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
함께 자라는 우리
관리자(2005-08-09 10:27:14)
함께 자라는 우리
엄마들 손에선 신기하게도 무엇이든 참 잘 자란다. 아이들도 잘 자라고, 화분에 담긴 화초마저도 엄마들 손에선 잘 자란다.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눈에 띄게 키가 자라고, 윤기마저 도는 것이다. 엄마들은 그 부드러운 손길 하나에도 강한 생명력을 전해주는 어떤 마법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아직 엄마가 되지 못했다. 무엇을 책임감 있게 길러본 적이 없는 그저 평범한 아가씨다. 그런 내게 잘 길러달라며 엄마들이 맡긴 보물들이 있다. 초롱초롱하면서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작은 입술들, 오물조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작은 손가락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호기심이 흘러넘치는 엄마들의 작은 보물들은 바로 우리 반 아이들이다.
나에게 소중한 어린시절을 맡긴 아이들을 바라보면 새삼 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첫 발령 이후 같은 학교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초보교사지만 어느 새 내 손을 거쳐 간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뿌듯하다. 그런데 아이들 수만큼 또 나의 손을 거쳐 간 많은 친구들이 있으니 창가의 터줏대감 화초들이다.
학년 초가 되면 각 교실에는 풋풋한 아이들 모습만큼, 그 아이들 수만큼, 다양한 화분들이 교실 창가를 빼곡히 채우곤 한다. (학년 초 마다 화분 사달라는 아이들의 성화가 지겹다는 어머니도 계실 테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바뀌시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갓 입학한 1학년들처럼 예쁘게 이름표까지 달고 창가에서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딱딱하게 표현하면 관찰 시설물이요, 정답게 표현하자면 우리 반 만의 작은 정원인 셈이다. 단지 교실을 예쁘게 꾸미자는 환경미화 차원에서 창가에 화분을 놓는 것은 아니다. 1년 동안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 특성을 관찰하면서 과학 공부도 하고, 작지만 강인한 식물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도 느껴볼 수 있다. 또 끝까지 잘 키워야겠다는 책임감도 길러주고, 공기정화까지 해주니, 1석 5조라 할 수 있겠다.
부끄럽게도 선생님이 되기 이전까지 나는 식물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익숙한 꽃 이름과 계절에 먹어 본 과일 말고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꽃집 앞만 지나쳐도 그 이름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스킨답서스, 호야, 페페로미아, 마리안느, 스파트 필름, 만냥, 천냥금, 신고니움, 베고니아, 페츄니아, 시클라멘, 쿠페아, 가랑코에, 로즈마리, 관음죽, 아이비, 꽃치자, 동백, 봉숭아, 제라늄, 강낭콩, 수세미, 고추, 방울토마토, 테이블 야자…… 이름만 들어도 이젠 그 모양과 색깔, 음지식물인지 양지식물인지, 물은 얼마 만에 주어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더불어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 화단의 식물들, 현장학습 간 들판에서 보는 모든 식물들, 동화 속에 등장하는 야생초까지 관심의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출근길에도 새로운 꽃이나 나무가 보이면 그 이름이 궁금해지고 멈춰서 관찰해 보고 싶어진다.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더 알고 싶은 식물들이 늘어가고, 작은 야생초 이름 하나라도 새로이 알게 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이렇게 이름이 있고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왜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하고 살아왔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과 함께 실과 시간에 배웠던 꺾꽂이, 포기나누기로 화분 수도 늘려보고, 아이들과 새싹이 돋는 것도 관찰해보고, 열매도 잘라보고 씨앗도 받아내면서 우리의 작은 정원에서 1년 내내 크고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식물도 칭찬을 받으면 더 잘 자란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표현은 못하지만 우리들처럼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 더 튼튼하고 예쁘게 자랄 수 있다는 말을 해주자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화분으로 달려가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잘 자라라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너무나 예뻐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 소중함을 깊이 느끼면서 아이들도 작은 행복에 빠져든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분담 1위도 바로 꽃물주기이다. 화분받침에 물이 살짝 고이도록 물을 주고, 화분과 잎사귀도 닦아주고, 죽은 잎사귀 들을 정리해주는 것이 당번이 하는 일이다. 식물마다 물주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이전 당번이 다음 당번에게 그 사실도 꼭 일러준다. 시클라멘은 잎사귀나 꽃에 물이 닿게 주면 안 되고, 쿠페아는 매일매일 물을 줘야하고, 호야는 이틀에 한 번씩, 난초는 사흘에 한 번씩 주고, 산세베리아는 일주일에 한 번만 줘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물을 잘못 줘서 행여 죽기라도 하는 날엔 다른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화초의 목마름을 모른 체 했다고 또는 너무 많이 줘서 죽어버렸다는 원망을 듣지 않으려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한 아이는 자신이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죽게 된 화초에게 아쉬움 때문인지 계속해서 물을 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뿌리가 살아있었던지 다시 예쁜 싹이 솟아올랐다. 아이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곧장 내게로 달려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고 반 전체가 모두 기쁨을 함께 나누며 그 화초에게 더욱 각별한 애정을 쏟아 주었다.
이제 곧 여름 방학이다. 방학이 되면 우리 학교는 한 곳에 각 반의 화분을 모아서 함께 물을 준다. 그렇게 길러서 개학날 다시 각 반으로 보내면 다시 아이들이 키우게 된다. 도시 학교 아이들은 숫자가 많은 관계로 집으로 가져가서 방학 동안 정성껏 길렀다가 다시 2학기 때 가지고 온다고도 한다. 방학 준비가 끝난 교실. 화분이 없는 창가는 너무나 쓸쓸해 보인다.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그 빈자리를 보면 화분 속 식물들도 그간 우리와 함께 공부하고 생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교실에서는 아이들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자라고, 식물들도 자라고, 더불어 내 마음도 자란다. 부디 100년만의 더위라는 올 여름, 화초들도 우리 아이들도 씩씩하게 더위를 이겨내고 2학기에 더 푸르른 모습으로 함께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황혜선 |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성덕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