」『문학』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고대 소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라도 사투리가 많이 들어 있어 향토색이 짙다. (표준 국어 대사전)
완판본(完板本) 조선시대 전주 지방에서 출판된 방각본(坊刻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완판본은 서울에서 발간된 경판본 판매용 책인 한글고전소설에 대비된 말로, 전주에서 판매를 목적으로 목판으로 발간한 한글고전소설을 일컫는 말이었다. 판매를 하기 위하여 일반인들이 간행한 책을 방각본이라고 하는데 이 방각본의 원류는 서울에서 선조 9년(1576년)에 간행된 <고사촬요>(攷事撮要)로 알려져 있다. 완판 방각본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판된 판매용 책을 말한다. 1714년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시작으로 1930년대까지 서울, 경 기, 전북 태인, 대구와 더불어 많은 책이 발간되었다. ‘완판 방각본’이란 용어를 정의하자면 ‘판매를 목적으로 전주에서 찍은 옛 책’을 말하는 것이다.
기술 환경 사람의 삼위일체
완판본 옛 책이 발달한 배경은 전라도 전주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에 말미암는다. 호남의 수도인 전주는 이러한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었기에 인쇄문화가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전주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호남관찰사가 머물던 완산감영이 위치한 곳이었다. 전라감영이라 일컬어지는 완산감영(줄여서 완영이라 부름)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으로 관리나 선비들이 주로 보는 책인 완영판(完營板) 책을 만들게 된다. 정치, 역사, 제도, 사회, 어학, 문학, 유학에 관한 70여 종류의 책이 완산감영에서 간행되었다.
전라감영에서 만드는 완영판이 출판산업의 근간이 되었다면, 판소리는 그 내용이 되었다. 18, 19세기를 거치면서 판소리는 특정한 계층만이 즐기는 예술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계층이 즐지는 대중예술로 성장하여 소설 독자층의 확대에 기여를 하게 되고 소설의 상업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전라도 지역의 중산층들은 벼를 재배하고 한지를 제작해 돈을 벌었고, 상업에 종사하여 부유층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일거리가 필요하게 되는데, 마침 전주에서 유행하던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 적벽가’ 등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이를 출판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발달한 한지산업도 역시 완판방각본이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완산감영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한지를 제작하였다. 한지의 제작은 자연히 서적을 발간하는 일과 관련되어 중앙정부에서 필요한 서적을 간행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469-1545년)에도 주요 종이 생산지로서 경상도 영천군, 밀양군, 청도군 그리고 전라도의 전주부(全州府)가 나와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 18세기)와 <대동지지>(大東地志, 1864년)에는 조선시대 전주의 한지가 최상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서삼경>과 같은 큰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종이가 필요했고, 전주나 대구에서는 종이가 풍부하여 방각본으로 책을 찍을 수 있었다. 한글고전소설의 경우, 완판본은 84장본이 많은 반면에 경판본은 20장에서 30장본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수지를 맞추기 위한 출판이었지만 한지의 발달이 소설의 분량을 늘이는 계기가 되었다.
발달한 전주의 시장은 완판방각본의 자연스러운 유통처가 됐다.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시대에 전국 3대 시장 중의 하나이다. 남문시장을 중심으로 방각본을 찍어 판매한 책방은 ‘다가서포, 문명서관, 서계서포, 창남서관, 칠서방, 완흥사서포’ 등이다. 아중리에 있던 ‘양책방’을 제외하고 모든 책방이 남문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면 남문시장이 매우 큰 시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을 기반으로 방각본이 탄생했다. 방각본의 종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 교육용 도서로는 <천자문>, <사자소학>, <이천자> 등이 발행되었고, <동몽선습>, <명심보감초>와 같은 아이들의 수신서가 발간되었다. 둘째, 생활백과용 도서가 많이 발간되었다. 이는 한자 공부를 위해 필요한 ‘옥편’, 상례와 제례에 필요한 도서, 한문과 한글로 편지를 쓰는 법, 가정에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의학서, 공문서에 필요한 이두문 작성에 관한 책,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한 도서, 길흉화복에 관한 책 등이 발간되었다. 셋째, 유교서적이다. 특히 사대부들의 필독서인 <사서삼경>은 방각본으로도 많이 발간되었다. 넷째가 바로 완판방각본 소설이다. 소설의 비율은 전체 방각본의 40%를 넘는다.
