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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 |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
관리자(2005-08-09 10:31:25)
저 홀로 깊어 흐르는 강, 도저(到底)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 (윤순례 지음, 민음사 펴냄) 느림과 낯설음의 미학 홀로 여행길에 오른 여인의 차가우면서도 불꽃같은 삶의 여정이 도저한 깊이로 홀려 있는 소설. 우리 시대 뜨거운 풍경을 청량한 우울과 서늘한 그늘로 가린 윤순례의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이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200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란 제하가 주는 화려함 대신, 그녀의 소설은 봄과 여름, 간극의 계절 어느 중간에 시리지도, 뜨겁지도 않은 강줄기로 다가왔다. 그림으로 말하면 무아농염(無我濃鹽), 특정한 주제가 필요치 않은 짙은 농담의 채색. 자극적인 글쓰기를 지향하는 요즘 작가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내밀한 조각 솜씨를 지녔다. 윤순례의 소설은 깊다. 차갑고 옹골차 쉽게 빠져 들지 않는다. 때때로 일어서는 거부감, 윤순례 특유의 느림으로 다가와 일정한 깊이로 머문다. 또한 꾸미지 않은 일관된 문장으로 삶에 대한 응시, 거기 바라보는 끝 장려한 서사로 남는다.   때로 지겹도록 느림이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는 중요한 역설과 실험, 낯설음 앞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소설의 힘은 선량함에 있다.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우울과 그늘 한가운데 선량한 원죄의식으로 움츠러들게 하는 힘, 어느 순간에서는 전율과도 같은 공포감으로 지배한다.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공포감, 차분히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곤두세우는 그녀의 힘은 따스하다. 그런 후, 윤순례는 아득한 메아리를 남긴다. 가슴 더운 이웃들은 이 말이 그녀의 지순한 마음인 줄 안다. “내게서 나오는 소설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온기를 전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설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삶이 아늑하고 신비롭고 매혹적인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먼 곳을 향한 내면의 응시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으로 ‘제29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윤순례는 196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제18회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여덟 색깔 무지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200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설 부문 신진예술가상를 수상한 발군의 신예이기도 하다. 80년대 이념적 편향성이 함몰된 후, 90년대 문학의 암흑기를 견뎌 온 그녀는 2000년대가 지향하는, 문학으로써 여성 문학의 편향적 고집을 꺾은 대표 세대로 꼽힌다. 시류를 거스르듯 윤순례의 문장은 소설 전반에 ‘우화적인 설정, 느림과 평온의 문체적 형식과 극명함’이라는 요소, 그리고 ‘내적 고통의 우울에 귀의한 고고한 기린의 시선’으로 일관되게 흐른다. 평론가 김화영은 “윤순례는 자극성이나 독성이 없는 천연섬유를 짜듯 글을 쓴다. 오늘날처럼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생명만은 진짜여야 한다는 천진함과 고집스러움이 오히려 아방가르드적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우리 문학의 영원한 딜레마, ‘우화적 설정’이 윤순례의 소설에서는 ‘공감의 토대’를 구축하면서 보편적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욕망, 권력, 배타적 생래현상을 평범하고도 매력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격렬하지 않은 초절제주의자의 삶의 양식은 개별적 방관자인 동시에 불온한 문제의식을 지닌 참여자이기도 하다. 거기다 소설 속 캐릭터는 독특한 파장을 그리며 다가온다. 일정한 규정과 형식, 모순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모순, 혹은 배타적인 품성을 유지한 채 평범하지 않은 평범인으로 그리고 있다. 