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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공원>역사의 기록, 충무공원
관리자(2005-06-13 15:57:34)
역사의 기록, 충무공원 | 이갑상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이사장 세인들은 뜬금없이 정읍의 한복판에 무슨 연고로 충렬사가 있을까 하고 무척이나 궁금할 것 이다. 그렇지만 그 연고를 아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몇 가지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자한다. 정읍에서 가장 양지바르고 전망 좋은 곳에다 일본인들은 사쿠라를 줄지어 심고 지네들 신당(신사)을 지었다. 수십 년간 조선을 지배 하면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고 정읍의 친일파들은 일제의 영원무궁을 기원하며 그들의 살아있는 신을 향해 동방요배를 하였다. 그러다 천우신조로 조선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고 세상은 변했지만 개벽은 되지 않았다. 친일파들은 반공주의자로 가면을 바꿔 쓰고 다시 민중을 재배하였는데 그 한편의 방법으로 애국심의 화신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동원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1589년 12월 정읍현감으로 부임하여 1591년 2월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영전하기까지 1년4개월을 재임하였다. 짧은 재임기간 이었지만 선정을 베풀어 이를 흠모하는 이가 많았다 한다. 1949년 8월 일제가 물러 간지 4년 후 정읍의 유지(?)들이 충렬사 창건 기성회를 구성하여 학생 및 각계에서 성금을 모아 사우 공사를 하였는데 기성회 회장은 과거 행적을 알만한 이는 모두 알고 있는 박명규 씨였다. 6.25로 공사가 지지부진하다가 1963년에 완공하여 장군 탄생일인 4월 28일에 영정을 봉안 하였다. 정읍 사람들은 충렬사와 충무공원을 따로 부르지 않고 충렬사공원이라 부르는데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비암 박준승(1866-1921) 선생의 묘소가 충렬사 오른편에 위치해있고 뒤쪽에는 정읍국악원과 100년 역사의 필야정(활터)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시민들이 산책하면서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도록 가꾸어 놓은 체육공원으로 정읍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구인 선양루 옆은 꽃과 나무 아름다운 분수로 꾸며진 야외 공연장으로 조성되어 간간히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며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에 혹은 유치원에 등교시킨 젊은 댁들의 꽃놀이의 명소이기도하다. 다듬고 가꾸어야할 정읍의 아름다운 공원중의 하나이지만 정읍의 어느 공식 기록에도 충렬사공원이 일제의 신사터였다는 기록은 없다. 후손들에게는 치욕스럽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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