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
‘풋바심’과 ‘올기심니’, 그 애틋한 추석 달맞이
관리자(2005-08-09 10:26:34)
‘풋바심’과 ‘올기심니’, 그 애틋한 추석 달맞이
점동이, 명선이, 현순이 누나,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란 골목길에 서서 ‘올기쌀’ 꺼내 먹으며, 손가락 셈으로 추석을 기다리던 그 때, 그 고소한 ‘올기쌀’이 즐거운 ‘군입종’1)이었다. 그 땐 몰랐다, ‘올기쌀’이 왜 추석 무렵에 내 ‘봉창’ 속에 들어 있어야 하는지를.
민족문화대백과 사전도 떠들어 보고, 민속학 관련 책들도 들추다 보니, 그 ‘올기쌀’이 ‘올기심니’2) 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조상님 음덕으로 평안하다고 여기던 시절, 처음 거둔 곡식은 먼저 조상님께 천신하는 게 도리라고 여기던 시절, 나락이 아직 다 여물지 않은 바로 그 무렵, 다 여물지 않은 나락을 손으로 훑어 ‘오쟁이’3)에 담아 와서, 나락 째 솥에 볶거나 쪘다가 그것을 말려 다시 절구로 찌어 놓은 쌀을 ‘올기쌀’이라고 한다. 이 쌀은 손 없는 날을 받아 윗목에 제사상을 차려 조상신께 천신(薦新)4)하고 나머지 농사도 잘 마무리 되게 해달라고 비는 데 소용된다. 이런 일을 전라도 사람들은 ‘올기심니’라고 한다.
소양, 동상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지나는 말로 ‘올기심니’를 여쭈니 참 신기하게도 책이 따로 없다. 어쩌면 그렇게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로 풀어내시는지. 책 속의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 동상 할머니 이야기는 산 이야기다. ‘아이, 정필노매, 이 냥반이 올기심니를 물어보네, 참말로, 지금은 올기심니 허는 사람 한나도 없어. 믿는 사람덜언 믿는 사람덜끼리 통헌게, 그나지나 나 살아 생전에 올기심니 번이나 헐지 몰르지만, 올 명얼에는 추석날 올기심니 한 번 히야겄어. 우리 만수는 그렁거 참 좋아 혀. 장남이라 달릉개벼.“
그러다 말고, “할머니 그나지나, 풋바심은 뭐래요?”, “어, 그거는 음력 칠얼이 먹을 것이 능거여.” “할머니, 개미 지나가는 자리까장은 못히도 조깨 자세히 말씀허시야 지가 알어듣지요.” “머더개, 그렁거 알어서 얻다 쓴댜.” “우리 조상님들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요즘 아그들이 뭣을 알겄어요. 그렁게 잘 배워서 냉기 놔야 고 싸가지 없는 것들, 우리 조상님 고생허신 이야기 철들어 알 잖겄어요?” “그려, 그렇지. 펭난 지내고 말여.” “할머니 펭난이 머래요?” “응, 해방된 것을 옛날이는 펭난, 평난(平難)이라고 어.” “아, 아, 그 고만요잉.” “펭난 지내고 참 심들었어. 버릿고개는 알겄고, 음력 칠얼이 미처 여물든 않고 먹잘 것이 없잉개, 풋놈 미리 먹는단 뜻여. 풋바심이 그거여.” “버리도 떨어지고, 지꺼리도 없응개 논이 가서 나락 한 뭇 비어다가 홀테로 훑어서 솥이다 쩌서 말려갖고 도고통으다 찌어서 그러먼 올기쌀, 더 풋것은 싸래기여, 싸래기는 맷독으다 갈어서 죽을 쑤어 노먼 그것은 풋바심.” “해거름 무렵으 올기심니를 허는디, 그것 끝나믄 윳찌리5) 불러다 다 노나 먹어.”
참 곰살가운 이야기들이다. ‘올기쌀, 올기심니’6)의 ‘올-’은 재밌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올-’은 ‘늦-’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철보다 일찍 익은 열매는 ‘올밤, 올대추, 올벼, 올콩’이고 철 늦게 익은 열매는 ‘늦밤, 늦대추, 늦벼, 늦콩’이다. 어떤 글에선가 ‘늦깎이’의 반대로 ‘올깎이’라는 말을 사용한 예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도 ‘올-’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분명한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이러한 단어는 기억해 두었다가 적절한 상황이 주어지면 의도적으로라도 사용해 봄 직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추석은 아직 농사도 끝나지 않을 때 지내는 것일까? 여기서 또 잠깐 아는 척 좀 해 보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추석의 다른 명칭인 ‘가위’7)의 유래는 삼국사기의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신라본기 제1 유리니사금 9년조(新羅本記 第1 儒理尼師今 9年條)’에 ‘길쌈내기’, ‘회소곡’과 관련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8) 참 오래된 명절이다. 유명한 고려 가요 동동(動動)에도 ‘팔월 보르 /아으 嘉俳나리마 /니믈 뫼셔 녀곤/오 嘉俳샷다/아으 動動다리’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추석 명절이 있었으며, 조선 시대에도 년중 행사인 설, 한식, 중추, 동지 가운데 설과 동지는 혹 지내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한식과 중추는 성대히 치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중추를 더 풍성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것으로 보아 추석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고유 명절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 무렵만 되면, 추석이 다른 해보다 빨라 제수용품 값이 오른다는 류의 기삿거리를 종종 본다. 실제로 대부분의 추석은 곡식을 추수하는 시기보다 빨라 곤란을 겪는 수가 많다. 엄밀한 의미에서 추석은 추수감사를 드리기에는 절기가 너무 이르다. 그도 그럴 것이 고구려 동맹(東盟)이나 예의 무천(舞天) 등의 추수감사제는 10월에 치러졌다. 음력 시월이면 농사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기이어서 몸도 마음도 가장 풍요롭고 한가한 때이다. 농경 사회에서 칠월 백중은 ‘호미씻이’, ‘술멕이’9)라고 하여, 농사를 일단 정리하는 시기이다. 해서 이날 동네잔치를 열고 농사지은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러니까 추석이 있기 바로 한 달 전에 이 행사가 치러진다. ‘술멕이’ 이후에는 늦여름, 가을볕에 씨알이 튼실하게 익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추수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다. 합리성으로 따진다면, 추수까지 마무리 된 10월 즈음에 추수감사제가 있어야 하는데, 왜 하필 팔월 보름에 추수감사제를 지내는 것일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10)추석 또한 결국은 살아남은 자의 역사인가.
‘올기쌀’, ‘올기심니’ 그리고 ‘풋바심’ 그 애틋한 추석 정서가 불과 30년 전 이야긴데, 마치 호랭이 담배 먹던 이야기처럼만 들린다. 까닭이야 어떻든, 돌아가시고도 눈 번히 뜨고 계실 조상님들, 살아서 귀한 피붙이, 이웃사촌들, 그 따뜻한 ‘훈짐’들을 이번 명절에는 지나칠 만큼 즐겨 볼 일이다.
| 언어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