방각본을 주로 소비한 것은 양반들이 아니라 평범한 양민들이었다. 그들의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고전소설과 교양서들의 출판을 유도했다. 판매용 책의 출판은 지식에 대한 개화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방각본의 출현은 근대 시민사회로 가는 촉진제가 되었다. 방각본 한글고전소설을 많이 발간한 것은 개화기 시대에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이며, 이 계층은 넓은 호남평야를 일구는 경제적 안정을 얻은 농민들이나 상인들이었다. 결론적으로 호남지방의 농토를 배경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은 서민층과 상업으로 여유를 갖게 된 서민층의 문화적 욕구에 맞게 간행한 것이 완판 방각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의 신분제를 없애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과 서울에서 만든 경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인다. 경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쪽수가 16장에서 38장본까지 있으나 대체로 20장본과 30장본이 대부분이다. 완판본은 73장본, 84장본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같은 <춘향전>일 경우, 경판본은 20장본인데 비하여 완판본은 84장본이다.
쪽수가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책을 발행한 목적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즉, 경판본은 대중들에게 흥미를 위해 판매를 목적으로 발행한 책이었고, 완판본은 당시 전주 지역에서 유행한 판소리의 사설이 당시 민중들에게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소설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작하여 판매한 책이었다.
완판본과 경판본은 둘 다 목판본이지만 글꼴이 달랐다. 경판본은 ‘궁체’의 하나인 흘림체(초서체)를 쓴 반면, 완판본은 민체로서 정자체(해서체)로 쓰였다. 전주의 완판본은 <구운몽>, <장경전> 등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서체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반듯이 쓴 정자체를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글자체를 ‘민체’라고도 부르고 있다. 정자로 글자를 새긴 이유는 소설 한 권을 다 읽으면서 우리 한글을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발간 목적은 한문소설과는 아주 다르게 흥미와 교훈을 주는 것은 물론 한글교육을 위한 책을 발간하는 데 있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 <언삼국지>의 첫페이지에 ‘가갸거겨’로 시작하는 자모음표인 반절표가 붙어 있어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소설 책 한두 권을 다 읽으면 한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경판본 <춘향전>은 한문을 번역한 문어체이지만, 완판본은 우리 말투의 구어체 이야기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완판본 <열여춘향슈졀가>의 특징은 일상 언어인 구어체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전라도 방언이 많이 사용된 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완판본 <열여춘향슈졀가>는 낭송 중심으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전소설이 낭송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고전소설의 제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완판본 고전소설의 대부분은 그 제목이 ‘열여춘향슈졀가라, 별츈향젼이라, 심쳥가라’ 등으로 되어 있다. ‘열여춘향슈졀가, 별츈향젼, 심쳥가’라고 하면 되는데 ‘-이라’를 붙인 것은 이 소설이 낭송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판소리가 없었던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제목에는 ‘-이라’가 사용되지 않았다.
책은 지식과 문화를 전수하는 매체이다. 전라북도 전주는 조선시대에 지식 정보화와 지식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그 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완판본이다. 완판본 책들은 우리에게 화려했던 방각본의 역사와 문화를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은 서울의 경판본과 더불어 후대의 소설 발달에 큰 공헌을 해냈다. 이후 활자본 소설은 물론 한국의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전주가 소설문학의 원천지 역할을 한 것이다.
목판에 잠든 글꼴, 디지털로 깨어나다 완판본 마당체 제작일지
조화로운 글자 숲의 구현
새로운 글꼴을 개발할 때 항상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나무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냐?’ 아니면 ‘숲을 조화롭게 할 것이냐?’ 이다. 특색 있는 자소의 모양을 가진 새로운 글꼴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고 이를 구현하다 보면, 처음 한두 글자의 디자인 도안부터 전체 글자의 디자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대개 한두 글자의 도안이 전체글자로 확장되는 단계에서 조화로운 ‘숲’을 위하여 초기에 구상된 디자인의 희생과 절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캘리그라피’처럼 한두 글자 또는 짧은 문장 하나를 디자인하는 것과 최소 2,350글자(완성자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