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5.9 |
섭죽의 달근·고소한 맛
관리자(2005-09-08 16:47:07)
섭죽의 달근·고소한 맛 호텔 금강산의 섭죽 맛을 보셨는가 내 고향 춘향골의 홍합죽 꼭 같은 그 빛깔 그 맛이었어 나는 가반(加飯)을 했다네 8월 중순이었다. 「세계평화시인대회」 참석의 일로 금강산엘 다녀온 바 있다. 저곳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만찬과 시낭독의 기회를 가졌다. 만찬의 식탁에선 차림표에 의한 14종의 음식을 차례로 즐길 수 있었다. ‘접대원’ 원미옥양(孃)의 호의로 얻어낸 차림표에 의한 음식이름은, - 통김치·남새합성·도라지생채·양장피랭채·소고기오이랭채·두부양념·섭죽·녹두지짐·즙친생선튀기·돼지고기철판볶음·낚지솔방울볶음·밥·두부계란전골·수박화채 등이었다. 몫몫이 차려내온 음식은 모두 맛깔스러웠다. ‘이것은 섭죽입니다. 여름더위를 가시고 몸을 튼튼히 합니다.’ 미옥양의 친절한 설명이다. ‘이건 홍합죽(紅蛤粥)인데…’ ‘그렇습니까. 여기에선 섭죽이라 합니다.’ 미옥양은 상냥스러웠다. 남쪽에서도 지방에 따라서는 홍합을 섭조개로도 일컫는다. 그러나 남원에서 자란 나는 홍합으로 배웠고, ‘홍합죽·홍합탕·홍합초(炒)·홍합젓’의 말에 익숙해져 있다. 홍합은 한자어로 담채(淡菜)·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 일컫기도 한다. 빙허각이씨의 《규합총서》에는 홍합에서도, - ‘살이 붉은 것은 암컷이니 맛이 좋고, 흰 것은 수컷이니 맛이 덜하다. 동해에서 나는 것은 잘고 검으나 보익(補益)하기에 으뜸이요. 북해에서 나는 것은 크고 살찌나 맛이 그만 못하다. 날로 볶아 탕을 끓이면 매우 달고 말쑥하다. <본초> (本草)에 이르기를, 많이 먹으면 머리털이 빠진다고 하였다.’ 의 설명이다. 홍합은 열대 이외의 전세계에 분포한다거니와 일본사람들도 홍합을, ‘이가이’ 또는 ‘무라사키이가이’(紫胎貝)라 부르며 죽으로 쑤어먹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홍합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기제사에 올렸던 홍합탕국도 좋아했다. 여름철이면 때로 집에서 홍합죽을 쑤도록하여 큰대접으로 즐기기도 하였다. 노그름한 죽에 든 바스라진 홍합살이 입안에서 풍기는 향기라니, 숟갈마다 당기는 입맛이었다. 홍합죽은 건홍합을 잘근잘근 바수어 기름에 볶아내어 흰쌀에 물을 잡아 끊여내기 마련이었다. 숟가락으로 입안에 떠넣을 때마다 달근하고도 고소한 맛이 돋는다. 상위에 홍합죽이 오르면 으례 가반을 챙기곤 하였다. 이렇듯 좋아한 홍합죽을 연래에 들어 멀리한 바 있다. 그것은 수입한 홍합에서 ‘다이옥신’ 독성이랬던가, 뭔가가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후부터였다. 분명 수입품이 아니라는 데도, 홍합의 먹거리를 대하면 께름칙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어서, 숫제 멀리하여 왔던 것이다. 금강산 호텔에서의 - ‘섭죽’ 이라는 미옥양의 말에는 께름칙했던 마음은 커녕 어린시절 남원고향에서의 홍합죽이 먼저 떠올랐다. 한 숟갈 맛보자, 맛 또한 어린시절의 홍합죽 맛과 다른 바가 없다. 오직 죽그릇이 대접 아닌 보시기임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체면상 한 보시기 더 달랄 수는 없고, 마음 속 ‘점 하나’ 찍고 가반한 셈 치기로 했다.
목록