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
삼단같은 머리채 보고 싶으셨겠지
관리자(2005-08-09 10:22:40)
삼단같은 머리채 보고 싶으셨겠지
이 「첫 사랑」은 신석정 시인의 시집 <슬픈 목가>에 실린 1939년도 작품이다.
이시가 세상에 나올 무렵, 나는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자라서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1954년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열 여섯 불밤송이 나이가 아니었는가 그렇게 더듬어진다.
이 시집은 단기 4287년(1954) 6월 15일 서울 대지사에서 발행됐는데 내가 어느 계절에 서점을 찾았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값은 100환, 지금 생각하면 그 책값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기억할 수 조차도 없다. 어머니가 20리밖 전주로 열무를 팔고 돌아온 광주리나 뒤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이제는 어머니가 안 계시니 저승에 대고 손나팔로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먹거리가 걱정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책을 산다는 것은 사치스런 고민이었다. 그 후 석정 시인을 처음 뵈온 것은 완주군 소양 어디, 홍시 같은 햇덩어리가 자운영밭을 더욱 밝게 물들이고 있던 노을녘이었다.
고등학생인 촌뜨기로서 감히 무슨 말을 올렸는지 그런 것도 까맣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날 김민성 시인의 손을 잡고 따라 간 자운영밭에는 후에 시인이 된 신찬균과 여학생 몇이 둥그렇게 앉아 수줍은 미소만 날렸던 풍경이 어슴푸레 떠오를 뿐이다.
내가 때때로 혼자 읊던 이 시를 공식석상에서 낭송한 것은 2003년 어느 날 완주군 동상면 여산재 준공식에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준비되지 않는 상태였는데도 분위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행사가 끝난 얼마후 JTV전주방송 백낙천 사장을 만났더니 자신도 석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데 「첫 사랑」은 못봤다면서 감명 깊게 들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함평이 얼마나 먼 곳인지 가늠도 못한다. 그리고 시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선보고 온 결과가 어떠했는지 그동안 누구에게도 물어볼 처지도 못되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시인으로선 삼단같이 긴 머리채를 지닌 색시가 몹시 보고 싶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손으로 짜낸 무명처럼 순박하고 참한 자기처럼 때깔이 곱더라던 함평 색시는 이 시대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여인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석정 시인이 품고 있었던 영원한 고향의 향기였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밤사이 선본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석정 시인은 어느 문설주에 귀를 대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을까 궁금하다.
지금 같으면 용기를 내어 시인에게 여쭤볼 수도 있었을텐데 저 나라로 가신지 30여년이 넘는다. 함평 색시도 청산 어디 깊은 골에 잠들고 계시겠지.
김남곤 |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과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와 전북일보 전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