수많은 열대어들이 노니는 어항은 내 인생 어느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깨어지게끔 예정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본문 28쪽) 여성운동의 퇴행적 진보 앞에, 윤순례 문학의 이데올로기는 현대 여성이 직시하고 있는 삶의 권태와 무기력, 가부장권 내에서의 저항과는 무관하게 여성성의 추구를 내면 깊이 감추고 있다. 그 같은 존재 가치가 러시아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순박한 이상향과 닮아 있다. 정치적 목적을 피탈한 피지배 계급의 낮은 목소리. 분명한 것은 윤순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기구한 운명적 요소’가 독특한 삶의 관습을 보여 주면서 독자의 관심을 한껏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단언하건대 윤순례의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은 은은한 숯잉걸의 온기가 흐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건조한 생활양식에서 오는 습관화된 일상의 정밀한 재현이 아니라 모순과 역행, 가출과 집착이라는 낯선 환경을 통해, 불변의 평온함을 권한다. 따라서 일상의 군더더기 없이 다가오는 청량함이, 그것이 불러오는 낯설음이 정작 낯설기도 하거니와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미결의 난제이기도 하다. 녹차를 마시려고 다기에 물을 부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어. 처음에 설마 다기 안에서 나는 것일까 싶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히 들려오더라구. 찻잎 펴지는 소리. 바람이 배롱나무 잎사귀를 스치듯 미세했지만, 내 몸은 요동을 치며 그 소리를 듣고 있었어. (본문 51쪽) 윤순례의 소설은 한 번씩 ‘수필’의 우물을 길어 올린다. 난해하지 않으면서 동어반복적으로 작가의 분신을 작품 곳곳에 포진해놓음으로써 자전적 주제의식을 표방하고 있다. 소설이 떠나는 항해는 간혹 풍랑를 동반하지만, 어느 곳에라도 단절되거나 좌초되는 일 없이 고집스레 이어진다. 또한 거친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알레고리를 딛고 순환의 은유를 즐긴다. 특히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점에 관계없이 모두 ‘나’의 변신이거나 ‘나 아닌 나’, ‘내 안의 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인칭 시점’을 통해 작중 인물의 심리상태와 행동반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경지는 높다.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작중인물로 화하여 직접 자신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대범한 발상법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만큼 호소력이 짙다는 말일 것이다. 이 소설에는 3가지 유형의 작중인물이 등장하는데 분명한 것은 각 캐릭터 마다 직설적이고도 지극히 내밀한 체험을 전개하고 있다. 그 자체로 작가의 대담한 폭로가 엿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은 ‘소설 창작 모티프’에 관한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작품의 깊디깊은 세계가 오랜 꿈에 젖어 있는 숙면의 풍경을 동반한다. 또 다른 윤순례 소설의 힘은 ‘정직성’에 착안한다. 단지 여성 특유의 섬세성을 살리면서 인간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작가적 신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삶의 면면에서 우러나는 진지함과 신뢰, 정직성을 통해 이 시대의 모순을, 현 시대를 묘사하는 다변적, 다혈질한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다. 그래 깊숙히 박힌 글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말들의 아우성이야. 몸으로 드러낼 수 있으면 그것들의 존재조차 무의미해져.(본문 52쪽) 윤순례의 소설은 ‘나’를 폭로하는 서사가 수없이 많은 강을 이룬다. 윤회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저 도저한 운명과 질곡의 강. 그 명징함이, ‘허구의 세계는 체험의 세계보다 더 적나라하고 더 쉽게 이해 될 때가 있다. 실제 사건을 소설의 창을 통해 세상에 내비치게 한다면 그것보다 더 구차하고 역설의 힘을 잃게 되는 것도 없다’라고 아주 어렸을 적 배움에 가서 닿는다. ‘느림과 평온의 문체적 형식과 극명함’이라는 운명을 예감하는 윤순례의 소설은 과연 우리 현대 문학사의 새로운 소통의 낯설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굳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역사를 되돌리지 않아도, 순수한 ‘나’의 체험을 통해 모든 텍스트를 가능케 한다.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이 나르시시즘에서의 ‘나’라는 주제의식에 함몰되어 있다면 윤순례는 사색 깊은 존재철학의 ‘실존성’과 ‘내적 고통의 우울에 귀의한 고고한 기린의 시선’의 예지력을 갖춘 소설가인 것이다. 그녀의 작가세계를 긍정한다. 소설의 언어적 시공, 서사의 저편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은 3막으로 구성된다. 아내, 남편, 곱추처녀, 이 세 사람의 삶을 1인칭 화법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각각의 상대역을 맡은 허관, 602동 남자, 카센터 정비사 종하가 등장한다. 1막은 아내의 이야기다. 아내는 시어머니와 거짓으로 가졌던 아이를 602동 남자로 인해 잃게 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행선지는 용두도의 한적한 절간. 몇 해 전 절에서 만난 적이 있는 목수 ‘허관’을 찾아서다. 허관은 아내에게 정신적 기둥 같은 존재다. 자신을 떠받혀 줄 수 있는, 그러나 그마저 찾을 길이 없다. 2막은 남편 이야기다. 아내가 떠나고 없는 넓은 아파트에 남편은 페르시안 고양이 ‘총총’과 함께 남아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으나, 신경 쇠약과 생식 능력의 부재만큼은 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다. 아내가 낳은 것처럼 꾸며 몰래 아이를 입양하려는 어머니의 계획 앞에서도 무기력했던 남자는, 그 모든 상황에 지친 아내가 우연히 집을 잘못 알고 찾아든 602동 남자를 빌미로 거짓 유산을 꾸며 냈을 때도 방관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기르던 고양이 ‘총총’이 602동 남자의 딸을 무는 사건이 일어난다. 남편은 이를 기회로 602동 사내와 화해를 시도한다.   3막은 곱추처녀 이야기다. 남자(남편)의 어머니인 ‘성북동 안방마님’ 댁에서 요리를 하는 할머니의 소개로, 남자 혼자 남은 집에 가정부로 들어간다. 페르시안 고양이 총총을 보살피는 것이 그녀의 주요 일거리다.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스무 해를 산 곱추처녀는 “너는 애비도 없고 에미도 없다. 그냥 내 딸이려니 해라”라는 할머니의 말에 타고난 신체적 결함 따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담담하게 살아간다. 카센터 앞에서 딱정벌레 모양의 자동차를 발견하고 정비사 종하를 만나게 된다. 그런 곱추처녀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총총의 임신, 도둑고양이의 씨를 품어 온 것이다. 곱추처녀는 총총에게 최후의 성찬을 베풀고는 종하가 이별 선물로 준 차를 몰고 남쪽 항구 도시로 떠난다. 어쩌면 어머니일지도 모를 ‘이모’가 살고 있는 명월도로 가는 배에 오르며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윤순례의 소설 전략은 이미지를 통한 가상세계들의 조합으로써 하나의 서사 체계를 이룬다. 이 전략은 새로운 종류의 서사적 사유를 확장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각기 다른 세 가지 가상공간은 서로 단절된 문을 열고 하나의 4차원 공간으로 재배치되는 전략적 서사체계의 획을 긋는다. 이미지의 역할은 소설 형상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매개체이다. 엄밀히 말해 소설이라는 소통 양식에 혁명적 블로그를 제공한다. 소설이 서사체계를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했을 때, 보다 탐미적으로 보완될 수 있는 자장으로써 ‘이미지’는 현실과 환타지 사이에서 새로운 파장을 가져다준다. 파장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현실은 언어적 소통에서 완전한 허구의 세계로 전이되고, 가상의 현실은 극명한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윤순례의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해도 그 역량 안에서 충만하다. ‘서사’라는 소설의 기본적인 소통 구조에 대한 불변의 믿음, 이는 소설의 영원성만큼이나 유효하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는 법이다. 아내는 그것이 무서워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피해 빙빙 언저리만 돌고 있는 것인가? (본문 113쪽) 맑은 것이 모두 깨끗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순도 높은 맑음이 더 헐벗어 보일 때가 있다. 『아주 특별한 저녁밥상』은 그러한 관례를 벗어던진 듯 오묘하다. 낯설음이 당황스럽지도, 충격적이지 않도록 심사숙고한 흔적은 작가의 깊고 높은 역량을 말해 준다. 오래된 과묵함과 진지함은 이 시대 문학 정상에 갈음될 은총이기도 하다. 서철원 | 소설가. 전북민예총 편집위원와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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